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펀치 Mar 21. 2018

<리틀 포레스트>가 나에게 남긴 것

시간과 체험, 최고의 조미료.

수명이 다해가는가 싶었던 먹방 쿡방 열풍에 새로운 불을 지핀 영화 <리틀 포레스트>. 영화판 <삼시 세 끼>라고 할 수 있을까.


<우생순>, <남쪽으로 튀어>를 연출한 임순례 감독이 일본 만화 원작을 각색해 만든 영화. 김태리가 JTBC 뉴스룸까지 출연하며 화제몰이를 하고, 그야말로 귀농_에코_집밥 열풍(?)을 몰고 온 영화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는 자타공인 요알못인 내게 세 가지를 남겼다.


가장 먼저, 요리도 자기 만족 혹은 자기 행복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이전까지 살아오며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거의 해오지 않았다. 몇 번의 이벤트성을 제외하면 기껏 해야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라든가, 살며 4번 정도 만들었을 법한 김치볶음밥, 역시 내가 좋아하는 계란찜 정도 해본 것이 다였을까.


이유로는 역시 요리가 귀찮고 재미없다는 게 첫째였다. 하지만 동시에 여자라면 이런 것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하는 일종의 틀 같은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항이기도 했다. 내가 요리를 즐거워하고 하고 싶어 한다면 어쩐지 엄마 아빠, 어른들의 선입견에 굴복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나서 느낀 것은 주인공 혜원이 누구보다도 자신을 위하여 요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친구나 남자친구를 위할 때도 있지만, 가장 맛있게 무언가를 만들 때는 대접할 사람이 자기 자신일 때였다.


먹고 싶은 요리를, 내 손으로 손질하여 후루룩 내가 먹는다. 누군가 함께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혼자다. 나를 위한 대접. 대단할 것 없이 만든 배춧국과 전, 수제비와 시원하게 호로록 마시는 콩국수. 그전에 본 먹방 쿡방에서의 음식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다른 이들을 대접하는 요리였다면, 영화 속 모든 음식은 그야말로 나를 위한 것이었다. 군침이 돌았다.



그 이후로 대단한 건 못 되어도 몇 번의 저녁을 내 손으로 직접 차렸다. 막상 해 보니 음식을 만든다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조금 더 소중히 대하는 기분이었다. 요리는 많은 경우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한편 얼마든지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직접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저녁을 먹다 보니 '식사'라는 게 삶에서 가지는 의미가 커졌다. 배달의 민족을 통해 그날 그날 먹고 싶은 음식을 시키거나 햄버거, 반조리 식품으로 때우는 행위가 그저 '배를 채우는' 행위였다면, 밥을 해서 먹는 행위에는 조금 더 연속성이 있었다.


쌀을 씻고, 밥이 되는 동안 이런저런 야채를 썰고 국을 끓이고 면을 삶고 밥을 비비고, 그것이 내 입 속으로, 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에는 일종의 리듬이 있었다. 그 리듬을 흔히 식사라 부르나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직접 음식을 만들다 보니 예전과는 달리 하나의 음식에 포함된 모든 구성물들을 다 먹게 됐다. 다 내 손으로 씻고, 가르고, 썰어 넣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손이 간 것들이라 애정이 생긴다고나 할까. 예전에는 된장국에 들어간 고추라든가, 두부라든가 하는 것들을 쉽게 남기곤 했었다면 이제는 양파 한 덩이 까지도 싹싹 긁어먹게 됐다. 내가 직접 사고, 직접 넣어 끓인 것들이라 그러리라.


원작 만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남자 주인공 우유타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험해서 그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하며 배운 것, 자신이 진짜 말할 수 있는 건 그런 거잖아. 그런 걸 많이 가진 사람을 존경하고 믿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주제에 뭐든 아는 체하고 남이 만든 걸 옮기기만 하는 놈일수록 잘난 척 해."


내가 만든 음식들이 사 먹는 것보다, 버거킹 햄버거보다 분명 맛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모든 밥을 맛있게 싹싹 비울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내가 체험해서 만들어낸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설령 혜원처럼 직접 키우고 재배해 만든 음식처럼 대단하지는 못하더라도, 쌀이 밥이 되는 시간, 된장과 양파와 버섯과 두부가 된장국(혹은 된장찌개)이 되는 과정, 딱딱한 국수면이 시원하고 달큰한 모밀 국수가 되는 마법, 밥과 김치가 김치볶음밥이 되는 움직임. 그리고 그 속에서 오는 리듬과 체험이 아마 가장 맛있는 조미료가 되었을 것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그렇게 내게 밥과 시간이 만들어내는 요리의 포만감을 알려주었다.

어쩐지 최고의 조미료가 아닐까 싶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키스트 아워, 처칠의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