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펀치 Sep 28. 2019

사람의 이야기

KJY

성격 급한 내가 서두르느라 차마 엄마 뱃속에서 꺼내오지 못한 장점들을 싹싹 긁어 나온 아이. 방금 전 집을 나설 때도 "나 차 한 잔만 더 해줘"라는 말에 "아 나 나가야 되는데"라면서도 머그잔에 꼭 물을 담아주던 아이. 급히 신발을 신으며 "빨래 돌려놓은 것 좀 이따 널어줘!"라고 말하는 너에게 나는 "그래 잘 다녀와"라고 답한다. 이런 일상적인 대화와 부탁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 세상에 하나뿐인 여동생.


어렸을 때 많이도 놀려 먹었다. 고작 초등학생이었는데도 나는 심각한 구라들을 쳤다. 욕조에 미지근한 물을 받아놓고 나란히 앉아 인형놀이를 하면서 "사실 넌 주워온 아이야" "너 혈액형 A인 줄 알았지? 사실 B야. 왜냐면 넌 주워왔기 때문에." 이런 얘기들을 했다. 얘가 울면서 밖으로 나가면 곧이어 엄마 아빠의 큰 소리가 이어졌다. "야 너 왜 동생을 울리고 그러냐!" 그러면 나는 혼자 욕조 속에 앉아 키득키득 웃었다. 한번 속고 나면 더는 안 믿을 만도 한데 같은 장난에 몇 번이고 속았다. 너는 그렇게 바보 같은 애였다.


우리는 하나도 안 닮았다. 너는 키가 크고 말랐고 길고 풍성한 머릿결을 지녔다. 손도 크고 발도 크고 (대가리도 크고) 손톱도 길쭉해서 개구리같이 못생긴 내 손과는 다르게 참 예쁘다. 어렸을 때부터 예쁜 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보다 힘도 세서 너한테 맞을 때면 아팠다. 나는 안 아픈 척 하면서 야비하게 멀리서 물건들을 던졌다. 너도 맞다가 울었다. 손재주가 좋고 부모님께도 사근사근했다. 착한 아이. 여리고 순수한 아이였다 너는.


그렇지만 공부를 못 하고 성격도 빠릿빠릿하지 못했다. 넌 책이라면 학을 떼는 성격에 심지어 만화책도 안 본다. 난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편인데 반해 너는 항상 뭔가 질질 흘리고 다니기 일쑤였다. 가족 여행 갈 때 디지털 카메라를 잃어버려 혼난 적도 있었고, 핸드폰을 버스에 두고 내린 적도 있었다. 난 야행성인데 비해 너는 그냥 아무 때나 잠을 잤다. 머리가 땅에 닿으면 그냥 자버리는 잠만보. "이래서 키가 계속 크는거야" 투덜거리며 너는 새우처럼 몸을 옹송그리고 잠을 잤다. 옷 입는 것만 빼면 서로 정확히 반대였다. 그래야 더 많은 옷을 돌려가며 입을 수 있으니까.


근데 이상하게 그럼에도 난 항상 우리가 서로의 분신이라고 생각했다. 내 영혼의 반쪽이 있다면 그건 너겠구나 싶었다. 왜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지만서도. 톱니바퀴처럼 맞아 들어가는 사이라고 할까. 엄마 태반 속에 있던 서로 다른 장점들을 골라 입고 나온 사이. 그게 분신이 아니면 뭘까? 나는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했고, 이 말에 엄마는 삐졌지만 나는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애틋한 사람은 너일 수밖에 없다고.


누구보다 내가 괴롭히고 많이 싸우고, 가장 작고 멍청한 일로 서로 소리를 지르고 싸울 수 있는 관계여서일까.  네가 마음 아파할 때는 너무 화가 나고 눈물이 났다. 나만 괴롭힐 수 있는 사람을 누가 마음 아프게 한다는 게 억울했고 이렇게 쉽게 상처 받는 애를 언니도 아닌 주제에 상처 준다는 게 견딜 수 없게 열 받았다. 싸움은 못 하지만 가장 야비한 방법으로 흠씬 패주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퍽치기라도 하고 싶었다.

 

여리고 치사해서 좀만 크게 싸워도 SNS고 뭐고 가족임에도 얄짤없이 다 끊어버리는 쪼잔한 놈. 그럼에도 또 그 약한 마음 때문에 참 소심하게 다정하다. 내 집에서 지 내킬 때 월세 내가며 얹혀사는 주제니 당연하긴 하다만 또 시키면 곧잘 집안일을 한다. 요상한 내 성격에 "언니는 참 이상해" 하면서도 나에게 맞춰 잠옷으로 갈아입어준다. 그럴 때는 참 사랑스럽다.


사랑한다. 넌 나에게 엄청난 존재야.

등치에 안 맞게 바보같고 멍청하지만 가끔 귀여운 구석이 있는, 나보다 8cm나 더 큰 내 여동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