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들이 말할 때까지> 스포일러 없는 리뷰
이 영화가 취한 전략은 특이하면서도 다큐의 특성을 살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여러분에게 있어 다큐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글쓴이는 어렸을 때 봤던 다큐 '인간극장'이다.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어 PD와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 모든 모습을 담는다. 영화는 이 '인간극장'형 방식을 택했다. 아마 영화의 스태프인 것 같은 사람 몇 명이 제주 4.3 사건의 목격자이자 피해자들에게 인터뷰를 진행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인터뷰를 따라 그때 겪었던 일들을 세세하게 증언한다. 영화는 이게 전부다. <비욘드 유토피아>처럼 서스펜스를 외부에서 끌고 들어오지도, <물방울을 그린 남자>처럼 미술작품 같은 시각화를 사용하지 않고 딱 논픽션의 근본 그 자체를 다룬 것이다. 이런 탓에 약간 영화가 원위치 제 자리를 맴돈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에피소드를 다큐처럼 표현하는 것이 아닌 그 당시의 증언만 푸티지로 남겼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취할 수 있는 1차적인 줄거리를 가진 이유는 지극히 당연하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 때문이다.
첫째. 왜 이 영화는 단적인 에피소드를 보여주지 않는 병렬형 구조를 취한 것일까? 이는 곧 영화가 왜 편집을 이런 식으로 했을까? 와도 이어진다. 바로 이 영화에서 할머니가 입으로 전달하는 4.3 사건의 상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영화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터뷰와 제주의 풍광을 포착한 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로 전개되면 될수록 어떤 요소가 사실상 이 풍광을 특정 방식으로 묘사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가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관객과 거리를 둔 의도가 이해가 된다. 이 의도와 흐름을 자연스럽게 연출한 방식은 영화의 분명한 강점이다. 실제로 이 장점은 영화의 제목이 '돌들이 말할 때까지'에서도 읽을 수 있는데, 비관적이라면 비관적일 수도 있지만 역사가 개인과 한 지역에게 남긴 상흔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골랐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이 영화가 격정적인 톤을 유지했다면 윤리적인 선을 어긋나는 셈이 된다. 무슨 말이냐. 제주 4.3 사건의 전체적인 개요와도 관련이 있다. 4.3 사건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글쓴이가 제주에 나고 자라면서 들은 것은 '이념 대립을 핑계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것'이라는 점이다. 핵심은 핑계라는 점이다. 이 핑계라는 뜻은 굉장히 부당하면서도 동시에 시대적인 맥락이 있다는 뜻이다. 영화는 이 부분을 빼곡히 묘사하는 좋은 수를 보여준다. 만약 이 부분이 영화 안에서 픽션 형식으로, 내지는 기-승-전-결의 스토리텔링으로 구현됐다고 생각하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해칠 수도 있다. 왜? 감독의 감정이 틈입해서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장면이 위력이 옅어져 분노만 느껴지는 것이다. 왜 분노를 표출하겠어? 당연히 폭력의 잔혹함 때문이다. 이 폭력의 잔혹함을 고발해 당시 행정부의 극악무도함을 고발하는 것도 좋은 의도가 될 수 있겠지만 영화는 그 이전에 깔려있는 악을 고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일반적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내적 트라우마에 집중한다. 또 만약 이 영화가 자칫 개인에게 해한 폭력을 과시하고 또 영화적 재미로 활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이 부분을 유연하게 벗어난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이야기의 재미와 박진감이 아니라 그때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라는 걸 그대로 암시하면서.
영화가 구술이라는 특성을 활용한 것은 나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구술은 곧 '입을 통해 말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구술이 가진 고유의 특성이 뭘까? 바로 개인의 기억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이 기억이 사람에 따라서는 신빙성이 떨어지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개개인을 통해 역사의 거대한 부분을 보여주고자 했던 시도는 충분히 탁월했다. '고양이 대학살'로 대표되는 역사의 미시성에 대해 아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 측면을 보여주고자 하는 듯하다. 어떻게? 인터뷰를 통해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구체적인 진술과 다섯 명이라는 인원을 통해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다섯 명의 할머니들이 같은 트라우마를 안고 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조명하는 것이다. 이 다섯 명이라는 인터뷰이는 구술이라는 특성이 가진 약점 '기억이 왜곡될 수도 있다'를 다른 방식으로 피해 가는 선택이기도 한데, 반복되는 진술이야 말로 한 개인이 가진 트라우마가 일시적인 게 아닌 것임을 보여주는 반증이 된다.
