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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Sep 20. 2023

종교와 정치의 결탁을 비판하기엔 무딘 칼

<미션>(1985) 스포일러 있는 후기


너 나랑 일 하나 하자


이 영화의 시대적인 배경은 18세기의 남아메리카다. 잘 나가던 용병이자 노예상이었던 로드리고. 로드리고의 일상에서 빛나는 건 여자와 돈뿐이다. 사람 열심히 죽이고 납치해서 돌아왔다. 노예 매매업자와 대화하는 로드리고. 로드리고는 매매업자에게 산 카를로스 지부에서 선교사들이 왔다고 말한다. 종교단체가 와도 로드리고에겐 그렇게 큰일이 아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만나는 동생과 여자친구. 하지만 여자친구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로드리고에게 충격적인 내용을 고백한다. “사실 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 네 동생.” 충격받은 로드리고. 동생 펠리페에게, 여자친구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


두 사람은 헤어졌다. 괴로운 일상. 끝이 아름답지 못했던 이별이라 상흔이 더 크다. 상처의 반작용이 일어난다. 갑자기 쳐들어간 전여자친구의 집. 펠리페와 그녀가 함께 있는 꼴을 본다. 화가 난 로드리고. 펠리페는 당황한 탓에 로드리고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칼싸움이 일어난다. 승자는 로드리고였다. 동생 펠리페를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인다. 결투에 의했다고 하더라도 살인은 살인이다. 감옥에서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로드리고에게 손님이 찾아온다. 이름은 가브리엘이고, 산 카를로스 선교회 소속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손을 건네는 가브리엘. 신부와 전직 노예 매매상은 힘을 합쳐 예상치 못했던 드라마를 써 내려간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37년이 지난 현재 2023년에도 유효하다. 영화에 깔려있는 세 가지 전제는 나와 다른 문화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 / 정치와 종교의 결합 / 무력과 평화의 충돌이다. 영화가 세 가지를 건드리는 방식은 간단하다. 영화는 인물이 다른 문화에 들어가서 동화되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로드리고처럼 무관심했거나 추기경처럼 삐딱한 관점에서 바라봤던 것들이 그 사이에 들어가니 ‘다 사람 사는 이야기더라’식의 귀결이 나는 것이다. 이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울림이 느껴지는 연출 방식을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서 이 부족을 묘사하는 요소는 사실적이다. 영화는 원주민들의 가까이에서 그들의 일상을 묘사한다. 과라니 족은 파라과이에 존재하는 아메리카 원주민이라고 하는데, 이 지점을 잘 구현한 것이다. 가령 초중반부에 두 주인공이 원주민들의 부족에 교화되는 장면이 있다. 강가에서 인물들이 웃고 즐기는 시퀀스는 로드리고에게 관객들이 마음을 열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 이 바로 다음이 인물들이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여기서 무언가를 먹을 때 인물이 하는 대사들, 장면 연출 방식은 이 음식이 단순히 먹는 것 이상의 온정을 의미하고 있다고 암시한다. 부족의 일상을 묘사하는 방식에도 사소한 걸 놓치지 않았다. 영화에서 활이 굉장히 중요한 무기로 사용된다. 이 화살은 3년 전까지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원주민들의 일상에 반드시 필요한 도구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원주민들의 헤어스타일도 특이하다. 머리를 땋았고 헤어밴드를 끼고 있다. 이 역시 현대 21세기까지 과라니 족에게 이어진 전통이라고 한다. 화살과 마찬가지로 과라니족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일상생활 고증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음악이다. 뭉클한 장면 중 하나인 가브리엘의 오보에 장면은 단지 음악으로만 서로 소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엔 과라니 족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원래 과라니 족이 음악을 좋아하던 민족이었다고 한다.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알게 되면 영화가 관객을 설득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 느껴진다.


 다음은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다. 영화는 로드리고의 직업에서 이 두 세계의 대립을 묘사하고 있다. 로드리고는 민간 노예 매매상이다. 그리고 반대측면에서 유럽 열강을 묘사할 때 국가가 노예를 사고파는 일을 이야기에 삽입한다. 구원의 대상이었던 로드리고를 유럽 열강과 동격에 놓은 연출이다. 이 장면이 아니더라도 정치권력-종교의 결합과 ‘사람 사는 이야기’ 간의 대립은 두 집단이 배를 타는 장면만 봐도 구분이 된다. 전자는 색감이 다들 제멋대로인데 후자는 한 팀이 되어 일관성을 띤다. 세 번째는 비폭력과 폭력의 대립이다. 영화는 이 두 가치의 대립을 배경으로 두고 주인공 둘이 내리는 결과의 측면을 숭고하게 묘사하고 있다. 두 사람이 감화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힘이다. 대표적으로 로드리고와 가브리엘의 기본 설정이 그렇다. 이 두 사람의 설정은 굉장히 특이하다. 로드리고는 동생을 자기 손으로 죽였는데 그 이유가 여자친구의 바람이었다는 점이 나름 이해는 가지만 역시 끔찍한 아이러니를 품고 있고, 가브리엘은 초반부부터 온갖 고생 다 하는 장면을 삽입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초반부 이후 중간 과정이 얼마나 내밀했는가는 차치하고서라도 두 사람의 희생에 동의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서 온다. 두 설정을 사실적이지만 흔하지 않게 설정한 덕에 두 사람의 결과가 이해가 된다. 폭력과 비폭력의 대립을 넘어선 무언가를 보여준 것이 이 영화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이유다.


