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복순> 스포일러 없는 리뷰
내가 호텔에 문을 열어 놓았던가? 일본인 야쿠자 오다. 휑한 바람에 몸이 차갑다. 분명히 호텔에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니 아스팔트 바닥에 몸 혼자만 덩그러니 누워있다. 정신을 차린 오다. 맞은편에는 트럭이 있고 그 뒤에 어떤 여자가 있다. 저거 뭐야? 유심히 보는 오다. 여자는 "정신이 드세요?"라고 질문한다. 남자는 뭔가 기시감이 든다. 누가 나한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거지. 아. 저 여자가 길복순이구만. 남자는 허세를 부린다. 길복순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냥 죽여버릴 수도 있던 거 그냥 공정하게 싸우려고." 목욕 가운 하나를 오다에게 던지고 장비를 준다. 정정당당한 결투를 계획하는 복순. 서로 전투를 벌인다. 치열하게 주고받는 합. 복순이 좀 밀리는 것 같다. 잠깐! 나 도구 좀 바꾸고. 오다는 "언제든 기다려주지"라며 허세를 부린다. 주섬주섬 차로 가서 무기를 찾는 복순.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오다는 길복순에게 야유를 퍼붓는다. 듣고만 있던 복순.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 소리의 정체는 총성이다. 오다에게 총을 쏜 길복순. 오다는 허무하게 죽는다. 가볍게 던지는 한 마디. "미안. 마트 문 닫을 시간이라."
사람 죽이는 건 쉬운 일이다. 베테랑 킬러인 복순에겐 뭐 익숙한 짓이다. 방금 전에 일본 야쿠자를 총으로 사살하고 뉴스에 나와도 그녀는 신경 별로 안 쓴다. 마트에 장 보고 술까지 먹는 복순. 다른 회사의 직원들과 함께 대화하고 있다. 딸 이야기도 나온다. 딸? 복순에겐 딸이 있다. 이름은 재영. 수입이 괜찮아서 금전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정작 암초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알게 모르게 세워져 있던 재영과의 장벽이다. 겉도는 모녀. 사람 죽이는 건 쉬운데 키우는 건 어렵다. 이 워킹맘은 살인자들이 활개 하는 지옥도에서 딸을 지키려고 한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설정된 인간관계는 차민규와 길복순의 관계다. 이 관계는 굉장히 기이하다. 또 암시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대놓고 말해주는 관계가 아닌데, 사실 글쓴이는 이 사이가 어떤 관계인지 알 것 같았다. 은유적으로 보여주는데 알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오마주가 너무 대놓고 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1,2편이다. 사실 이 <킬 빌>을 가져온 부분이 차민규와 길복순과의 관계 때문은 아니다. 우선 가장 먼저 등장하는 첫 번째 신이다. 일본인 야쿠자와 대결을 벌이는 복순. 이 장면 도중에 머리 윗부분이 잘리는 부분이 있다. 어 이거 어디서 봤는데? 1부 마지막에 들어간 장면이다. 오렌 이시이였나? 베아트릭스와 오렌 이시이가 싸우는 장면에서 이런 장면이 있다. 뭐 이 정도야 넣을 수도 있는 거지. 쿠엔틴 타란티노가 뭐 연출 특허를 낸 건 아니다. 그런데 가장 핵심은 길복순을 둘러싼 관계에 있다.
