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모처럼 날이 따듯하고 화창해서, 남편과 가볍게 뒷산 산책로를 걷던 중 일이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던 우리 쪽으로 저 앞에서 조막만한 말티즈가 뛰어왔다. 난시가 조금 있는 나는 귀여운 강아지가 뛰어오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점점 초점이 돌아오면서 흥분에 가득 차 눈이 돌아간 강아지를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 그 강아지는 도착해서 남편을 빤히 쳐다보며 잠시 있었다. 그러곤 나를 쓰윽 보더니 내 다리에 왕하고 입질을 하는 게 아닌가. 물리진 않고 바지만 조금 뜯겼던지라 다행이었지만, 그 찰나의 순간 강아지는 어떤 의식의 흐름으로 나만 골라 무는 괘씸함을 보였을까 생각해봤다.
모든 것은 무의식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자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프로이트가 한 말이다. 그는 꿈의 해석이란 책에서 인간에게는 원초아, 자아, 초자아가 있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원초아는 원초적으로 느끼는 본능을 말하며, 이는 삶/자기 보존의 본능인 에로스와 죽음/파괴의 본능 타나토스로 나뉜다. 초자아란 현실적인 의무에 맞추어 나 자신을 제어하는 일종의 도덕적 목소리이다.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 균형을 맞추고, 협상을 담당하는 것이 자아의 역할이다. 아주 흥미로운 무의식의 구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이론을 귀엽지만 아주 괘씸했던 그 강아지(인간과 모든 걸 같다고 할 순 없겠지만)에게 대입해 보았다.
먼저 그때 당시 강아지의 원초아는 "내 가족이 아닌 것들은 다 작살을 내서 나와 주인을 보호해야지"였다고 일종의 자기 보존 본능인 에로스와 파괴 본능인 타나토스를 함께 정의할 수 있겠다. 그리고 마침 그날 강아지는 기분 좋은 날씨와 평소에 보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에 흥분하여 절제를 잃고 원초아에 휩쓸렸을 것이다. 그는 목표였던 우리 부부 앞에 도착하여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순간 초자아의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모든 사람들을 물어 버릴 수는 없잖아. 내 주인도 피곤할 테고 혹여나 상대가 더 세게 나에게 반격하면 어떡할래." 그리고 옆에 겁에 질린 나의 얼굴을 보며 자아가 합리적으로 결론을 내줬을 것이다. "그럼 조금 만만해 보이는 것들만 처리하자. 됐지?"
강아지는 나름 자아의 균형적인 판단으로 의식이 흘러갔고, 결론적으로 나만 공격한 것이 아닐까. 내 바지가 뜯기고 강아지 주인이 와서 괜찮냐고 물어보는 그 순간에 나 또한 원초아와 초자아의 갈등 속에 휩싸여 있었다. 나의 원초아는 "이 조막만한 강아지를 혼쭐을 내주고, 주인한테 진상이란 진상은 다 부려서 단단히 잘못을 깨닫게 해주자"라고 외치고 있었고, 초자아는 "그래도 내가 직접적으로 다친 건 아니잖아. 강아지도 너무 작고."라고 외치고 있었다. 결국 나의 자아는 "옷이 뜯기긴 했지만 다친 건 아니니깐 괜찮습니다."라는 협상을 하였다. 내 자아는 주인이 목줄을 놓고 있었던 건 잘못이라는 것을 은근하게 알려주면서도 책임을 묻거나 질책하진 않는 균형적이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이 짧은 에피소드 안에서도 프로이트에 의한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여러 개의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참고 안 했을 때 아쉽고 울적한 마음이 들기 마련일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어떤 것을 미치도록 하고 싶은 욕망이 들었으나, 결국 하지 않았을 때마다 내 안에서 나의 자아가 원초아와 초자아의 싸움을 말리느라 수고했다고 생각하며 느끼는 좌절의 크기를 줄일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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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생각하면 할수록 그 하찮게 작은 강아지가 나만 물었다는 것은 여간 분노가 가시진 않는다.
#무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