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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Oct 09. 2023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보다

부산국제영화제 '2023 커뮤니티 비프' / <잔느 딜망>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잔느 딜망


이 영화의 주인공은 1970년대의 벨기에 어느 동네에 사는 주부 잔느 딜망이다. 가정주부인 잔느. 하는 일이라곤 정해져 있다. 밥하고. 빨래하고. 요리하고. 아이들 챙기고. 딱히 치열하거나 게으를 것도 없이 하루가 간다. 밖으로는 잘 안 나가는 것 같은 잔느. 하지만 이 모든 게 당연하다는 듯 잔느의 관심사는 집이다. 아들 아들도 딱히 지루해하는 구석이 없는 것 보니 엄마를 좋아하는 것 같다. 평화로운 일상. 겉보기에 잔느의 안분지족 하는 일상은 그녀에게 안성맞춤이다.


이런 그녀에게도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사실 잔느의 집은 집안일과 매춘이 동시에 벌어지는 장소였다. 별다르게 일을 하지 않는 잔느. 이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같은 일만 계속 반복하려니 지겹다. 갑자기 잘 깎이지 않는 감자. 신경질적으로 감자를 깎는다. 또 아들의 시답잖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무너지는 일상. 잔느는 더 끔찍한 비극을 받아들여야 한다.


No.1


이 영화는 작년 2022년에 발표한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1위에 오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는다면 '이게 왜?' 생각하기 쉽다. 영화 러닝타임의 대부분이 주인공 잔느가 집안일하거나 밖에 잠깐 외출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의 이야기가 잔느의 집안일에 기반한 탓에 일반적인 극영화랑은 거리가 있다. 하지만 영화(를 비롯한 모든 창작물)가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작품의 정교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카메라의 구도부터 이 영화는 특별하다. 영화는 지겨울 정도로 특정 구도를 반복한다. 눈높이는 잔느와 비슷하다. 인물 양옆에 물건들이 있다. 영화의 위-아래도 잔느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는 물건들이 배치되어 있다. 영화는 이 구도를 20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전부 적용한다. 심지어 이 구도는 잔느가 외출하는 장면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전체적인 화면에 비해 인물이 작아 보인다. 외출을 끝내고 잔느가 집으로 돌아올 때 엘리베이터를 탄다. 다시 잔느의 부피가 커진다. 다시 답답해진다. 이 구도는 잔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더 의미가 명확해진다. 잔느는 마치 철문을 열고 감옥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실내 안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이 영화의 촬영구도는 집 안 / 집 밖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집 밖에선 고립감을, 안에선 폐쇄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영화가 여성들에게 있어 ‘집안일=감옥’과 유사하다는 걸 은유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모든 상황을 통제하듯


잔느가 집안일이라는 감옥에 있기 때문에 서서히 미쳐가는 인물을 묘사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주인공 잔느가 감자를 깎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잔느는 손목이 다쳐도 두렵지 않은 것 같이 감자를 깎는다.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있다. 한 번 마시고 그냥 다 버린다. 후반부에 아이를 돌보는 장면이 있다. 얼굴에 단 조금의 미소도 품지 않고 정색한 채로 아이를 달랜다. 달래려고 하면 할수록 아이는 더 크게 운다. 이젠 아예 아기가 울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는 잔느. 인물에게 누적된 스트레스를 체감하게 한다. 이 감옥은 다른 의미로 치환되기도 한다. 우선 집안일과 성노동이 같은 공간에서 이뤄진다는 점은 가사노동의 본질적인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성노동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식으로 이뤄지는지를 극후반부에서야 그나마 보여주는 편이다. 이 말은 즉슨 성노동이 인물의 생계와도 관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생략했다는 뜻이다. 이는 여성의 일상이 얼마나 피폐한가를 묘사하는 것과 대치되기 때문에 감독이 고의적으로 분량을 없애버린 것이다. 일상에서 서서히 벌어지는 균열이 후반부의 선택과 이어진다는 것이 플롯의 핵심이다. 그런데 (충분히 자극적인) 잔느가 누구와 잤는지가 영화에서 중요할까? 오히려 잔느의 일상에 더 개입한 변태적인 카메라가 되는 건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물건이 등장하는 방식도 미묘하다. 이 영화는 물건을 일상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는 첫번째 일상부터 읽을 수 있다. 잔느의 첫째 날은 평화롭다. 첫째 날과 반대로 두 번째 날부터 이야기에 광기가 서려있다. 아들이 ‘엄마 단추 떨어졌어요!’라고 말한 후부터 잔느가 온 동네를 뒤져 단추를 찾는다. 그리고 집 밖으로 나온다. 이 사건의 선후관계를 생각해 보면 ‘잔느가 집안일하다 밖으로 나오는 것 마저 가사노동의 일부’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다른 케이스도 있다. 영화에서 누군가가 선물을 보낸다. 집안일과는 다른 무언가가 나올 법도 한데 잠옷이 나온다. 좀 생기 넘치는 선물을 할 수는 없던 걸까? 마지막으로 잔느가 다루는 물건도 이와 관련이 있다. 잔느가 구두를 수선하려고 어딘가로 들어간다. 주인장인 남자는 잔느에게 ‘아들 잘 지내고 있나요?’라고 묻는다. 구두가 잔느 본인 것이 아닐뿐더러 주인장이 하는 말까지 아들에 대한 것이다. 영화는 느릿느릿하게 전개하는 척 하면서 이와 관련한 것들을 빼곡히 묘사하고 있다. 어마무시한 광기다.


합리적인 엔딩


이 영화의 엔딩은 특별하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전 세계의 여성들을 바라보는 방식’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잔느는 엔딩에서 흰 옷을 입고 있다. 러닝타임 내내 색이 흐린 옷만 입었던 잔느. 잔느는 일상 속에서 깔끔함을 추구한다. 이렇게 강박적인 성격이 강한 잔느이지만 성노동과 가사노동을 거부하듯 살인을 저질렀고 흰 옷에 피가 묻었다. 금기를 어긴 잔느. 표정이 명확하지 않았던 잔느는 200여 분동 안 처음으로 혼자 웃는다. 하지만 이 모습을 찍는 구도가 흥미롭다. 집 안이다. 사실 혼자 멍하니 웃는 장면을 실외에서 찍어도 이야기의 논리관계에는 어떤 악영향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장면을 굳이 실내에서 찍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또 옆에 있는 주전자 던져버릴 수도 있는 건데 그대로 놔뒀다. 이는 잔느가, 그러니까 여성이 스스로 주체성 있게 우뚝 섰다 하더라도 가부장제라는 감옥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감독의 탄식처럼 보인다. 실제로 엔딩 후반부에 러닝타임 중반부쯤에 등장했던 생활소음이 삽입된다. 또 심지어 조명까지 어둡다. 이 두 요소를 굳이 넣었다는 점 역시 촬영 구도와 마찬가지이다. 이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1970년대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사실 2023년을 살아가면서 여전히 가부장제의 무언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13일까지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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