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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펀치 Jan 11. 2018

다키스트 아워, 처칠의 시간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윈스턴 처칠, 그의 빛만을 그린 영화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한 뒤 작성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정치인

카리스마 있는 세기의 영웅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국 총리

노벨문학상 수상자

시가, 그리고 V

BBC 위대한 영국인 100인

피, 땀, 눈물

다이나모 작전, 던커크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We Shall Never Surrender!


괴팍한 성격

쿠르드족에 독가스 살포 명령

식민지 민간인 학살

우생학 신봉자

"열등한 유전자를 지닌 장애인들을 격리시키자"

인종주의자, 제국주의자, 노동탄압

"무솔리니는 민주주의를 실현할 자격도 없는 이탈리아를 안정시킨 지도자"

"연설과 여자의 치마는 짧을수록 좋다"

"히틀러가 지옥을 침공한다면 악마에 대한 지지 연설이라도 할 수 있다"


사진작가 카쉬가 찍은 윈스턴 처칠


1차, 2차 대전의 전시내각에 모두 참여한 영국 유일의 정치인. 괴팍한 성격, 독불장군, 늘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국 총리.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유럽을 히틀러의 손아귀에서 구해낸 윈스턴 처칠은 인종주의자였고 우생학 신봉자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에 대해 "민주주의를 실현할 자격도 없는 이탈리아를 안정시킨 지도자"라고 평가한 적 있으며(에릭 혹스봄, <극단의 시대>(1994)) 1920년 이라크 쿠르드족에게 독가스 살포 명령을 내렸다. 당시 겨자 가스가 부족해 명령에도 불구 실제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훗날 이라크 독재자였던 사담 후세인이 쿠르드족 학살에 독가스를 썼을 때 영국 언론이 후세인을 비난하자 직접 "처칠에게 배운 것일 뿐"이라고 비웃었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1)


그는 유색인종과 장애인을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우생학 신봉자였다. 열등한 유전자를 지닌 장애인을 격리시키자는 정책안을 의회에 제안했다. 그가 피와 땀과 눈물을 바치겠다고 소리 높인 대상에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던(We Shall Never Surrender!) '우리'에는 소수자나 유색인종 따위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대영제국의 노예나 식민지로서의 역할이었을 것이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이렇게 업적도 많고 말도 많은 영국의 정치인 '윈스턴 처칠'을 다룬 영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년 화제가 됐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가 다뤘던 다이나모 작전의 정치 수뇌부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칠의 4주, 그가 겪었던 다키스트 아워. 하지만 영화는 그가 짓밟고 하찮게 여겨온, 수많은 약자들이 겪어야 했던 '다키스트 아워'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침묵한다.


영화의 장점을 찾자면 단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게리 올드만의 분장과 연기다. 영화를 다 마치고 나오는 순간까지 게리 올드만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완벽히 처칠로 분해 시가를 꼬나문 모습에서 게리 올드만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색감과 화면, 당시 시대상을 알아볼 수 있는 소품들을 보는 재미도 훌륭했다. 시종일관  부드럽게 사용되는 빛과 색채가 독설을 내뿜고 기행을 일삼는 처칠의 과격한 성격과 대비되면서 영화의 분위기를 균형적으로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영화에는 처칠이 아내에게 다정다감한 남편이었음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장면이 많이 삽입되어 있다. 고집을 부리던 처칠이 아내의 말이라면 경청한다든가, 그녀에게 감정적으로 크게 의지하는 장면들이 많다. 그의 고뇌와 심리적 압박감을 그려내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의 다이나모 작전은 성공으로 돌아가고 2차 대전의 승리라는 역사에 남을 업적을 세우게 된다.


이 영화는 그러니까, 다이나모 작전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처칠이라는 정치가의 가장 빛나는 4주를 그림으로써 보내는 그의 생애에 대한 찬사에 가깝다. 괴팍한 성격, 남들과 다른 결정을 내리고 그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 그리고 그 승리가 상징하는 가치. 이 모든 것들이 영화로 만들어지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위치상 애매한 지점에 있다. 처칠을 다룬 영화라고 하기엔 그에 대한 평가가 너무 한정적이고, 다이나모 작전을 그린 영화라고 보기엔 현장의 이야기가 부재한다. 놀란의 <덩케르크> 같은 경우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직접 그들의 시각에서 담아냄으로써 완결성을 갖고 있다면 이 영화는 아름다운 연출을 해내기 위해 가장 다루기 쉽고 자극적인 스토리를 입혔다는 기분이 든다. 주객 전도가 아닐까,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덩케르크>의 번외 편 정도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다키스트 아워>라는 영화 혼자로는 완결성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변가이자 뛰어난 문장가였던 처칠의 명언 몇 가지는 마음을 울리는 측면이 있었다.

"마음을 바꾸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두려워하고 확신하지 못해서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사실 아내가 처칠에게 해줬던 말)

"성공과 실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라스트 제다이>에서 그랬듯, 빛이 크면 그만큼 어둠도 크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처칠의 빛에 조명을 맞춘 영화다. 처칠을 좋아하고, 게리 올드만의 처칠이 궁금하다면 혹은 조 라이트 감독의 연출을 좋아한다면 즐겁게 영화관을 나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관을 나서며 한 번쯤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세기의 영웅으로 불리는 윈스턴 처칠을,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영웅'이라고 찝찝함 없이 부를 수 있는지를.



(1) 2017.09.27 아시아경제 [쿠르드족의 광복]②'윈스턴 처칠'이 쿠르드족의 금기어가 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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