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혼자라도
도서관에 있다. 어제는 학교를 다녀왔다. 졸업 신청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혼자 걷는 나. 신나는 발걸음. 대학 졸업을 손 놓아 기다려왔기에 이 날이 오는 걸 기꺼이 받아들였다. 저벅저벅 걷는 나. 강박적으로 휴대전화를 킨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스토리들을 파파박 읽는다. 또 강박적으로 앱을 켜서 애플뮤직으로 들어간다. 사실 요즘 즐거운 일이 이 애플뮤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를 꼬박꼬박 보는 입장에서 음악을 다 챙겨 듣기엔 좀 부침이 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이제까지 듣던 음악을 바탕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짠다는 말이다. 이 음악에서 돌비 사운드 효과가 있는 곡을 고른다면 청각적인 쾌감이 엄청나다. 보통 아이브나 에스파 같은 대형 기획사의 걸그룹들이 이 돌비 아트모스 효과를 갖고 있다. 하지만 가끔 지뢰 같은 일이 있다. 바로 언더 뮤지션들 중에서 이 믹싱효과를 넣고 음악을 만든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미닛이라는 아티스트가 ‘blue’라는 ep를 발매한 적이 있다. 여기 있던 곡들은 돌비 아트모스 효과가 적용된 곡이다.
그중 ‘뭐’라는 곡을 좋아한다. 영어 제목은 ‘so what’이다. ‘니깟게 뭐?’라고 소리 지르는 후렴구가 시원하다. 내 생활이 여기에서 왔다. 생각해 보면 이 학교에 와서 일어났던 일들이 다 뭔가를 비웠기 때문에 얻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문득 작가님 소리 듣고 싶었던 것,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찾고 싶었던 것, 내 인생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으면 했던 마음까지 다시 돌아보면 찾을 수 있던 발견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인사드리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무슨 고백하듯이 스르륵 몇 마디 던지고 부랴부랴 나온다. 다시 내려가는 길. 사회대에서 학교 정문까지는 참 먼 길을 걸어야 한다. 다시 에어팟을 켜서 걷는다. 걸어가려니 어제 있던 일이 생각난다. 가기 싫기도 했지만 다들 하하 호호 떠들던 모습을 보니 즐거웠다. 그거면 됐지. 어느 정도 결말을 예상하고 한 일이어서 그런지 받아들이는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이 역시 나의 능력을 세상에 증명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안 좋은 기우는 아니다. 원래 글을 쓰는 건 이 시야를 넓게 보는 것이 생명인 게 아니겠어. 깡그리 다 죽은 유머감각과 하이 텐션이 안타까웠다. 살다 보니 유머를 잊었다. 속상한 생활의 발견이었다.
버스에 타려고 정류장에 도착한다. 정류장 좌석에 때마침 자리가 없었다. 정류장 뒤에 나무로 된 의자가 있다. 털썩 내려앉아서 먼 산 바라본다. 멍-때리는 나. 시야 먼 곳에 나무가 흔들거리는 듯하다. 건물도 보인다. 허허 웃음이 나온다. 아무 이유가 없었다. 요즘 웃을 일이 있었나? 당연히 있지. 한 3일 전에 유튜브 영상 보다가 배 찢어지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비단 어제 술자리에 가서도 웃었는 걸. 내내 똥 씹은 표정으로 살기에는 앞으로의 인생이 많이 남았다! 나는 아직도 즐거운 일이 많다. 하지만 서글프게 느껴지는 생활의 발견 한 가지. 가끔은 혼자라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혼자 걸어가는 길. 웃을만한 일이 없다는 건 안타깝게 느껴진다. 요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나 봐. 아무 생각 없이 살라고 21개월 제약을 둔 것 같긴 하지만 정말 그 속에 들어간 것 같아서 나한테 탄식이 느껴진다.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드는 기분은 외로움이다. 참 긴 시간. 매일 혼자 걸으면서 새롭게 느껴지는 발견이 있다. 다들 이렇게 살고 있겠지. 하지만 여전히 혼자 남았다는 걱정이 날 안타깝게 만든다. 오랜만에 혼자인 나를 찾았다. 참 쓸쓸한 일이다. 사람들 사이에 벗어나니까 더 그런 고독이 느껴진다. 난 나를 알아서 다행이지. 그런데 이 이미 알았다는 사실이 5년쯤 됐다. 좀 이제 힘에 부치는 느낌. 하지만 나에게 보내주는 따뜻한 시선을 올곧게 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나 역시 어떤 온기를 필요로하지만 내가 그걸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드는 셈이다. 혼자 살다가 갈 수 밖에 없는 걸까 싶어 나이 드는가보다 하는 마음이 든다. ’시지프의 신화’를 읽었었다. 이런 것도 삶의 한 부분이라고들 하는데. 가끔 보면 이 큰 지구에 혼자 사는 것 같은 기분이 속상할 따름이다. 내가 사람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괴물은 되기 싫은가 보다. 이런 기분이 드는 거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