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케이노> 스포일러 있는 리뷰
이 영화의 주인공은 로스앤젤레스 상설 비상대책반 반장 마이크 록이다. 오늘도 출근해야 한다. 이 인간들은 휴가가 뭔지 모르나? 휴가 중이었던 마이크. 하지만 마이크가 막상 짜증만 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며칠 전부터 크고 작은 지진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볼멘소리를 내는 딸. 오랜만에 아버지와의 데이트를 앞두고 있었다. 직장으로 잡혀가는 아빠에게 서운함을 표한다. 사실 마이크와 부인은 별거 상태다. 그래서 아빠와 딸은 서로를 자주 보지 못한다. 답답한 건 마이크 역시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다고 딸에게 전한 후 일터로 출근한다. 출근하니 부하 직원도 마이크에게 눈치를 주는 것 같다.
마이크가 출근해야 했던 이유는 인재 사고 때문이었다. 맥아더 공원의 수도관에 폭발사고가 일어나 인부 7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수도관으로 내려가는 마이크. 하지만 갑작스럽게 열기가 올라와 죽을 위기에 처했다. 당황한 마이크. 대피령이 내려진다. 지질학자를 찾는 마이크와 주인공의 팀. 지질학자 에이미가 파견된다. 이 상황을 조사하는 에이미. 하지만 에이미의 입에선 허무맹랑한 소리가 나왔다. 화산이 폭발할 거라고? 안 믿었던 마이크. 하지만 도심 한가운데에서 화산 폭발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 영화의 장르는 재난물이다. 그에 맞게 이 작품은 재난 영화의 정석을 그대로 밟고 있다. 재난 영화라고 하면 보통 두 가지 속성을 갖고 있다. 첫째는 각 영화마다 들어있는 재난의 디테일이다. 이 <볼케이노> 같은 경우는 LA 한복판에 화산이 폭발한다는 점이 영화의 핵심이다. 우리가 사는 일상공간에 화산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이야기를 이끄는 것이다. 영화는 이를 위한 디테일을 잘 잡았다. 작중에 묘사되는 화산재, 용암탄, 용암의 동선 같은 것들이 관객들을 몰입시키에 탁월하다. 특히 용암의 질감을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당시는 컴퓨터그래픽(CG)이 지금처럼 발달하기 이전이라 용암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애로사항들을 밀크쉐이크를 활용한 연출법으로 돌파한 영화의 영리함이 돋보인다. 이 영리함 덕에 용암에 생동감이 생겨 이야기의 후반부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야기의 진행을 이끈다는 것 뿐만아니라 자연재해의 시각적인 부분을 다른 쪽에도 활용한 흔적이 보인다. 지형지물을 통해 인물의 동선이 제한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주인공의 딸이 위기상황에 처한 장면이 있다. 물불 안 가리는 아버지 마이크. 차 근처에 불길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 쪽으로 지나가지 않으면 두 사람은 살아 돌아갈 수 없다. 마이크는 딸을 업고 그냥 불길이 가득한 자동차 위로 올라간다. 살아나가는 마이크. 하지만 반대 측면에서 지형지물 때문에 희생당하는 인물도 묘사한다. 불길을 피하지 못해 죽는 인물도 있는 것이다. 이는 이 난장판이 얼마나 인물들에게 급박한 상황인지를 보여주는 연출이다.
재난물의 두 번째 특징은 사회드라마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미국사회에 대한 찬가와 조롱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사회에 대해 찬가를 부르는 모습은 이 영화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읽을 수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 일행은 결국 화산폭발을 수습하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이 만약 마이크 혼자만의 행동으로 이루어진 일이라면 영화는 주인공을 조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의료진, 경찰, 소방대원들은 조직의 지시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심지어 일부는 희생되기도 한다. 하지만 조직의 아랫단계에 있는 인물들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다. 마이크와 에이미 같은 실무자들은 나라에 헌신적이다. 딸을 사랑하는 아빠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위해 켈리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는 마이크, 본인의 주장이 미친 소리 취급받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한 에이미, 마이크가 정신없을 때 비상대책반을 이끄는 에밋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이 재난에 전력을 다한다. 하지만 반대측면에서 미국사회에 대한 조롱도 내포하고 있다. 에이미는 처음부터 화산폭발을 경고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비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국사회의 안전불감증을 시사하고 있다. 또 초반부에 노동자들이 일하다 세상을 떠났지만 수력공사 쪽 인물은 그냥 넘어간다. 당시 미국사회의 노동자 인권 문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다.
