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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Oct 20. 2024

보통의 가족, 보통의 뻔뻔함, 보통의 부끄러움

<보통의 가족> 스포일러 없는 리뷰

대형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잘 나가는 변호사 재완(설경구) 부부다. 돈 많이 버는 변호사 재완. 여러모로 부러운 인생이다. 그 부러운 인생을 1000% 누리고 있는 건 젊은 아내 지수(수현)다. 온갖 럭셔리한 와인과 음식으로 매일을 즐기고 있는 지수. 부부사이도 좋아 재완에겐 사실 걱정할 게 별로 없다. 그 적지 않은 걱정거리 중 하나는 딸 혜윤(홍예지)이다. 아낌없는 주는 아버지인 재완. 체크카드건 신용카드건 선뜻 내준다. 심지어 공부까지 꽤나 하는 편에 인간관계도 좋으니 아버지로서의 역할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영화의 다른 주인공은 자상한 소아과 의사 재규(장동건) 부부다. 어느 종합병원의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재규. 불친절한 의사가 아니라 동네 아저씨같이 친근한 사람이다. 아픈 사람의 보호자에게 공감할 줄 알고, 아내에게도 가정적이다. 심지어 강직하기까지 하다. 소속된 병원에서도 뛰어난 업무처리능력과 올곧은 성품으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다. 친형인 재완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을지 몰라도 인간으로선 훌륭한 사람이다. 심지어 아내 연경(김희애) 역시 약자에게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임과 동시에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범생이다. 가족 간의 관계도 좋은 편인데, 또 치매에 걸린 재규의 어머니도 정성스레 보살필 정도다. 형만큼은 아니더라도 수입이 안정적인 재규. 역시 별로 걱정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몇 안 되는 걱정거리는 아들 시호(김정철)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시호. 유일한 친구라곤 사촌누나 혜윤이다. 뭐 형제의 자녀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게 문제야? 두 부부가 딱히 이 둘의 사이에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던 도중 사건이 터진다. 혜윤이 위축된 시호를 위해 친구들이 가득한 파티에 동행했고, 이 두 사람이 술김에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나의 자녀들이 사람을 죽였다. 과연 두 부부는 어떤 선택을 보여줄까?


지지부진한 타율 속 안타


글쓴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든 가장 첫 번째 생각. 이런 영화를 기다려왔다는 것이다. 어느새부턴가 한국 상업영화에 문학적인 느낌이 별로 없는 듯하다. 올해 흥행했던 한국영화를 보면 다 장르적인 쾌감에 집중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탈주>나 <베테랑 2> <파묘> 같은 영화를 생각해 보면 다 별개의 작품이긴 해도 ‘팽팽한 긴장감이 재미있었어’라고 결론 내기 쉽다. 영화가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줄 수 있는 시각적인 쾌감을 영화의 동력으로 삼는다. 이것에 반대선상에 있는 <리볼버> 같은 영화는 사실 사람들이 주연 배우의 기행만 기억하지 많은 사람들이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본작 <보통의 가족>은 이 영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그런지 몰라도 정밀하게 짜여있는 세상을 그대로 바라본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글쓴이 머릿속에 생각나는 소설. 김기태 작가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란 작품이다.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김기태 작가의 저널리스트적인 서술이 이야기 전면에 깔려있어서 핵심으로 작동한다. 또 세계를 구성하는 세상에 대해 성실하게 묘사한다. <보통의 가족> 역시 이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라는 소설처럼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 있어 어떤 장면은 종교를 끌어온다던가 먼발치서 촬영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너무 내밀한 사연은 쓰지 않도록 유도한다. 또 이 영화를 둘러싼 인물들의 판단과 감정, 세계관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재완과 재규 형제의 내면을 보여주는 사건이 시간순서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소설 초반 설정 설명하듯 핵심이 된다는 점에서 문학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뭔가 심오한 작품성만 드러낸 영화다? 아니다.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서도 뛰어난 스릴러물이다. 빠른 템포로 장면을 쳐내면서 이야기를 힘 있게 전개한다. 또 어떤 장면에서는 배우의 연기와 사건 구성을 기괴하게 보여줌으로써 기이한 동력을 촉발시킨다. 어떤 면에서는 <서울의 봄>이 장르적으로 좋은 영화였다는 점과 공통점을 가지기도 한다.