차민규의 동생 차민희가 등장한다. 이솜 배우가 맡은 역이다. 어? 이거 어디서 봤는데? 이 인물은 길복순의 라이벌처럼 존재하면서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이 대립하는 방식을 보면 <킬 빌>의 엘 드라이버가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다. 엘 드라이버와 베아트릭스 키도와의 관계가 길복순-차민희의 관계인 셈이다. 그리고 이 관계에 대한 오마주가 여기에만 있나? 아니다. 차민희와 차민규의 묘한 러브라인은 <킬 빌>에서 빌과 엘 드라이버와의 관계같이 보이는 감이 있다. 그리고 후반부에 차민규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신이 있다. 배우 설경구가 열연을 보여주는 신인데, 이 장면이나 촬영 구도나 시퀀스 이야기 전개 방식이나 <킬 빌> 1부에서 가져온 느낌이 있다. 극 도중에서 어떤 인물이 다른 사람을 참수하는 장면이다. 이때 인물들이 앉은 방식이나 대화의 내용이나 너무 비슷하게 가져온다. 전도연 배우 인터뷰를 찾아보니 "<킬 빌> 같은 강력한 액션은 없어도 엄마와 딸의 드라마가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전도연 배우의 열연에는 이견이 없으나 이 문장에는 살짝 모순이 있다고 생각한다. <길복순>이 이미 액션영화인데 '강력한 액션' 없다고 하는 건 조금 납득이 어려웠다. 그리고 <킬 빌>은 그냥 장르적인 특성 자체가 가족드라마적인 느낌이 있다. 이 작품에서 모녀관계가 없다? 영화의 기본 틀이기 때문에 살짝 지엽적으로 접근한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가장 핵심인 키워드는 모녀 드라마 다음으로 아이러니다. 어떤 것에 아이러니일까? 글쓴이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솔직하지 않은 딸의 태도가 서운한 어머니 길복순. 그런데 그녀는 살인청부업계의 베테랑이다. 다음 아이러니는 살인에 대한 규칙이다. 이 살인에 대한 규칙을 지키지 못하면 응당한 결과가 따라오는 듯한 세팅이 있다. 또 영화는 계약을 바탕으로 인물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어?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이러니와 구속? <킬러들의 도시>다. 다른 분들은 이 작품 <킬러들의 도시>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셔서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도 살짝 갖고 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우선 <킬러들의 도시>에서 핵심으로 작동하는 세 가지는 '구속' '규칙' '아이러니'다. 첫 번째 구속이라는 키워드는 영화 전체적으로 서려있는 종교적인 소재들로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연옥이라는 단어가 '토트넘'이라는 대사와 함께 나오기도 한다(연옥의 뜻은 '지옥과 천국 사이 가운데에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 연옥 사이에서 켄, 레이가 나오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간적인 구속이 있다. 이는 영화에서 계약이라는 점과 대비되는 느낌이 있다. 또 아이러니를 활용하는 방식은 규칙과도 관련이 있다. <킬러들의 도시>에서 켄과 레이는 규칙을 앞두고 아이러니를 느낀다. 켄은 이 작품에서 대주교를 암살하다 규칙을 어긴다. 이 규칙을 어겼다는 사실 만으로 주인공 켄은 자기 파괴적 행동을 반복한다. 이 켄이 규칙을 어겼는데 가만히 놔둘까? 이 영화에서 마음고생하는 켄을 억제하기 위해어 떤 캐릭터가 등장하는지 생각해 보면 재미있다. <킬러들의 도시>의 감독 마틴 맥도나가 이런 아이러니를 넣은 이유는 인간의 도리를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이 작품에서 반복되지만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게 사람이라면 할 짓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도리에 대해서 <길복순>도 묻는다. 바로 모녀간의 관계를 아이러니라는 모티브로 표현한 것이다. 뭐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아이러니나 두 인물을 통한 질문이 무엇인지 적는다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글로 쓰기가 어렵다. 그러나 영화에서 말을 전개하는 방식을 보면 <킬러들의 도시>에서 뭔가 갖고 온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약간 뒷배경처럼 설정되는 부분이 있다. 킬러들이 사람을 죽이고 난 다음 뭘 할까? 뒤처리를 하겠지? 이 뒤처리를 하는 방식이 너무 '존 윅'에서 갖고 왔다. 그리고 인물 간의 관계를 보면 <존 윅 : 리로드>에서 갖고 왔는데 이 디테일을 쓰자면 두 작품에 스포일러가 되니 생략하기로 한다. 그리고 '존 윅'과 길복순이 갖고 있는, 필기구라는 소재 공통점이 있다. 이 길복순이 필기구를 활용하는 방식은 없어도 큰 문제가 없다. 1회성 액션이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존 윅'시리즈에서 연필이 갖는 이야기는 분명히 비중이 있다. 세계관 내 최강자라는 존 윅의 인물 설정을 연필로 소개한다. 심지어 이 연필이 시리즈에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길복순>에서 길복순이 최강자라는 설정은 굳이 그 장면이 아니더라도 액션으로 다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액션에서 기억 남는 것은 '너 방금 죽었어'라는 대사뿐이었다.