거장의 클래스


영화의 강점으로 뽑을 수 있는 부분은 제레미 아이런스, 로버트 드니로, 엔니오 모리꼬네다. 제레미 아이런스와 로버트 드니로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배우다. 제레미 아이런스는 이 영화 이후에 더 위상이 올라간 축에 속하지만 로버트 드니로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1974년에 발표한 <대부 2>를 통해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드 니로. 드 니로는 이 영화에서 그동안 쌓아 올린 역량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캐릭터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구원을 의미한다. '이 인물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가'가 영화 제목인 ‘미션’이기도 하고, 줄거리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이 영화가 가진 단점 중 하나 역시 드 니로의 로드리고 캐릭터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명확하게 구현하기 위해서 평면적인 캐릭터에 배우가 생동감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러닝타임 중반부에 추기경과 언쟁이 붙는다. 이 장면에서 로드리고가 추기경에게 사과하는 시퀀스는 지겹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의 2/3 정도가 로드리고가 신성한 가르침을 받고 개과천선하는, '추기경에게 사과하는 것과 유사한 에피소드들의' 이야기이다. 이미 중반부까지 지겹도록 봤던 내적 성장을 굳이 또 보는 것이기도 하고, 이 장면까지 침투해 있는 서구중심적인 관점을 굳이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후에 이 인물의 설정을 살리는 양자택일의 순간이 오기야 하지만 러닝타임 절반이나 할애해 가며 이 캐릭터의 서사를 이런 식으로 쌓을 필요는 없었다.


다른 주연인 제레미 아이런스는 가브리엘 수사 역을 맡았다. 글쓴이는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 이 캐릭터라고 본다. 이 인물은 영화가 갖고 있는 단점을 공유한다. 서구문화와 기독교 중심주의적인 관점이 깔려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 인물을 이렇게 설정할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가브리엘은 영화에서 ‘사랑은 주는 사람에게도 행복한 일’이라는 종교적인 테마를 구현하기 때문이다.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로드리고의 개화’ 만큼이나 배경 축에 속하는 것은 ’ 가브리엘의 개화’다. 대표적으로 가장 첫 시퀀스는 두 사람이 십자가에 박혀 폭포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장면이다. 이 장면 자체는 영화 후반부까지의 전개를 암시하는 듯 하나, 사실상 이 캐릭터들의 일대기를 요약했다고 보는 쪽이다. 가브리엘 수사는 로드리고를 만나기 전에 온갖 수난을 다 겪는 캐릭터다. 결국 원주민들이 마음을 열긴 하지만 오지에서 선교생활을 하는 것의 고충은 영화가 부지런하게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이 캐릭터의 서사는 로드리고를 만나고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사실상 '폭포수를 정면으로 들이받는' 일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그의 척박하기만 한 일상을 로드리고가 와서 사람 사는 이야기로 변했다는 점, 또 후반부의 선택이 이 과정을 토대로 이뤄졌다는 점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살리는 좋은 연출이었다.


이 작품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엔니오 모리꼬네는 영화의 톤을 가로지르는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줬다. 사실 영화에서 연출을 맡은 롤랑 조페보다 음악감독인 엔니오가 더 탁월했다. 왜 음악이 뛰어난지를 서술하기 위해선 단점부터 써야 한다. 이 영화가 비추는 카메라는 원주민들을 전시용으로 쓴다. ‘왜 정치와 종교가 결탁하면 안 되는가’를 질문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단지 평화로운 원주민들의 모습을 보는 게 이야기가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중후반부에 추기경이 원주민들에게 동화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굉장히 중요하다. 원주민들의 생사를 가로지르고 두 인물의 선택이 가로질러지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 ‘추기경이 동화되는 듯한’ 장면과 ‘두 사람이 양자택일을 골라야 하는 장면’은 상호가 서로를 반박하는 듯하다. 정치권과 종교가 결합한 야만의 역사를 비판하는 것이 영화의 핵심인 것과 결이 맞지 않는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걸 전하고 싶었던 듯한데, 사실 이 영화가 영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연출가가 인물을 위해 변명하고 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이 장면마저도 숭고하게 보이게끔 연출한다. 영화가 지향해야 할 점을 명확하게 이해해서 장면의 해석 여지를 줄여 좁고 굵은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이 외에도 이야기의 크고 작은 구멍이 있다. 대표적으로 주인공 로드리고가 추기경의 결정에 반하는 판단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원주민 아이가 칼을 들고 로드리고에게 찾아가는 장면이다. 이 시퀀스는 1986년도나 2023년의 관점이나 조악하다고 볼 수 있는데, 영화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이해해서 중세 비극처럼 연출한 뛰어난 감각이 느껴지는 지점이다.


하고 싶은 말이 이야기보다 큰


영화의 첫 장면은 이야기를 함축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두 사람의 희생이 결국 십자가에 묶인 채로 폭포수 아래 떨어지는 것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폭포에서 액션 신이 벌어지는 점도 이와 유사한 연출이다. 이 장면에서 폭포는 사실상 지옥도처럼 묘사된다. 물이 생명의 근원지라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이 외에도 공간을 촬영 방식과 조명으로 대비시킨 측면이 있다. 영화가 외부인들의 공간은 어둡지만 원주민들의 공간은 밝은 톤으로 묘사했다. 물건에 의한 상징도 들어갔다. 십자가라는 상징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묘사된다. 초반부 가브리엘이 십자가를 끌어올리는 장면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신앙심이 깊어진다. 또 후반부 인물의 순교를 앞둔 장면에서도 십자가 목걸이가 클로즈업된다. 또 칼이라는 암시도 이야기에서 수미상관이 된다. 동생을 죽음으로 내몬 칼이 신의 은총을 받들기 위한 도구가 됐기 때문이다.  이런 소재를 영화의 내적 논리에 결합시킨 것은 분명한 이야기의 응집력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느껴지는 ‘아무튼 반성했어’의 변명은 이야기에 누수를 체감하게 된다. 칸의 황금종려상 선택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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