또한 이 '개인에 의한 구술'이란 부분이 영화의 외부 맥락에서도 대비되는 지점이 있다. 4.3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굉장히 중요한 재판이 2019년 제주지방법원에서 있었다. 이 재판은 영화 안에서나 밖에서나 굉장히 중요했다. 이 재판을 영화 내적으로 어떻게 묘사했는지, 그리고 4.3의 폭력을 온몸으로 겪은 분들에게 어떤 의미로 전달하는지가 '구술'이라는 의미와 대치되면서 그 나름의 의미를 공고히 다진다. 글쓴이가 영화의 이 연출을 보면서 연상됐던 영화는 <좋은 빛, 좋은 공기>다. 이 영화는 광주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일어났던 각각의 민주화운동을 보여준 다큐멘터리다. 두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을 보여주는 것이 그 영화의 핵심이었는데 이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그 반대다. 공간을 특정 지역에 좁혀놓고 공통점을 가진 다섯 명으로 좀 더 구체화시켜 사건이 가진 비극성을 덧붙이는 것이다. 만약 이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를 보고 인상 깊으셨다면 <좋은 빛, 좋은 공기>를 추천드린다.
글쓴이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장점으로 인터뷰의 퀄리티를 뽑고 싶다. 왜? 제주 선주민인 글쓴이는 2021년에 대학의 소속 학회에서 현장실습생 일을 한 적이 있다. 이 학회의 임무 중 하나는 4.3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 사실 커뮤니케이션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물론 정정하신 분이 대다수지만 고령이다. 찾아가는 과정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인터뷰 내용은 5명의 할머니에 각자 변형을 주면서 핵심만 쏙쏙 빼내는 정교한 인터뷰 능력을 보여준다. 가령 A 할머니는 사람들이 죽는 모습 그 자체를 목격한 분이다. B 할머니는 의사소통이 어렵다. 왜? 언어를 평생 배운 적이 없으니까(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영화 안에서 확인하시라). C 할머니는 공부 열심히 하셨다. 당시에 사회구조가 여성이 날개를 펼치기엔 어려운데 이 분은 예외다. D 할머니는 위의 분과 이유로 의사소통이 어렵다. 이 이유는 영화가 이데올로기에 의한 폭력을 묘사할 때 볼 수 있었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D 할머니의 존재는 영화에서 분기점이 되면서 4.3 사건을 겪은 이들을 한 데로 묶는데, 영화 안에서 이 인물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확장시키는지가 아주 흥미롭다. 어떤 대상에게 신뢰도를 불어넣는 방식은 각자 다르다. 이 영화는 다양한 인물군으로 특정 인물을 빛내는 선택지를 골랐는데 이야기의 형식의 측면에서 훌륭했다고 쓰고 싶은 부분이다.
나이를 들며 영화에 관심이 생기면서 깨달은 건 내가 다양한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영화가 결국 책과 이어지는 취미라서가 아니다. 이런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방법론을 존중하는 방식을 어느 정도는 알게 된 것 같다. 글쓴이가 이 영화를 보고 다시 느낀 것은 생명의 고귀함이다. 결국 살아있다는 것. 그 후에 떠나간 사람들을 기억한다는 것. 역사의 부조리함에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해 증언한다는 것. <너와 나>에서 '너와 나'를 이루는 이 세상이 붕괴되는 비유가 아니더라도, 인간 하나가 이 세계에 가져다줄 수 있는 장점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나는 이 사건이 그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고 자랐던 제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글이라도 쓰는 것 말곤 없다는 게, 이제 세상에 없다는 것이 이렇게 슬픈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 속상하고 씁쓸하다. 나 역시 제주의 수많은 돌들이 말할 때까지 이 기억을 오래오래 가지고 있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