이 영화는 재난 장르의 뻔한 특징과 신선한 부분이 공존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재난영화는 기본적으로 ‘자연 앞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이에 따라 영화는 두 요소를 집어넣었다. 대표적으로 주인공 일행이 용암을 저지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문제를 눈치도 못 챈다는 점이 그렇다. '극복한 것 같았지?'라며 인간의 오만함을 조소하는 대표적인 예다. 또 엔딩에서 ‘봐요!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안 돼요!’하는 대사 역시 인류가 자연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사다. 이런 대사들은 올해 한국에서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극 중 명화가 황궁아파트 사람들을 돌이키며 ‘다들 평범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겹쳐 보인다. 재난 영화의 주인공은 모든 사람들이라는 것을 부각하는 것이다.
영화가 다른 재난영화에 비해 신선한 점은 미술이다. 우선 영화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연물은 화산재다. 인물들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는 이 화산재는 신문지를 갈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글쓴이는 이 화산재 연출이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좋은 도구였다고 생각한다.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상황이 얼마나 난장판인지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각 존재들에게 색감으로 차이점을 둔 것도 이 영화가 선택한 연출법이다. 이 이야기의 인물들은 전체적으로 탁하다. 반대로 불과 용암은 선명해서 이 자연재해를 시각적으로 잘 보이게끔 묘사했다. 그리고 미니어처를 활용한 연출이 영화 중간에 보인다. 아파트 단지에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이나 용암이 흐르는 것을 막는 장면을 본다면 꽤나 현실적이다. 현대의 재난영화라면 CG를 통해 보여줄 장면들을 지금 봐도 세련되게 묘사한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아쉽다고 느끼는 것은 기억에 남는 장면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물들을 연출하는 방식에 있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에게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우선 등장인물 마이크다. 마이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직장인으로서의 프로의식이나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이다. 이 설정에서 인물에게 개성을 부여하려면 주인공이 위기에 처한다던가, 어떤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욕망이 돋보여야 한다. 예를 들어 마이크가 부당한 차별을 겪어 지금 소속부서가 아닌 다른 쪽으로 승진을 하고 싶어 한다는 욕심이 있어야 한다. 또 아버지로서 자격이 부족한 인간이라 딸과의 사이가 소원하다는 설정이 기본적으로 붙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대처하는 방식은 인간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 이야기에 개성이 생긴다. 영화는 이 점을 활용하지 않는다. 마이크는 내내 용암을 막기 위해 전력투구를 다한다. 그렇다면 영화의 주인공이 마이크라고 볼 수 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진주인공은 화산이 되는 셈이다.
비단 주인공에게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 마이크 다음으로 비중이 많은 에이미는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실질적으로 LA의 화산폭발을 예견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인물에게 중요도를 주지 않는 이야기는 영화의 설득력이라는 측면에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다. 마이크가 에이미의 말을 듣기는 하지만 그 이전에 이 인물을 데려온 이유를 영화가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에밋이 있는 부서 역시 맹목적으로 움직이기만 한다. 마이크를 존경한다면 더 능동적인 인물의 모습이 들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이것이 부족하니 헌신적인 공무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외의 개성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기계적인 인물들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를 내는 캐릭터는 주인공의 딸이다. 주인공이 가진 그나마의 욕망인 ‘딸을 지켜야 한다’를 상징하는 인물이면서 후반부에 나름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인물 역시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영화 초반부에 더 들어갔다면 이야기가 더 깊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같은 시선에서 감정이입 할 요소가 부족한 것이다.
이렇게 인물들이 공식처럼 정해져 있다 보니 이야기의 흐름이 과연 자연스러웠나?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이 영화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과정은 중간 단계를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화산폭발은 도시에서 일어난 자연재해다. 그럼 전화선, 수도선 같은 것들이 끊겨야 이야기가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그리고 화산의 전조증상에 대해서도 묘사가 부족하다. 화산폭발이 기본적으로 지진과 함께 세트로 딸려 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전반부에 설명할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진 몇 번 일어나고 마무리짓는다. 이 외에도 화산폭발을 통해 부수적으로 딸려오는 자연현상 묘사가 부족하다는 것이 확 체감이 된다. 단지 용암만 분출되고 LA의 지형지물이 불타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가 단조로운 탓에 이 영화가 과연 어떤 의도로 기획된 것일까 의문이 든다. 재미있는 영화를 표방하기엔 산재해 있는 위험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가 아쉬운 점이 많지만 사실 이 작품이 가지는 의미는 작지 않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재난영화의 교과서가 됐다. 비록 흥행에는 지지부진했지만 당시의 할리우드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또 화산폭발의 시각화를 나름 잘 잡았기 때문에 후의 재난영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작품이기도 하다. 소재는 다르지만 <투모로우>와 이 영화가 겹쳐 보이는 장면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모든 영화에는 이야기라는 것이 있고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이 각자 있다. 이 <볼케이노>는 내실을 다루는 과정이 꼼꼼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