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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Mar 17. 2024

개와 로봇이 알려주는 우리 사랑의 모든 것

<로봇 드림> 스포일러 없는 리뷰



늦여름의 외로움과 초가을의 즐거움


이 영화의 주인공은 혼자 사는 개 도그다. 외로운 주인공. 일 하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이 적적하다. 유일하게 하는 거라곤 집에 앉아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일이다. 혼자 노는 것도 이젠 지쳤다. 느닷없이 옆집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옆 집의 동물들이 보인다. 안 그래도 외로운데 옆집의 동물들은 둘이서 잘들 살고 있다. 쓸쓸함이 깊어진다. 그때, 도그는 특별한 광고 하나를 보게 된다. 그 광고의 내용은 간단했다. 바로 구매자들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주는 인공지능형 AI를 판다는 것이었다. 로봇을 주문하는 주인공. 로봇이 배송된 날에 바로 언박싱을 하며 기계를 만들어본다. 기계에 불빛이 들어온다. 그렇게 개와 또 다른 주인공 로봇과의 첫 만남이 이뤄졌다. 둘도 없는 친구가 생긴 도그. 도그는 그동안 혼자 사느라 못해왔던 것들을 로봇과 함께 해보기로 한다. 늦여름과 초가을이 시작되는 9월, 풋풋한 사랑이 시작된다.


소리가 왜 필요해


이 영화에 대해 가장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점은 대사다.  글쓴이가 생각했을 때 이 영화가 가진 '대사가 없다'는 무성영화스러운 특징은 영화의 호불호를 가로지를 요소다. 당연히 대사라는 건 현대의 영화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사랑 영화는 누군가에게 인물의 마음을 전달하는 영화다. 그럼 낭만적인 대사를 쓰는 게 영화의 승부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명장면들이 생각난다. <이터널 선샤인>의 엔딩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Okay"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중경삼림>에서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내 기한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라는 문장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 <로봇 드림>은 위의 두 영화가 고른 선택지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전략을 골랐다. 캐릭터들의 대사를 깡그리 없앤 것이다.


왜? 이 영화가 고른 몇 가지 선택 때문이다. 우선 첫째.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 있다. 이를 강조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 장면은 음악을 활용한 부분인데 이 영화가 사랑의 속성을 활용했다는 측면에서 사운드의 유무는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리가 사랑에 빠졌던 무언가와의 히스토리를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의 카톡 메시지를 기다리며 들었던 ‘스토커’가 있다고 해보자. 그럼 당연히 그 ‘스토커’에 애착이 가지 않을까? 이와 유사하게 사랑이 가진 마법을 음악이 가진 힘과 결합시킨 것이다. 둘째. 이 영화가 묘사하는 이미지의 힘은 이 영화가 가진 연출의 특성을 반영하는 듯하다. 그 특성은 파편화된 기억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가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적인 특성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비현실적인 느낌이 좀 있다. 친절한 이야기 중에서 제일 불친절한 편(?)에 속한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는 이미지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해 관객으로 하여금 기억을 떠올린다는 점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추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는 '기억'을 중요시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OST 후렴구 첫 구절이 근거가 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고른 선택지는 다양성이다. 이 영화는 동물들을 캐릭터로 내세웠다. 강아지, 코끼리, 고양이 등등 다양한 동물들이 맨해튼 거리에서 마을을 이뤄 살아가고 있다. 근데 이런 세팅 하에 동물들이 영어를 쓰거나 불어를 쓰면 이상하잖아? 동물들만 있는 세상에 인간의 언어가 나오면 이질감이 굉장히 클 듯하다. ‘인간중심적인 서사’라고 비판받기 딱 좋은 설정이 되는 것이다. 동시에 인간의 언어를 쓰면 굳이 동물들이 주인공일 필요가 없다. 이 영화의 장점 중 하나가 귀여운 그림체인데 그 매력 하나를 영화 스스로 급감시키는 단점을 초래하는 것이다.



