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무스튜디오 남무대표를 만나다
힙합 음악과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그래픽 디자이너 ‘남무’는 익숙한 이름이다. 아티스트 크루 ‘360사운즈’의 일원으로 일리네어 레코즈와 아메바컬쳐, VMC 등의 힙합 레이블과 뮤지션의 로고, 공연 포스터, 앨범 등을 디자인해온 그의 자취는 한국 서브 컬처 신(scene)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런데 최근,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남무의 디자인에 새로운 영역의 대중이 열광하고 있다. 2022년 상반기 히트 상품 중 하나인 박재범의 ‘원소주’ 라벨이 바로 그의 솜씨다.
사실은 개발 과정에서 이미 마셔 봤습니다.(웃음) 정식 출시 후에 워낙 구하기가 힘들어져서 투정하듯 올려본 거죠. 평소에 너무 써서 소주를 잘 못 마셨는데 원소주는 무척 부드러워서 즐겨 마십니다. 이전엔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의 차이조차 몰랐는데, 원소주 작업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벌써 3년 전 일이네요. AOMG 대표인 DJ 펌킨에게 처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AOMG 공동 대표이던 박재범이 소주를 만드는데 디자인을 함께 해보자고요.
아티스트로서 박재범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술이었죠. 저에게 디자인을 제안한 것도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고요. 기존 소주와 완전히 다른 술이기 때문에 디자인도 새로워야 했습니다.
원소주 디자인에는 브랜드의 고유성과 현대적인 한국의 느낌 등이 담겨 있다.
특별히 ‘소주다운’ 디자인을 의도하지는 않았습니다. 병만 봐도 충분히 소주라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까요. 저는 기존 희석식 소주와 다른, 증류식 소주로서 원소주라는 브랜드의 특성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로고에 많은 의미를 담고 싶었습니다. 증류식 소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평소 수면에 물방울이 떨어지고, 파문이 일어나는 장면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 거기서 모티브를 얻어서 증류된 소주가 한 방울 떨어졌다가 다시 튀어 오르는 그 순간을 표현했습니다. 파문을 통해 원소주의 영향력이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걸 의도했고요.
한국적인 것을 현대적인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로고 아래 ‘WON’이라는 글자에서 검은 공백 안에 ‘O’를 숨겨 음과 양을 표현하는 등 타이포그래피에서도 태극과 건곤감리의 의미를 연결하려 했지요. 동그라미와 숫자 ‘1’, 돈의 단위인 ‘₩’ 등 원소주의 ‘원’이 연상시키는 다양한 의미를 디자인 안에 최대한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자랑스럽죠. 제 디자인이 많이 알려져서 뿌듯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한편으로 원소주 디자이너로만 알려지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고등학생때부터 마스터플랜과 아프로킹, 360사운즈, DJ 소울스케이프, 메이크원 등의 큰 팬이었기 때문에 360사운즈나 다른 크루들이 기획한 공연과 파티에 자주 참석했었고, 자연스럽게 친분이 생기면서 그들의 로고나 파티 플라이어를 디자인하게 되면서 음악 관련 작업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남무 디자이너가 360사운즈의 일원으로 작업한 그래픽 디자인들.
추상적인 음악을 그래픽 디자인으로 시각화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작업의 결과물을 아티스트와 레이블에게 설득하는 과정이 어렵지요. 같은 음악이라도 거기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하지만 생각이 맞는 아티스트와 함께 의견을 나누며 좋은 결과물이 나올 때의 기분은 비할 데 없이 좋습니다.
11년 전 일리네어 레코즈의 로고 디자인을 의뢰받고 홍대의 작은 오피스텔에서 더콰이엇과 도끼를 만났던 때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다이나믹듀오의 레이블 아메바컬쳐의 로고 리뉴얼 프로젝트도 기억에 남고요. 옥근남 디자이너와 함께 진행한 가수 이하이의 <seoulite> 앨범은 결과물도 만족스러웠고, 그때의 인연으로 얼마 전 제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줘서 큰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까지 작업한 결과물을 한꺼번에 모아 놓고 봤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오래전 디자인에선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그런 작업을 쌓아가며 이룬 변화와 발전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남무, 옥근남, 레어버스 디자이너가 함께 디자인한 이하이의 <seoulite> 앨범.
360사운즈는 회사가 아닙니다. 소속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각자 자기 일을 하다가 공동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자유롭게 모이는 개념이지요. 남무스튜디오를 시작한 건 4년 전 일입니다. 이름은 스튜디오지만 저 혼자 작업합니다. 그전에는 동료 디자이너 옥근남과 함께 팰린드롬 스튜디오를 운영했고요.
스포츠 브랜드, 패션 플랫폼 등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들과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전과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이제껏 해온 로고나 티셔츠 디자인 외에 제가 좋아하는 피규어나 타이포그래피 등을 디자인해 보고 싶습니다. 특히 요즘엔 식물에 관심이 커져서 화분 디자인도 도전하고 싶고요.
남무스튜디오의 로고 디자인들.
디자이너는 누구보다 실내에서 오래 머무르며 일하니까요. 저 같은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식물을 키우는 것보다 좋은 취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작업 환경도 좋아지고, 식물을 돌보며 정서적인 안정을 느끼곤 합니다.
협업 프로젝트 외에도 개인 작업을 하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계속 길어지고 있어요.(웃음) 알파벳을 새롭게 만들어 보기도 하고, 식물을 픽토그램으로 표현해 보기도 하고요. 그동안 책을 너무 멀리한 것 같아서 새로 나온 디자인 서적도 찾아 읽고 있습니다.
아직은 디자이너로서 저만의 색깔을 찾고 있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젝트별로 모두 성격이 다르지만, 제가 하는 디자인에 나름의 규칙을 세우고 그걸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런 원칙을 지켜서 작업하다 보면 언젠가 저만의 색깔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쉽고 강렬한 디자인이 아닐까 합니다. 별다른 부연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디자인을 접하는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강한 인상이 남는 디자인. 장식적이지 않고, 디자인에 담긴 모든 요소에 의미가 있는 그런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디자이너로서 고유한 색깔을 찾아가는 단계라 조언을 드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디자인이 좋고, 디자인하는 과정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서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 디자인이 즐겁지 않다면, 디자이너가 아닌 다른 일을 찾아보기를 권합니다.
남무 디자이너는 오늘의 디자인이 내일의 문화재가 되기를 바란다.
자기만족이죠. 그동안 해온 작업을 되돌아보며 내가 이런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냈구나, 새삼 느끼는 기쁨 같은 것. 그래서 디자이너로서 제 꿈도 많은 사람이 오래 쓰는 기호나 심벌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쉼표나 느낌표, 코카콜라 브랜드 로고 같은 것 말이죠. 앞으로 그런 것도 문화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원소주 브랜드가 앞으로 100년 넘게 살아남아 제가 디자인한 로고가 그렇게 된다면 정말 기쁘겠습니다.(웃음)
※ 2022.5.6.에 DDP디자인스토어 D-Magazine에 발행된 글 입니다.
https://www.ddpdesignstore.org/board/view.php?bdId=magazine&sno=35
글 | 정규영
사진 | 김재형
출처 | DDP디자인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