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엠제로 신태호 대표를 만나다
소재 중심 디자인 기업 '램엠제로'는 친환경 소재를 연구 개발하고, '언롤서피스'라는 브랜드를 통해 친환경 소재를 적용한 참신한 디자인의 생활용품을 만든다. 식재료의 원지를 살피듯 제품의 소재를 확인하는 미래를 제시하는 랩엠제로 신태호 대표를 만났다.
랩엠제로,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제로'베이스, 즉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시작하는 마음으로 소재(Material)를 대하고 연구하는 연구소라는 뜻입니다. 소재를 보는 기존 방식이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자세로 임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대표님은 디자이너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소재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산업 디자이너로 10년 정도 일했습니다. 디자인에서 소재는 굉장히 중요한데, 중요도가 뒤로 밀려온 게 사실이죠. 그런데 환경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면서 소재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었고, 소재부터 고려한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랩엠제로를 시작했습니다.
소재 중심 디자인은 기존 디자인과 어떻게 다른가요?
일반적인 디자인 과정은 기획에 따라 디자인을 하고, 소재는 마지막에 선택하는 옵션이었습니다. 소재 중심 디자인은 그 순서와 중요도를 소재 중심으로 다시 생각하죠. 기획 단계에서부터 소재를 중심으로 고려하고, 그 소재를 제품에 가장 효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랩엠제로의 목표입니다.
연구소라면 신소재 연구 및 개발도 진행하나요?
랩엠제로의 사업 분야를 크게 두 파트로 나눈다면 친환경 소재 연구와 기존 친환경 소재로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석유 기반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신소재를 연구 개발하고 있습니다.
랩엠제로가 독자 개발한 신소재가 실제로 쓰이는 것도 있나요?
아직은 연구 개발 중이지만 내년부터 실제 제품에 적용할 계획인 소재가 흑연에서 추출한 그래핀(graphene)입니다. 산업 전반에서 활용도가 굉장히 높은 신소재입니다.
그래핀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나요?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기존 소재와 혼합해 사용하면 강도와 전도성 등을 개선할 수 있는 원천 소재입니다. 가령 옥수수 등에서 추출한 식물 기반 플라스틱 소재는 기존 플라스틱에 비해 강도가 약해서 일회용품의 소재로만 쓰이는데, 거기에 그래핀을 합성하면 그런 단점을 보완해 다양한 생활용품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랩엠제로는 ‘언롤 서피스’라는 자체 브랜드를 통해 친환경 소재로 제작한 생활용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석유 기반 플라스틱 대신 재생 플라스틱과 식물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 플라스틱 소재로 다양한 생활용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이름인 ‘언롤 서피스’는 ‘표면(surface)을 펼치다(unroll)’라는 뜻으로, 제품 내부에 있는 소재를 들여다보자는 의미로 지은 것입니다.
친환경 소재로 제작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이 있을 텐데, 그중에서 생활용품에 집중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물론 친환경 소재로 만든 제품은 다양한 곳에서 쓰입니다. 하지만 랩엠제로의 강점이 소재와 디자인이라면, 일상적으로 쓰는 생활용품부터 친환경 소재로 만든 제품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늘 손에 닿는 데스크 용품과 컵부터 제작했습니다.
언롤 서피스의 친환경 제품을 가까이 두고 늘 사용하면 생활이 어떻게 바뀔까요?
재생 플라스틱 문진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수거한 폐플라스틱을 압축 가공해 만든 이 문진은 각 제품의 패턴이 모두 다릅니다. 세상 단 하나뿐인 물건인 거죠. 보기에도 쓰기에도 특별한 이 제품을 사용하면 우리가 친환경 소재를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언롤 서피스의 대표 제품은 어떤 것인가요?
소비자 반응이 가장 좋은 건 나무 기반의 분해 가능한 소재로 만든 텀블러 ‘리트 컵’입니다. 일회용 컵을 대체하는 텀블러 역시 스테인리스 스틸 등의 분해되지 않는 소재로 만들어지는 데 주목해 개발했습니다. 나무에서 추출한 소재로 만들어 여러 번 사용할 수 있고, 쓸모를 다한 뒤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컵이지요. 그래서 나무의 스펠링을 거꾸로 뒤집어 리트(Reet) 컵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기존 친환경 제품과 사뭇 다른, 미니멀한 디자인이 눈에 띕니다
우리가 친환경 제품을 생각하면 녹색을 강조하는 자연 친화적 디자인이 떠오르지요. 언롤 서피스의 제품은 그와 달리 젊은 취향의 ‘힙한’ 디자인을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형태나 색감, 그래픽 모두 기존 친환경 제품과 차별화되도록 디자인했죠.
친환경 신소재와 새로운 디자인의 결합, 쉽지만은 않은 일일 것 같습니다
일반 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보다 제조하기 훨씬 까다롭습니다. 기존에 없던 제품이라 테스트도 훨씬 많이 필요하고요. 하지만 제품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분들을 만났을 때 느끼는 보람도 더 크죠. 쓸모를 잃은 다음에도 계속 세상에 남아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제품을 만든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친환경 제품의 가치는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원산지를 확인합니다. 몸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사실 제품도 마찬가지거든요.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을 사용하면 미세 플라스틱과 환경 호르몬의 악영향에서 자유롭습니다. 분해되지 않는 제품을 쓰면 그 악영향이 돌고 돌아 우리 인체로 돌아올 텐데, 그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요. 앞으로 더욱 소재의 중요성을 고려하는 쪽으로 흐름이 이동할 거라고 봅니다.
언롤 서피스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의 피드백 중 인상적이었던 걸 소개해주세요
‘이런 브랜드, 이런 기업을 응원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통해 받은 피드백이에요. 현재도 세 번째 크라우드 펀딩을 ‘와디즈’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좋은 친환경 디자인이란 무엇일까요?
‘시스템을 고려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생산과 소비가 아닌, 소재와 제작 과정, 폐기 후까지 전반적인 시스템을 이해해야 환경을 생각하는 디자인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친환경 관련 아이템으로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요즘 디자인 창업에서 ‘친환경’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되었고, 서울디자인재단에서도 친환경 디자인에 대해 많은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디자인도 중요하고 친환경도 중요하지만, 결국 기업은 이윤을 내야 지속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랩엠제로 역시 고민하는 부분이고요. 사회적인 영향력을 고려한 제품으로 이윤을 내서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창업 단계부터 충분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랩엠제로와 언롤 서피스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현재 연구하고 있는 원천 소재를 보다 다양한 제품에 적용할 계획입니다. 결과적으로 언롤 서피스가 ‘친환경 생활용품’의 대명사 같은 브랜드가 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글 | 정규영
사진 | 김재형 스튜디오
출처 | DDP디자인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