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Y
성격 급한 내가 서두르느라 차마 엄마 뱃속에서 꺼내오지 못한 장점들을 싹싹 긁어 나온 아이. 방금 전 집을 나설 때도 "나 차 한 잔만 더 해줘"라는 말에 "아 나 나가야 되는데"라면서도 머그잔에 꼭 물을 담아주던 아이. 급히 신발을 신으며 "빨래 돌려놓은 것 좀 이따 널어줘!"라고 말하는 너에게 나는 "그래 잘 다녀와"라고 답한다. 이런 일상적인 대화와 부탁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 세상에 하나뿐인 여동생.
어렸을 때 많이도 놀려 먹었다. 고작 초등학생이었는데도 나는 심각한 구라들을 쳤다. 욕조에 미지근한 물을 받아놓고 나란히 앉아 인형놀이를 하면서 "사실 넌 주워온 아이야" "너 혈액형 A인 줄 알았지? 사실 B야. 왜냐면 넌 주워왔기 때문에." 이런 얘기들을 했다. 얘가 울면서 밖으로 나가면 곧이어 엄마 아빠의 큰 소리가 이어졌다. "야 너 왜 동생을 울리고 그러냐!" 그러면 나는 혼자 욕조 속에 앉아 키득키득 웃었다. 한번 속고 나면 더는 안 믿을 만도 한데 같은 장난에 몇 번이고 속았다. 너는 그렇게 바보 같은 애였다.
우리는 하나도 안 닮았다. 너는 키가 크고 말랐고 길고 풍성한 머릿결을 지녔다. 손도 크고 발도 크고 (대가리도 크고) 손톱도 길쭉해서 개구리같이 못생긴 내 손과는 다르게 참 예쁘다. 어렸을 때부터 예쁜 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보다 힘도 세서 너한테 맞을 때면 아팠다. 나는 안 아픈 척 하면서 야비하게 멀리서 물건들을 던졌다. 너도 맞다가 울었다. 손재주가 좋고 부모님께도 사근사근했다. 착한 아이. 여리고 순수한 아이였다 너는.
그렇지만 공부를 못 하고 성격도 빠릿빠릿하지 못했다. 넌 책이라면 학을 떼는 성격에 심지어 만화책도 안 본다. 난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편인데 반해 너는 항상 뭔가 질질 흘리고 다니기 일쑤였다. 가족 여행 갈 때 디지털 카메라를 잃어버려 혼난 적도 있었고, 핸드폰을 버스에 두고 내린 적도 있었다. 난 야행성인데 비해 너는 그냥 아무 때나 잠을 잤다. 머리가 땅에 닿으면 그냥 자버리는 잠만보. "이래서 키가 계속 크는거야" 투덜거리며 너는 새우처럼 몸을 옹송그리고 잠을 잤다. 옷 입는 것만 빼면 서로 정확히 반대였다. 그래야 더 많은 옷을 돌려가며 입을 수 있으니까.
근데 이상하게 그럼에도 난 항상 우리가 서로의 분신이라고 생각했다. 내 영혼의 반쪽이 있다면 그건 너겠구나 싶었다. 왜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지만서도. 톱니바퀴처럼 맞아 들어가는 사이라고 할까. 엄마 태반 속에 있던 서로 다른 장점들을 골라 입고 나온 사이. 그게 분신이 아니면 뭘까? 나는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했고, 이 말에 엄마는 삐졌지만 나는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애틋한 사람은 너일 수밖에 없다고.
누구보다 내가 괴롭히고 많이 싸우고, 가장 작고 멍청한 일로 서로 소리를 지르고 싸울 수 있는 관계여서일까. 네가 마음 아파할 때는 너무 화가 나고 눈물이 났다. 나만 괴롭힐 수 있는 사람을 누가 마음 아프게 한다는 게 억울했고 이렇게 쉽게 상처 받는 애를 언니도 아닌 주제에 상처 준다는 게 견딜 수 없게 열 받았다. 싸움은 못 하지만 가장 야비한 방법으로 흠씬 패주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퍽치기라도 하고 싶었다.
여리고 치사해서 좀만 크게 싸워도 SNS고 뭐고 가족임에도 얄짤없이 다 끊어버리는 쪼잔한 놈. 그럼에도 또 그 약한 마음 때문에 참 소심하게 다정하다. 내 집에서 지 내킬 때 월세 내가며 얹혀사는 주제니 당연하긴 하다만 또 시키면 곧잘 집안일을 한다. 요상한 내 성격에 "언니는 참 이상해" 하면서도 나에게 맞춰 잠옷으로 갈아입어준다. 그럴 때는 참 사랑스럽다.
사랑한다. 넌 나에게 엄청난 존재야.
등치에 안 맞게 바보같고 멍청하지만 가끔 귀여운 구석이 있는, 나보다 8cm나 더 큰 내 여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