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마음 손유린 대표, 김하나 디자인 팀장을 만나다
소셜 벤처 ‘민들레 마음’은 그림 교실과 디자인 상품을 통해 소아·청소년 완화의료를 지원한다. 중증 희귀 난치 질환을 앓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로 만든 민들레 마음의 캐릭터와 디자인 제품은 엉뚱함과 귀여움으로 가득하다.
민들레의 끈질긴 생명력. 바람 따라 멀리 퍼지는 민들레 홀씨의 파급력.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있어도 잊지 않는 마음’이라는 민들레의 꽃말.
이 세 가지 의미를 모두 담았습니다.
중증 희귀 난치질환으로 장기 투병 중인 환아들은 성장 과정에 따른 교육과 정서적 돌봄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 내 부서가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인데, 국내에서는 아직 충분한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학생 때 어린이 병원에서 중증 희귀 난치질환 환아와 놀아주는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환아는 물론 가족도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지원은 부족했고요. 거기서 의료 복지 사각지대를 본 거죠. 봉사 외에 다른 방법으로 소아·청소년 완화의료를 돕고 싶어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은 창업 이후에 찾기 시작한 겁니다(웃음).두 가지 원칙이 있었는데, 먼저 아이들의 이미지를 불쌍하게 포장해서 어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아이들만의 발랄하고 희망차고 귀여운 이미지를 차용하자고 생각했죠. 그리고 오랜 기간 병마와 싸우는 아이들이 문제 해결 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무력감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싶었고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고민하던 어느 날, 환아들과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에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을 느꼈어요.
어른은 흉내 낼 수 없는 표현으로 가득했죠. 그런 확신으로 ‘상상 나라 그림 교실’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거기서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캐릭터화해서 디자인 상품을 만드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어린이 병원에 찾아가서 환아들과 선생님이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칭찬을 많이 하고,
그림에 담긴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죠. 그 결과로 민들레 마음의 캐릭터와 세계관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이후에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상상 나라 그림 교실은 중단되었다가 작년부터 비대면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드로잉 키트를 환아들에게 나눠주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토토’는 한쪽 귀가 더 긴 토끼입니다. 긴 귀로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요. ‘파리’는 자유롭게 떠다니는 해파리입니다. 양인 ‘바바’의 주변에는 알약이 그려져 있어요.
이걸 그린 환아 작가님이 참여한 상상 나라 그림 교실의 주제가 ‘내가 싫어하는 것을 먹어 치우는 동물’이었거든요. ‘봉구’는 저희도 이게 강아지인지, 고양이인지 모릅니다.
환아 작가님이 ‘봉구’라는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거든요. 엉덩이 쪽으로 튀어나온 것이 네 번째 다리인지, 꼬리인지, 아무튼 신비로운 친구입니다(웃음).
무엇보다 작가님들이 그림으로 표현한 단서를 놓치지 않고 캐릭터와 세계관으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캐릭터 이름은 작가님들이 그림에 적어 놓기도 하고, 없을 땐 저희가 짓기도 해요.
작년 서울디자인 페스티벌에서 환아 작가님들이 민들레 마음 부스를 찾아줬어요. 자기 그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기뻐하더라고요. 마스크 안으로 활짝 웃는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창업하고 첫 제품을 선보인 것이 2019년 8월이었습니다. 키링과 엽서, 스티커가 나왔는데, 토토와 파리 키링은 출시 4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인기가 많습니다.
착오로 택배 발송이 늦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늦게 보내드려 죄송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드렸더니 고객께서 예전에 동생이 희귀암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고, 좋은 제품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내용의 답 문자를 주셨어요. 정말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작년 연말 벽산그룹과 진행한 상상 나라 그림 교실에서는 든든한 지원 덕분에 전국 8개 어린이 병원의 94명 환아 작가님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SK그룹의 사회적기업인 행복 나래와의 협업 프로젝트는 결과도 성공적이었지만, 전임 계열사 임원들에게 정기적으로 받은 경영 코칭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창업할 때 민들레 마음의 발전 단계를 3단계로 구상했습니다. 굿즈 기업, 캐릭터 기업, 마지막으로 콘텐츠 기업. 굿즈 단계는 소비자가 제품이 마음에 들어 사는 것, 캐릭터 단계는 소비자가 각 캐릭터의 팬이 되는 것, 콘텐츠 단계는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와 세계관까지 이해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정의했어요.
요즘 특정 캐릭터의 제품을 몰아서 구매하는 고객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2단계까지 올라온 것 같습니다.
소셜 벤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인데, 그 과정에서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치 왼쪽으로 가면서 오른쪽을 봐야 하는 것 같은 갈등을 받아들이고,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주변에 문제를 알리고 도움을 구하는 것이 사업을 지속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코로나 19로 직접 만나지 못했던 환아들과 함께할 수 있는 많은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5월에는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인 ‘솔솔바람’ 창립 3주년 기념으로 ‘인생네컷’ 포토 부스를 서울성모병원에 설치해서 소아과 진료를 받으러 오는 환아들이 촬영할 수 있도록 안내할 계획입니다. 아픈 아이들에게 “얼른 나아서 행복해지자”라고 말하는 대신, “당장 오늘부터 행복해지자”라는 의미를 담은 이벤트입니다.
글 | 정규영
사진 | 김재형
출처 | DDP디자인스토어
※ 본 인터뷰는 DDP디자인스토어 D-Magazine에서 발행되었습니다.
https://www.ddpdesignstore.org/board/view.php?&bdId=magazine&sno=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