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 큰일났다 가고싶은 곳이 없다
1. 왓 더..?!
큰일이다. 헬싱키에서 가고싶은 곳이 없다.
선배가 준 관광책을 뒤적뒤적 하는데, 가고싶은 곳이 없다..
무려 4일을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메탈 클럽이나 아이스 하키 경기(이것도 볼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빼고는 딱히 구미가 당기는 데가 없다. 미치겠음. 무민월드를 갈까 해도 딱히 무민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재미 없을 것 같고. 카모메 식당이랑 아모스 렉스 미술관 정도 빼면 정말 당기는 데가 없다. 탈린 가서 술이나 진탕 마시고 와야하나. 대체 왜 나는 핀란드를 고른 걸까?
헬싱키 간다니까 좋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 메모장 검색해 보니까 '탈린' '술 사러 감' '이딸라' '같은 도장' '참치와 돌고래' 이딴 식으로 메모해놔서 쓸모 있는 게 하나도 없다.
2. 방한빌런
오늘 동생이랑 이마트를 돌며 높은 물가에 대비한 주전부리 장을 봤다. 지연이가 딸기도 사 주고 UFO 과자랑 와인도 사줬다. 딸기 비싸서 그냥 안 먹어야지 시무룩 하니까 '언니 딸기 내가 사줄게' 해서 참 누구 같고 고마웠다.
그리구서 바리바리 싸들고 집에 왔는데 지난 밤에 시킨 포켓 온열 매트랑 발열조끼 핫팩 기모스타킹 같은 게 택배로 와 있었다. 동생이 그걸 보더니 "언니 지금 저걸 다 사고 히트텍을 또 산 거야?.." 하며 나보고 추운 나라 가면서 너무 과하게 준비한다며 겁쟁이라고 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서는 추위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구 너는 겨울에도 창문 열고 반팔로 자는 아이라 모르겠지만..
근데 솔직히 오고 나서 보니까 군용 핫팩 30개 몸에 붙이는 핫팩 몸용 발용 각 20개 발열조끼 기모스타킹 방한 내복 등산양말 이렇게까지 준비한 건 좀 에바참치인가 싶기도 했다. 근데 어떡해 추운 건 너무 싫단 말야 -40도를 어떻게 버텨!
3. 핑계 아니고 열린 여행
나는 보통 여행을 앞두고 가서 일정을 변경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방향을 틀 수 있게 미리 꽉 채워 준비해가는 편인데, 이번엔 위와 같은 연유로 그럴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을 했다. 공원이나 미술관, 교회 같은 데를 제외하면 별 게 없는 나라기도 하고 또 뭘 봐도 그게 그거일 것 같다. 걷다보면 다 보게될 것 같은 느낌.
그냥 꽉 채워 갈 도시가 아닐 것 같다. #해비메틀 #아이스하키 #산타마을 #순록고기 #연어스프 #오로라 #허스키썰매 #탈린에서술사기 #사우나 이정도만 경험하고 와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와 이 돈을 주고 그곳까지 가는 의미가 있을까 싶다가도 -30도에서 보는 눈 결정체가 너무 예뻐서 '다이아몬드의 나라'라고 느끼게 된다는 설명에 또 두근두근 설레고 그런다.
나는 눈을 너무 좋아하는데 올해는 눈을 정말 못 봤다. 얼른 가서 푹푹 나린 눈을 보고싶다. 가서 아아~~~아아~~ 겨울왕국 노래도 꼭 부르고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