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短想02]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 Ⅰ

by DD Philosophy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재미있는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을 꼽자면, 나는 1순위로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릴 정도니까. 특히 외고라는 공부에 대한 압박이 많은 학교를 다녔지만,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크게 공부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셨다. 아니, 부담은 주셨지만 최소한의 부담이었달까..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때 크게 스트레스 없이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이것 때문에 재수를 했나 싶기도 하지만, 재수 시절도 딱히 달라진 건 없기 때문에, 재수랑은 상관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국어를 못했다. 아니, 대부분의 언어에 약했다. 외고라는 학교의 특성상, 우리는 고등학교 때 3가지 외국어를 배웠다. 전공어, 제1외국어, 제2외국어. 난 독일어과였기 때문에 전공어는 독일어였고, 영어과가 아닌 친구들은 제1외국어는 자동으로 영어가 되었다. 그리고 난 제2외국어는 일본어를 선택했었다. 따라서 난 고등학교 때 독일어, 영어, 일본어 총 3가지 외국어를 공부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셨던 어머니의 피는 다 어디로 갔나요? 나는 항상 언어가 부담이었다. 영어는 나름 외고생이라고 그래도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아 들곤 했지만, 국어/독일어/일본어 점수는 안정적이지 못하고 널뛰기를 하였다. 그래도 학창 시절 곧잘 공부를 했었던 나는, 성적표가 대부분 수 or 우 로 되어 있었는데 내 유일한 "미"는 일본어였다. 수능도 언어영역이 항상 부담이었고, 긴장감이 높았다. 왜 하필 언어영역이 1교시인지... 나에게 언어영역은 잘 풀어서 다 맞자 보자는 오늘은 찍은 게 다 맞기를 바라며 시험지를 펼쳤다.


역시나 나의 고3 수능은 언어영역 때문에 망했다. 모의고사 때도 잘 받아보지 못했던 수준의 점수가 수능 때 나와버렸고, 나는 주저 없이 재수를 선택했다.


재수생 생활을 하는 중에도 항상 언어영역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재수학원 등록을 하고 본격적인 학원생활이 시작된 2월부터 매월 모의고사 등수는 언어영역의 점수가 좌우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떻게 하면 점수를 올릴 수 있을까? 이런 고민 끝에, 나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몰라도 하루 날 잡고 서점에 갔다. 그리고 서점에 나와있는 언어영역 문제집을 전부 다 샀다. 소위 말하는 좋고 많이 푸는 문제집부터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출판사에서 나온 문제집까지, 서점에 꽂혀있는 언어영역 문제집은 다 샀다. 나의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내 기억에는 족히 10권은 넘었다. 그때가 4월이었고, 난 한 달 정도의 시간을 언어영역만 공부했다. 다른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오직 내가 사 온 언어영역 문제집만 풀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무식하게 풀고 모의고사를 봤는데, 그전에는 이해가 안 되었던 언어영역 지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점수는 수직상승했다. 그 이후부터 언어영역은 안정적으로 좋은 점수가 나오기 시작했고, 재수 수능까지 그 점수는 이어졌다.


과연 나는 언어영역을 못하는 아이였을까? 언어에 소질이 없는 아이였을까? 언어영역 공부를 안 했던 아이였을까? 언어영역 공부 방법을 모르고 있던 아이였을까? 무엇이었든 간에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언어영역을 극복했다. 그 방법이 지름길이었든, 돌아가는 길이였든 간에 나는 해냈다. 그 이후부터 나는 못하는 것이 아니고 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한계를 스스로 정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현실과 타협을 하면서 "난 여기까지 밖에 못해, 여기까지가 나의 최선이야"라고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일단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어디까지 해봤을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max였나? 나는 할 만큼 했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중학교 시절, 시험을 망쳐서 아버지께 혼났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제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좋지 못해서 죄송해요"라는 변명을 했었고, 아버지께서는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단 것이다. "라고 하셨다. 이때 나는 아버지는 너무 결과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과정을 등한시한다고 생각했다. 이 말은 이후부터 30대가 넘도록 나에게는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30대를 넘어 40대 중반을 향해가는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아버지의 말씀의 속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표현 방식이 좀 서투루셨지만, 아버지가 하고 싶으셨던 이야기를, 이제는 나도 알 것 같다.


공부던, 운동이던, 음악이던,,,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겁니다. 우린 다 할 수 있는데...

안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하다 보면 언젠간 됩니다. 우린 다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힘든 시간을 잘 버티면, 결국 결과는 따라옵니다.

이러한 단순한 진리를 40이 넘어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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