'킹스맨'에서 갖고 온 부분도 있다. 이 '킹스맨' 시리즈에서 갈등 요소를 갖고 온 부분이 있다. 또 영화 중반부 길복순 vs 다수 전투신은 장면 연출이 '킹스맨'을 연상케 한다. 그중 '킹스맨'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차민규의 액션신이다. 물론 설경구 배우의 열연에는 역시 이견이 없다. 그 속삭이는 발성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배우는 설경구 배우만이 유일하다. 그런데 이 장면을 이렇게 화려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었나는 의문점이 있다. '킹스맨'에 너무 취한 것이다.
이렇게 오마주가 들어간 거? 뭐 그럴 수 있다. 변성현 감독은 사실 전작에서도 오마주를 많이 넣었고 그의 방식대로 영화화했다. 글쓴이는 전작 <킹메이커>에서 박찬욱 감독의 연출방식이 연상되는 지점이 있었다. 그런데 이 <킹메이커>에서 이 변성현 감독이 가졌던 연출법은 절대 조악해 보이지 않았다. 박찬욱 느낌이 있건 뭐 건간에 충분히 변성현의 영상언어라고 볼 수 있었다. 너무 대놓고 빛과 어둠을 드러내긴 했지만 뭐 어때? 재미있으면 장땡이다. 변성현은 그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재미있는 톤을 그동안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면 너무 분산됐다는 느낌이 강하다. 영화에서 갖고 있는 소재가 너무 많다. 일단 살인, 액션, 모녀관계, 학교폭력. 네 가지 소재가 다 강력한 키워드들이다. 하나만 영화에 들어가도 충분할 것 같은데 네 개가 한꺼번에 들어간다. 뭐 이런 걸 잘 만들면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더 들어간다. 동성애, 아이러니, 차민규와 차민희의 관계, 가정폭력, 고위 정치인의 비리, 공정사회라는 소재도 영화 안에 있다. 이 어려운 여섯가지 소재가 영화의 핵심으로 작동하나? 그건 또 아니다. 주인공 중 하나인 길복순의 딸 재영이가 굳이 그런 소재로 설정하지 않았어도 이 영화가 전하고 싶었던 장르적인 쾌감은 충분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영화에서 강한 소재가 내내 산재해 있기 때문에 생각할 게 너무 많아서 장르적인 통일성을 깬다는 것은 영화의 가장 큰 단점으로 느껴진다. 이러다 보니 영화가 갖고 있는 수많은 오마주들이 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전부 다 따로 노는듯한 불균일함이 있는 것이다. 전도연, 설경구, 구교환의 열연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 말고 영화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아이러니의 힘이 별로 없었다는 건 많이 아쉽다. 글쓴이는 변성현 감독이 좋은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젊은 나이에 이런 평을 받은 영화감독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이런 작품보다 더 개인적인 영화가 나왔으면 한다. <킹메이커>가 재미있는 영화로서 충분했던 것이 개인적인 히스토리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더 큰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대사들이 유치했다? 각본의 디테일이 부족하다? <킹메이커>에서 조우진 배우가 맡았던 캐릭터를 과연 같은 사람이 창조한 것인지 좀 지엽적인 단점으로 느껴지는 정도니 말 다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