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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그릇과 해골물

#쾌락주의

by 또랑쎄


어렸을 적 많이 기억하는 엄마의 얼굴은 화난 표정이었다. 하지만 요 근래 나이가 조금 더 든 엄마는 보는 사람이 기분 좋을 정도로 잘 웃는다. 건강한 마음 제어법을 항상 말하던 엄마는 내가 흙탕물이 왕창 튀어 기분이 된통 상했다면 내가 느끼는 고통과 행복의 척도를 조절해주며 그날을 개운하고 보송하게 빨래하는 날로 바꿔주었다. 나는 이런 엄마의 마인드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실제로 힘든 일이 있을 때 그렇게 느껴지는 근본 가치를 생각하고 그 크기를 작게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그런지 요새 일은 정말 힘들지만 행복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행복도를 올리는 나의 방법 중 하나는 나의 욕심을 담는 그릇을 줄이는 것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이런 자세를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지고, 나 자신을 희생하는 자세라는 생각이 들어 살짝 울적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자세를 통해 삶에서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빈도가 부쩍 늘고, 그에 따라 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남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느껴지면서 울적감은 사라지고 옳고 곧은 마음을 가진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높아졌다.


에피쿠로스는 질 좋은 쾌락을 통해 마음에 걱정이 없는 편안한 상태(아타락시아)를 추구하던 쾌락주의 그리스 철학자이다. 아타락시아는 알렉산더 대왕의 헬레니즘 시대 때 부패한 정치와 살인적인 물가로 힘들어진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에피쿠로스로부터 제시된 방법의 정석적 결과물이다. 쾌락주의라는 단어만 놓고 보면 오직 쾌락만 좇는 삶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은 곧 쾌락이라고 말하며, 이 공식을 "가지고 있는 것/가지고 싶은 것"으로 정하고 분모의 크기를 제어한다. 반드시 필요한 쾌락(식욕, 수면욕 등), 경계가 필요한 쾌락(성욕, 사치 등), 불필요한 쾌락(부, 명예 등)으로 쾌락의 등급을 매겨 욕구를 조절하는 것에 핵심을 두고 있다. 필수 쾌락에 해당하는 쾌락을 추구하며 아타락시아에 도달하는 것이 쾌락주의이다.


에피쿠로스 철학을 심도 있게 살펴보고 나는 바로 말할 수 있었다.


"나 극 쾌락주의네."


과거의 나였다면 알량한 자존심의 정신 승리 아니냐고 비판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이게 정말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자신한다. 쾌락이 곧 행복이고 공식은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것이 마음에 든다. 나 자신을 조절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쾌락주의는 어찌 보면 얼마 전에 알게 된 인지행동치료와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 기분이 나쁜 이유의 원인은 망상일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느끼는 것이 내 판단을 자동화한다. 이것이 곧 인지왜곡이며, 이 판단을 수동으로 바꾸는 것이 인지행동치료이다.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도달하는 결론의 근원을 제어하는 맥락에서 쾌락주의와 인지행동치료, 또 내가 모르는 이 외의 모든 마인드 컨트롤 바탕에 깔려있는 핵심 근원의 큰 방향은 곧 원효대사 해골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고전이 진리인 것인가. 감탄을 자아내는 이 세 가지를 마음속에 새기니 삶이 너무나 심플하게 느껴지는 날이다.


#쾌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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