과거에게 바침


글쓴이가 <로봇 드림>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과거 로맨스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가 곳곳에 보였다는 점이다. 영화의 공간적인 배경에 해당하는 '맨해튼'은 실제 영화 <맨해튼>에 대한 오마주로 보인다. 그 벤치에서 두 사람이 앉아있는 장면이 연상되는 숏이 <로봇 드림>에도 있었다. 플롯의 핵심인 '로봇과의 사랑'이라는 것은 와킨 피닉스가 주연이었던 <그녀(HER)>가 연상된다. 또 AI를 둘러싼 주인공의 리액션을 다룬다는 점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A.I>를 연상케 한다. 단순히 이야기에서 두 영화와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녀>에서 주인공이 한참 사랑에 빠진 장면, <A.I.>에서 로봇이 보여주는 리액션은 <로봇 드림>에서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또 <원스>를 인상 깊게 봐서 그런지 두 주인공이 걷는 장면만 보면 그 영화가 떠올랐다.


이 오마주라고 하는 것이 영화 핵심에 그대로 작동한다. 우선 접근법이다. <캐럴>에서 인물들의 시선으로 사랑을 묘사했던 방식이 <로봇 드림>에서도 이어진다. 이야기 중반부에 기점 찍고 도그가 이끄는 이야기를 보면 이 캐릭터는 타인을 바라봄으로써 영화가 말하는 사랑의 의미를 전달한다. 이 캐릭터의 시야에 뭐가 보이는가? 가 이야기를 이끄는 것이다. 또 로봇의 시선에서 어떤 것이 보이고, 또 무슨 장면을 관객에게 전달하는지도 영화가 사랑의 의미를 설명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사랑에 빠진 우리의 모습을 시선과 상상력으로 구현한 것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중반부 이후의 전개는 <라라랜드>와 <이터널 선샤인>이 우리를 사로잡았던 이유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게 단순히 오마주만 맥없이 따왔으면 의미가 바랠 것이다. 2024년 버전으로 리메이크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로봇 드림>은 그 나름의 핵심을 전달한다. 귀여운 그림체와 대사가 없다는 특성만으로도 폭넓은 감정선을 전달하는 연출의 밀도는 일반 관객을 충분히 사로잡을 것이다.


너 하나 기다렸어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최고 강점은 이야기 전개다. 이 <로봇 드림>의 이야기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랑하며 느끼는 여러 순간들을 흐름에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부드럽게 연결시켰다는 강점이 있다. 가령 도그->로봇에게 이어지는 관계가 그렇다. 도그는 로봇을 구매했다. 도그가 로봇의 생명을 부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문장이 영화 안의 판타지스러운 설정 같아 보이지만 사실 우리 사랑의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들 많이 하지 않나? "이 사람은 나 없으면 안 돼!"같은 것들 말이다. 어디 조직에서 일하는 회사생활부터 시작해 인간관계까지 이런 류의 말들은 흔히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은근슬쩍 숨기고 있는 마음이 있다. 바로 반대로 '난 이 사람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로봇 드림>은 이면에 깔려있는 무언가를 다뤘다. 그 순수한 마음이 어디로 도착하는지를 소재로 삼은 영화인 것이다.


물론 이 속성만 다루지 않았다. 이 영화는 첫사랑에 대해 다룬 영화기도 하다. 첫사랑과 결혼까지 골인한 경우도 적지 않지만(글쓴이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많다)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역시 글쓴이도 첫사랑에 대해 생각할 때 별 생각을 다 한다. 이 사람을 잊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도전하는 영화는 그동안 많았다. <노트북>같이 운명적인 사랑을 다루거나 <이터널 선샤인>처럼 재회를 다룬 작품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첫사랑이 피고 지는 영화였던 <꽃다밭같은 사랑을 했다> 같은 작품도 있다. 이 영화 역시 첫사랑의 역설에 도전하는 것과 동시에 그 나름의 의미를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우리는 운명처럼 만난 첫사랑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정해진 건 없다. 다만 우리 과거의 무언가에게 "잘했어"라고 격려할 수 있을 뿐. 이 영화는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기 충분하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여러분은 15000원의 거금을 내고 영화관에 갈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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