인간 광기의 근원을 묻다


이 영화에서 ‘보통’의 의미는 러닝타임이 가면 갈수록 변하고 있다. 초반부. 영화가 두 가족을 보여준다. 재완 가족은 쉽게 말해 금수저다. 돈이 많은 재완. 아버지가 잘 나가는 변호사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 딸 혜윤(홍예지). 혜윤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 외모도 예쁘고 아버지가 돈이 많으니까 평범한 학생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반대로  재규 부부의 아들 시호는 평범한 아들이다. 평범한 외모와 체형에 학원도 다닌다. 아마 성적도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시호가 겪는 일은 전혀 평범하지 않다. 이런저런 상황을 겪으면서 인물 내면에 고요한 폭력이 내재되어 있다. 평범하지 않은 가족과 평범한 가족이 대칭을 이루면서 묘사되어 있다. 두 인물 간의 대비가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영화가 인물 간의 차이점을 묻는다. ‘어떤 지점에서 두 사람이 이렇게 다를까?’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영화가 단순히 이 대비만 보여주면서 질문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반복과 차이라는 방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 과정이 굉장히 촘촘하게 짜여 있다. 첫째로 반복이다. 영화에서 유튜브라는 매체는 정보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정보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맥락을 가지는 것이 있다. 두 가족 6명의 인물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이 영화에서 ‘보통’이라는 테마는 여기서 구현된다. 유전적으로 ‘보통’의 특성이 두 가족에게 그대로 구현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도 이 인물들에게 영향을 주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부분은 영화 안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직접적으로 보여주진 않지만 간접적으로 영화 내내 빼곡히 반복될 만큼 작품이 채택한 모티브이기도 하면서 엔딩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거울


이 영화에 등장하는 진짜 형제는 한 쌍이다. 재완과 재규다. 보통 형제라고 하면 피를 나눴다는 말을 쓴다. 이런 생물학적 배경과는 반대로 영화에서 가장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은 재완과 재규다. 실리주의자인 재완과 윤리적인/도덕적인 문제를 중요시하는 재규. 두 인물은 이 영화의 윤리적인 딜레마를 정통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가 되면 두 인물은 다시 한번 엇갈린다. 두 형제가 영화 내내 으르렁거림에 따라 둘은 전혀 다른 인물유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걸 전부 의도하고 묘사한다. 영화가 이 두 남자의 차이점을 부각하면 부각할수록 이 사람들이 유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보통’하면 여러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을 의미하는 단어다. 이 영화에서 두 남자가 공유하고 있는 ‘보통’은 일반적인 한국사회에서 범상치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보통의 의미를 가장 일반적인 ‘가족’이라는 소재로 뒤튼 것이다. 


여기서 이 보통의 의미를 뒤틀었다는 의미를 형제에만 국한 지으면 영화의 밀도가 떨어졌을 것이다. 어떤 것을 주장하는 데 있어 이 영화는 여러 근거를 제시했다. 대표적으로 두 형제의 자녀인 시호와 혜윤는 사촌관계지만 영화 안에서는 사실상 형제처럼 묘사된다. 아예 정반대의 상황에서 자랐지만 두 사람은 연대한다. 이 연대의 근거가 ‘두 사람이 친척(가족)이라서’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글쓴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재완 부부와 재규 부부의 공통점이다. 재완과 재규의 내면이 서로 엇갈리면서 두 사람이 형제인 것을 드러내고, 그것이 보통이라는 특성을 비튼다는 것과는 별개다. 이런 특별해 보이는 사람들이 사실은 일반적이고 보통의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이 대비는 두 가족의 밖과 안에서 반복된다. 수많은 가족들이 영화 안에서 등장하고 퇴장하는데 가족을 넘어 인간 광기의 본질을 다루는 데 있어 적합한 이야기 흐름이었다.  딱 두 사람만 떼서 보여주기보다는 연이어 이어 붙이며 보통의 의미가 여러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이 반복과 차이라는 테마를 밀도 있게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인물들의 섬세한 내면을 보여줬던 허진호 감독의 역량 덕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인간 내면의 그림자를 어떻게 보여줬을까? 글쓴이가 위에서 적은 내용을 중심으로 써보자면 반복과 차이, 공통점과 차이점이다.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보여주려면 당연히 여러 사람들이 각본 안에서 필요하니까. 하지만 이 영화는 이 복잡한 것들을 인물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게, 간단하게 보여줌으로써 ‘저 사람이 저렇고, 과거에 그 사람이 그랬네’라고 이해하기 쉽다. 이걸 영화가 카메라워크로 왜곡시키면거나 정면으로 보여준다. 또 템포를 짧게 잘라내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풀어지지 않게끔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 연출이 허진호 감독의 영화들,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는 <행복>이나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와 차이점이 있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으나 글쓴이는 그렇게 생각 않는다. 이영화들(허진호 감독의 영화들)이 가진 감정적 전달력이 본작에서 여지없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역시 허진호다!’싶다.



좋은 각본과 연기


이 영화에 대한 총평은 '웰메이드'다. 장르적으로 재미있고, 문학적인 연출로 영화가 확실한 기획의도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또 설경구-수현-장동건-김희애 네 배우의 훌륭한 퍼포먼스를 꺼내는 허진호 감독의 연출가로서의 역량이 돋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탄탄한 연출을 타고 도착한 엔딩에서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이 광경까지 보고 나서 드는 생각. 과연 보통의 의미는 뭘까? 우리 안에도 이 영화가 상정한 '보통'이 있지는 않을까? 상업적으로 거대한 성공을 거둘 것 같지는 않지만 2024년을 되돌아볼 때 우선순위에 있을 법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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