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동 Sep 17. 2023

제주와 전 세계의 여성들을 영화관에서 만나다

제24회 제주여성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제주도가 후원하고 (사)제주여민회가 주관한 '제24회 제주여성영화제'가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CGV 제주점에서 열린다. 올해 제주여성영화제는 '계속해서 피어나는’이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전세계에서 상영한 여성영화 및 제주지역의 영화감독이 만든 독립영화들을 상영한다. 윤홍경숙 집행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최근 여성들을 둘러싼 상황이 녹록지 않다'며 '세상을 깊게 응시하고 서로 손을 맞잡아 춤추며 싸우면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피어날 것'이라고 영화제 설립 의의를 밝혔다. 



개막작인 <강력한 여성 지도자>는 호주의 첫 여성 총리 '줄리아 길라드'의 임기를 소재로 호주 내에 만연했던 여성혐오에 대해 다룬다. 윤 집행위원장은 개막작 선정 이유에 대해 '유능하고 강한 권력을 가졌더라도 여자라는 이유로 존중하지 않고, 혐오와 차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우리 사회의 추한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라고 전했다.


영화의 특별 세션은 여성을 향한 논쟁적 시선을 내포하고 있는 '올해의 특별시선', 나이, 국적, 인종, 문화, 계급, 성적지향을 불문하고 다양한 곳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여풍당당 그녀들', 여성들의 일상을 담은 '그래도 삶은 지속된다', 단편 경쟁 섹션인 '요망진 당선작'으로 구성됐다.


 


부대행사로는 올해 개봉작이었던 <비밀의 언덕>의 이지은 감독, <지옥만세>의 임오정 감독, <물꽃의 전설>의 고희영 감독이 GV(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이 외에 선정작 중 <애프터썬>, <성스러운 거미>,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퀴어 마이 프렌즈>는 제주에서 상영관이 잡히지 않은 개봉작이었다는 점이 이목을 끌었다. 


단편경쟁섹션 '요망진 당선작'에는 <여운이라는 게>, <양림동 소녀>, <퀸의 뜨개질>, <타인의 삶>, <행복한 결혼식>,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과화만사성>, <매달리기>, <민희>와 <실금>이 선정되어 관객들의 선택을 받았다. '제주지역작품 초청작'으로는 <돌들이 말할 때까지>가 초청되어 김경만 감독이 선정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폐막작으로는 이마리오 감독의 <작은 정원>이 선정됐다. <작은 정원>은 강릉시 구도심에 있는 여성 커뮤니티를 소재로 여성들 간의 연대와 성장기를 다룬 영화다. 고의경 프로그래머는 폐막작 선정 이유에 대해 '일회성의 이벤트로 소비되는 객체가 아닌 자신들의 이야기를 스스로 말하는 주체가 되어가는 '언니'들의 모습은 눈부시다'라고 밝혔다. 



나의 PICK

<애프터썬>


사람마다 분기점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곱씹어보게 되는 사건이 있다. <애프터썬>은 그 지점에 관한 영화다. 보통 지금 내가 현재 없는 것에 탄식하며 과거를 돌이킨다. 하지만 그때를 돌이킨다고 해도 떠나간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고, 어렸던 나는 이제 과거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아버지와 딸이라는 흔적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깊어졌다는, 한 여성의 후회를 품은 회상은 작년과 올해 전 세계의 많은 관객들을 울렸다. 이 영화로 폴 메스칼은 지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성스러운 거미>


2000년대 초반의 이란.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이유는 17명의 여성이 잔혹하게 살해됐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거미>는 이에 대해 다룬다. <경계선>을 연출한 알리 아바시 감독은 전작에서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만든 반면, 이 <성스러운 거미>에선 건조한 톤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군데군데 표현 수위가 좀 과한 거 아닌가 싶은 지점이 있지만 영화가 다루고자 했던 이란사회의 여성혐오와 사회구조적인 모순을 다루는 데에는 가감이 없다. 예상을 전부 빗나가는 엔딩신은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 불릴 만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널 꼭 사랑하겠어'라는 집착이 꾼 악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