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요즘은 구린 게 적폐거든요

by 강펀치

어렸을 때, 그러니까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좌우명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자'였다. (지금 와서 보니 토가 나올 정도로 촌스러웠네) 그 시기를 지나 뒤를 돌아봤을 때 후회가 남지 않는다면, 돌아가고 싶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 아닌가 싶었다. 다시 살아도 이렇게 했을 거야 싶다면 적어도 내가 순간에 충실했다는 의미일 테니까. (심지어 이렇게 오글거리는 이유였다니)


나이가 차면서 삶의 모토가 바뀌었다. 다른 게 아니라 지키는 데 자꾸 실패했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항상 가지 않은 선택지에 대한 미련 같은 게 덕지덕지 남아있기 마련이고 잠깐의 후회는 필연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보다 후회할 일이 많았다. 난 아닐 줄 알았는데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뒤돌아보면서 땅에 머리 박는 사람. 이젠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후회도 좀 하고 그런 거지 뭐.


아무튼 좌우명을 지키기 힘들면 바꾸면 된다. 졸업을 하면서 이곳저곳 나를 보여야 하는 순간이 많아지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면면을 보게 되면서 두 번째 좌우명이 생겼다. 어른이 되고 만나게 된 사람들 중에는 생각이 촌스러운 사람들이 꽤 많았다. 뭐라고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는데 좀 답답하고 별로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사람들이 그랬다. 그걸 속으로 혼자 '촌스러운 마음들'이라고 명명했다.


반면에 많진 않지만 마음이 세련된 사람들을 만나면 멋있었다. 쿨내랄까 어른의 향기랄까 그런 아우라. 좋고 똑똑한 사람들에게서 그런 기분을 많이 느꼈다. 뭐랄까 자신의 생각은 명확하지만 다른 사람의 세계까지 인정해주는 그런 사람들. 그런 피플들은 어떻게 입는 것도 먹는 것도 듣는 것도 하나같이 멋있었다. 간지가 나는 사람은 넝마를 걸쳐도 간지다. 간지의 현현. 나도 저렇게 되고 싶었다. 삶의 모토가 '촌스럽지 말자'가 됐다. 스타일 없이는 죽음을 달라!


그런데 한 가지. '촌스럽지 말자'는 이전 모토보다 해석 방법이 좀 더 까다로웠다. 후회는 어차피 나 혼자 하는 거니까 이게 후회한 일인지 아닌지 대충 각이 서는데, 촌스럽다는 개념은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나 세상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었다. '촌스럽다: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어수룩한 데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스타일리시함은 그저 유행하는 옷이나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어떤 기준이 필요했다.


그렇게 정해졌던 기준은 이런 거다. 일단 촌스럽지 않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한 공부, 내 마음 돌아가는 일에 대한 공부.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한 가치판단, 내가 입고 먹고 쓰고 사는 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객관적인 평가를 주기적으로 하면서 반성하고 사는 것.


촌스러움과 非촌스러움, 그것은 알맹이의 차이에서 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촌스럽지 않은 사람은 그가 지금 카고 바지에 체인을 달고 덥수룩한 장발로 거리를 활보해도 촌스럽지 않다. 촌스러운 사람이 뭘 해도 구찌 빌런이 되는 거다. 세련된 영화나 음악은 지금 막 만든 작품들보다 멋지다. 촌스럽지 않은 것에는 어떤 오리지널리티가 있다. 결국 그 아우라가 대상의 촌과 비촌을 좌우하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촌스러움은 알맹이가 없는 것에서 온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데에서 온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지 못할 때 스며든다. 겁내고 두려워하는 것에서, 두렵지만 두렵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조크든요' 같은 그런 마인드의 부재. 촌스러움은 공부하지 않는 데서 오고 나와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온다. 위트 있지 못한 상황에서 오고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온다. 어글리한 마음은 항상 촌스럽다.


자신이 아는 것만 좋아하거나 요즘 달이 이상하게 크다는 점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은 가끔 촌스럽고, 다른 이들의 취향을 좇는 것도 촌스럽다. 다른 사람과 보폭을 맞춰서밖에 대화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그렇다. 유행을 좇는 것은 복고로 소비되지 않는 이상 어느 순간 촌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유행하는 모든 것을 다 가져와 늘어놓는 것도 천하다. 결이 없는 데에서, 유머와 엣지가 없는 데에서 촌스러움은 온다. 무색무취인 곳에서, 모서리와 코어가 없는 곳에 촌스러움이 있다.


매 순간 촌스럽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은 없지만, 비 촌스러움의 이데아 같은 것이 있다면 그곳에 닿고 싶다. 런웨이에 선 모델 같은 세련됨은 못될지언정 다 먹고 바닥에 소스가 눌어붙은 불닭볶음면 용기 같은, 그런 엉망진창의 스타일 정도는 유지하며 살고 싶다.


뭐 좌우명이야 사실 못 지키면 또 바꾸면 그만이지만, 적어도 이 정도의 일관성 정도는 둔 삶을 살고 싶다. 껍데기는 가고 스타일만 남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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