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페이스> 스포일러 없는 리뷰
이 영화의 주인공은 스타 지휘자 성진(송승헌)이다. 신혼부부인 성진. 아내 수연(조여정)의 집안에 돈이 아주 많다. 첼리스트인 수연. 선남선녀에 돈까지 많고 직업도 서로 맞으니 부러울 것이 없다. 하지만 성진에겐 외로운 구석이 있다. 아내에게 쌀쌀맞은 성진. 까칠한 남편의 태도에 수연의 마음속에 상처가 늘어난다. 충동적인 수연. 갑자기 흔적도 없이 숨어버리는 것을 계획한다. 어디 나 없이 살아봐! 화가 난 수연. 짧은 영상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로 한다. 합창단에 첼리스트가 사라졌다. 새로운 연주자를 뽑아야 한다. 첼리스트 공고를 내는 성진. 이 빈자리에 묘한 매력의 여성 미주(박지현)가 지원한다. 미주에게 끌리는 성진. 사라진 아내와 본능처럼 이끌린 미주 사이에 성진이 갈등한다. 과연 수연은 어디로 갔을까? 수연과 미주 사이에서 누굴 골라야 할까? 그리고, 그게 전부일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하나하나 되짚어볼 때 놀라웠던 건 욕망이란 소재를 잘 접근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이 영화에서 베드신을 비롯한 여러 수위 높은 장면들이 들어갈 이유가 필연적이다. 왜? 인물들의 욕망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드신의 존재를 자세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낼수록 인물들이 가진 내면이 그대로 노출된다. 세 주인공 중 성진이란 인물은 영화의 이 기획의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성진은 마음 한 구석에 구멍이 커다랗게 난 인물이다.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고 분명히 아내인 수연에게 사랑을 느끼기는 한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미주에게 강하게 끌린다. 이 양측에서 충돌하는 인물의 내면이 곧바로 베드신에서의 성진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 성진의 모습이 영화 안팎에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가 한쪽으로 확 기울어진 성진의 모습이 ‘쟤 저러다 어떻게 되는 거 아닐까’라는 긴장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욕망이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스릴러로서의 장르 특성을 베드신을 토대로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 베드신의 존재가 영화 후반부에 드러나는 극적인 전개에 영향이 간다. 글쓴이는 이 영화가 일종의 성장영화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3인방이 스스로의 욕망에 갇혀 자기 자신의 한계를 파악하는 과정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이게 영화의 뼈대라고 치면 영화 안에서 모든 인물들을 한 번에 휘감을만한 사건이 필요하다. 또 인간에게 있어 피할 수 없는 사건이 필요하다. 이걸 한꺼번에 엮는다면 어떤 사건이 필요할까? (예고에서도 읽을 수 있듯) 부부관계인 성진과 수연 사이에 갑자기 끼어든 미주의 관계성을 핵심으로 삼는 것도 큰 무리가 아니다. 또 이 관계에서 일반적으로 관객들이 생각할만한 것을 뒤엎는다는 점에서도 영화 안에서 베드신은 필수적이다. <헌트>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정재 배우가 감독이었던 영화다. 이 영화에서 액션 시퀀스들은 인물이 처한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히든 페이스> 역시 베드신의 존재가 인물의 내면과 직접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베드신과 욕망이라는 소재를 오랫동안 깎아온 감독의 장인정신이 빛난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며 예상외로 좋았던 건 소위 말하는 ‘때깔’이 좋았다는 점이다. 이 때깔이라는 것은 욕망을 다룬 영화 중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하는 연출지점이다. 왜? 우리 일상 속을 예로 들어보자. ‘난 원래 솔직한 게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보통 실언할 확률이 높다. 영화 역시 이런 사람들과 궤를 같이하는 감이 있다. 같은 말을 해도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에게 품격과 진솔함이 같이 존재하듯 ‘인간의 본질’만 두드러지게 강조하면 연출력이 비판받기 쉽다. 대표적으로 가스파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를 지금 당장 구글에 검색하면 좋은 영화라는 평가만큼 혹평이 많다. 해외의 시네필들이 남긴 ‘잔혹하다’라는 평도 평이지만 정성일 평론가가 남긴 평이 인상적이다. ‘단순히 시간의 순서를 역순으로 뒤집기만 했다’이라는 코멘트가 있다. 이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영화가 표현하는 높은 수위에 비해 영화가 담고자 하는 그릇의 크기가 넓지 않았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이 <히든 페이스>는 이런 장르적인 특성을 잘 이해한 것 같다. <돌이킬 수 없는> 보여주는 베드신을 제외하고 나머지 장면들을 보면 김대우 감독이 시청각적인 연출 자체에도 힘을 굉장히 줬다는 느낌을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음악에 관한 부분이 그렇다. 마에스트로라는 직업적 특성을 영화 밖에서도 꺼내오듯 영화 안에서 현악기가 많이 들린다. 이 삽입된 클래식 음악이 인물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탁월했다. 전자음악 위주였다던가 <서울의 봄>처럼 영화의 중후함을 드러내는 음악이 들어갔다면 이질감이 드는 연출이었을 텐데 이 <히든 페이스>는 개성을 잘 살렸다. 이 연출 때깔을 잘 살리는 장면이 후반부에 몇 있다. 성진이 양자택일의 순간에서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또 수연이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몇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에서 인물이 음악으로 인물의 내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훌륭했다.
