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라는 남자> 스포일러 없는 리뷰
온 세상이 흑백으로 가득했다. 소냐를 만나기 전까지 오토의 삶은 온통 검은 것들 투성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가 없다. 병마와 싸우다 6개월 전에 세상을 떠난 소냐. 소냐의 남편이었던 오토의 일상은 팍팍한 것들 투성이었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노인이 된 오토. 이제 삶의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 어느 한 가게에서 밧줄을 고르고 있다. "도와드릴까요?" "나도 이런 것쯤은 할 수 있어" 퉁명스럽게 받는 오토. 사실 오토에게 이런 까칠함은 어제 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까칠한 오토. 같은 이웃에 사는 사람들도 오토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
이런 오토에게 유일한 일상이라곤 동네 사람들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이다. 가령 누가 캔/플라스틱을 버리는 쓰레기통에 종이류를 넣으면 어디선가 집게를 가져와서 올바르게 분류하는 일 같은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잡아서 '그러면 안 되지' 시비 거는 일도 빠질 수 없다. 아니면 살고 있는 동네에 느닷없이 차가 들어오는 일을 막는다. 직장? 반강제 명예퇴직으로 이제 백수 되게 생겼다. 사는 재미를 잃어버린 오토. 이제 마지막 선택만 남겨두고 있는 것 같다. 끝 앞에 섰다. 마지막 결심이면 된다. 모든 걸 정리하려고 할 때, 어디선가 쾅쾅쾅하는 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옆집에 이사 온 사람들인데요!"
남자 주인공. 인생을 소재로 함.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방황함.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음. 어디서 본 느낌이 있다. 바로 저번달 3월 1일에 개봉했던 <더 웨일>이다. 이 작품 <더 웨일>을 보면서 느낀 건 뭔가 감독의 동어반복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바로 <레슬러>와의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이는 <더 웨일>의 감독으로 국한되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런 가족드라마적인 영화는 그동안 할리우드에서 자주 만들어져 왔는데, <원더>나 <스텐바이, 웬디> 같은 영화도 <레슬러>나 <더 웨일> 느낌이 났다. 이런 류의 영화들이 묘하게 할리우드에서 공장처럼 나온 셈이다.
이 <오토라는 남자>도 이 문법에 충실하다. 뚜렷한 빌런? 있긴 있는데 영화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을 보면 앞에서 언급한 작품들과 공통점이 있다. 삶의 의미를 찾아 배회하는 인물들, 또 숭고한 주변인들까지 공식이라도 있는 것처럼 영화는 이야기를 끌고 간다. 또 영화 내적으로 품고 있는 교훈적인 메시지도 각 작품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스텐바이, 웬디>역시 협력과 전진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고, <더 웨일>은 '타인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오토라는 남자> 역시 주인공들의 주변인을 보여주는 방식을 보면 이런 영화들의 연장선상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이 <오토라는 남자>가 다른 미국식 신파와 차이점을 갖는 부분은 당연히 있다. 바로 인물 간의 내적 동기다. 일단 주인공 오토는 관점에 따라서 굉장히 이상한 사람처럼 보인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사람이 저렇게 오지랖이 넓어? 자기 인생보다 남이 더 중요하나? 아니 저 이웃들은 왜 저렇게 행동하지? 영화 전체적으로 이런 인물들의 동기를 초반엔 미스터리로 놔두다가 후반부에 매듭짓는다. 이 매듭지는 과정을 자세히 보다 보면 우리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감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글쓴이는 주인공 오토의 설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주인공 진짜 꼴 보기 싫을 수도 있는데, (많은 분들에게) 납득이라도 갈 수 있던 이유는 인간 내면에 대한 통찰력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면서 환하게 웃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오토의 과거 회상이다. 영화 자체가 두 가지 장르를 갖고 있다. 현대 시점의 가족드라마와 과거 시점의 로맨틱코미디다. 후자 로맨틱코미디 부분에서 연출에 힘을 줘야 현재 시점의 가족드라마에 설득력이 생긴다. 오토라는 인물에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런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한다.
우선 소냐가 등장하는 첫 장면을 보면 감독이 섬세함을 놓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톰 행크스가 연기하는 인물의 특성을 그대로 살린다. 이 부이 들어간 것만으로도 인물의 입체성을 살리는 연출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 소냐와 오토가 어떻게 처음 만났을까?라는 점에서도 사랑의 속성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오토는 강박적으로 규칙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남에게 참견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규칙에 대한 집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사람과의 첫 만남을 그렇게 만난 것이 '흑백뿐이던 내 삶에 소냐만이 유일한 색채였다'라고 말하는 것과 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둘의 가슴 뛰는 첫 만남이 있고 나서 사랑에 빠지는 묘사도 생기 있는 연출을 보여줬기 때문에 젊은 오토에게 감정이입이 잘 되는 편이다. 가령 서로 사랑을 확인할 때 주변인들이 어떤 행동을 한다던가 소냐가 벨을 빵빵 울린다던가 하는 것들이 (이런 장르에서) 많이 봐왔던 것들이지만 인상 깊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다. 이렇게 장르적인 특성을 못 잡으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는 인물의 서사를 감독의 기본기로 잘 주파한 역량이 돋보였다.
그렇게 배우 연기 좋고 인물 내면 묘사 꼼꼼하며 소소한 웃음에 감동스러운 코드도 있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우선 후반부다. 영화 후반부에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 갈등이 있기 이전에 전제 조건처럼 따라오는 사건이 있다. 이 사건과 영화의 핵심 갈등을 잇는 판단은 좋았지만 문제 해결이 숙제하듯 쉭 넘어간 건 아쉽다. 이 부분에 힘을 더 줬어도 되지 않았을까? 또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의 처지나 입장을 들여다보면 영화의 핍진성이라는 관점에서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다르게 느껴졌던 영화의 허점은 바로 오토의 이웃들이다. 오토를 대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인물을 둘러싼 인물들의 리액션에 의문이 든다. 후반부에 오토의 정보를 잘 아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 부분이 어떻게 가능할까? 는 영화에서 중요한 건 아니니 차치한다. 이 인물을 제외한 이웃들이 오토를 방문하는 일이 영화에서 약간 편의적으로 사용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미 오토의 성격을 활용한 방식이 인물연출에 사용된 만큼 좀 더 입체적인 서사가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한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영화는 살짝 개성이 없다고 느낄 정도다. 그러나 아는 맛을 잘 만드는 것도 영화의 미덕이다. 영화는 정말 잘 아는 내용을 귀여운 코미디와 마음 찡한 가족드라마로 만들었다. 사실 인생을 살아가는 일이 모두 다 쉬울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삶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한 30개쯤 있다 하더라도 계속 즐겁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근거 하나만 있어도 일생을 보내는데 아무 지장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여러분이 '살아갈 수 있는 한 가지의 이유'가 되면 어떨까? 글쓴이는 (이런 영화가 익숙하긴 하지만) 이 영화가 여러분에게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