또 영화에서 관음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것도 극의 품격을 높이는 좋은 수였다. 몰래 훔쳐본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자극적인 행동이다. 일상을 사는 우리 대부분은 남을 염탐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 각자 살기 바쁘니까. 이런 일상성과 염탐이 충돌한다는 속성 때문에 이것을 소재로 한 로맨스 영화가 몇 있다. <이창>이나 <헤어질 결심> ,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같은 작품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염탐한다는 인물의 내면을 그대로 채택했다. 이것은 곧 ‘염탐’을 통해 인물을 지켜보는 인물의 모습을 관객들이 지켜봤고, 그 모습에서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낀다!라는 의미다. 염탐을 염탐하는 관객들을 노리고 만든 영화라는 점이다. 이 <히든 페이스>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 ‘염탐하는 인물들’이다. 수연, 미주 역시 누군가를 염탐하는 입장이고, 대부분의 관객들이 동의하지 않겠지만 사실 성진도 염탐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그 염탐에 따라 인물의 내면을 영화가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욕망으로 뒤엉키는 인물들이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그 욕망은 타인과의 상호관계를 통해 구현된다. 만약 누군가가 타인을 관음 하지 않고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면 영화가 그저 그런 삼류 에로영화가 될 것이다. 그냥 하는 행위 자체만 중요하니까. 그러나 <히든 페이스>처럼 지켜보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보여주면 욕망이라는 소재를 캐치하기에 아주 적합하다. 리액션만 보여주면 되니까. 이런 측면에서 영화가 저렴하지 않은 톤을 유지하기 위해 소재와 장르를 잘 이해해서 고른 선택지는 아주 흥미롭다.
이 영화가 가진 다른 작품과의 차이점은 팜므파탈을 색다르게 해석했다는 점이다. 가령 <헤어질 결심>에서도 서래가 딱 그런 예시 중 하나로 보인다 2 묘한 매력을 풍기는 서래. 하지만 그 영화의 중심을 자세하게 들여보면 팜므파탈이 아닌 이유가 그 영화가 가진 낭만적인 성격을 강화시키는 장치가 된다. 이 <히든 페이스>는 팜므파탈을 <헤어질 결심>과는 다르게 더 너절하고 끈적하게 해석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그리고 그 뒤엎은 팜므파탈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장르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가끔 사랑영화가 사랑을 곧 추락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본작같은 해석은 사랑의 결과를 다방면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감독이 나름대로의 창의성을 표현했다고도 생각한다.
이 영화의 엔딩은 엔딩과 플롯이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의문부호가 강하게 든다. 이 영화에서 맥락이 점점 구체적으로 변한다는 건 중요하다. 중반부터 예고와 포스터로 읽을 수 없는 이야기 전개가 펼쳐진다. 그리고 이 사건을 이루는 자세한 사항이 이야기 안에 담겨있다. 여기에 인물들이 나름 입체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핍진성은 글쓴이 입장에서 충분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관음과 욕망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그러다가 후반부가 인물들의 선택이 입체적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걸 골랐다. 다방면으로 생각하다가 갑자기 욕망 그 자체에만 천착한 엔딩으로 끝낸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 그 자체로 흘러간 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글쓴이는 좀 더 섬세하고 자세했으면 이야기의 밀도가 더 촘촘했다고 생각한다. 욕망-욕망-욕망-욕망으로만 이야기가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이야기다. 이야기라면 어느 정도의 구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영화에 대한 글쓴이의 총평은 '좋은 영화'다. 엔딩이 좀 '이게 뭐지' 싶지만 그 직전까지 끌고 가는 영화 내적인 몰입감이 좋아서 스릴러로서의 역할은 충분하다. 그리고 일단 조여정 배우의 연기가 대단하다. 초중반부까지 흔한 치정극 같은 영화가 중반부터 자신만의 톤으로 변주하는데 이 역할을 조여정 배우 혼자 견인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박지현 배우가 배우로서 과감한 선택을 고른 것 물론 대단하다. 하지만 이 박지현 배우의 야심이 조여정이라는 배우가 조율하는 극의 흐름이 아니었다면 그저 그렇게 묻혔을 거라 생각한다. 기대보다 좋았던,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조여정이라는 배우가 빛났던 <히든 페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