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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Nov 03. 2024

핏빛으로 일렁거리는 호러의 역사를 읽다

<롱 레그스> 스포일러 없는 리뷰



14일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감 좋은 형사 리(마이카 먼로)다. 30년간 풀지 못했던 미제사건이 있다. 희생자들은 모두 가족이었다. 수사를 해도 오리무중에 빠지는 연쇄 살인사건. FBI는 능력 있는 형사 리를 파견했다. 사건에 대해 듣는 리. 사건 파일들을 읽어보기 시작한다. 왠지 익숙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런 사건에 내가 연관될 리는 없다. 상사 카터(블레어 언더우드)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범인의 정체를 추리하는 리. 적지 않은 단서. 일가족이 살해됐다는 점과 살해 현장에 ‘롱 레그스’라는 편지가 있었다는 점 말고는 힌트 얻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실체에 다가가는 리. 리는 잔혹한 심연 속으로 또각또각 걸어 나간다.



놀라운 집중력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촬영이다. 이 영화에서 피사체를 촬영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프레임 안 대상을 한가운데에 넣고 가로가 넓은 비율로 찍는다. 혹은 대상을 눈높이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마치 누가 지켜보는 것처럼 촬영하는데, 찍고자 하는 대상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마치 대상을 옆에서 본 것처럼 오른쪽/왼쪽으로 살짝 틀어진 얼굴을 보여준다.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영화가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특별하다. 가령 과거 회상 장면에서 주인공 어머니가 특정 행동을 할 때 장면을 보면 고의적으로 화면의 대부분을 안 보이게 처리했다. 행위가 일어나는 부분은 멀리서 대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특정 장면에서는 시점 쇼트(인물의 시선을 보여주는 방식)를 써도 큰 문제가 없는데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구도가 나온다. 전적으로 영화가 ‘누군가가 지켜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셈이다.  이렇게 인공적으로라도 강조한 구도 때문에 이 영화가 가진 이상한 긴장감이 유지된다. 이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보면 영화 포스터에 등장하는 ‘모든 프레임이 악몽이다’라는 특징이 이렇게 구현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영화의 법칙을 카메라 구도로 구현한 영화는 예외를 둠으로서 그것을 강조한다. 여기서 영화의 카메라가 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깔고 정면으로 인물을 보여주는 샷이 등장하기는 한다. 언제?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 처음으로 등장할 때다. 이 물건이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어떤 존재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 누구와 눈 마주치지 않지만 영화 화자와 동격으로 놓이는 존재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영화가 촬영으로 구현한 것이다. 이렇게 전체와 나머지라는 연출은 영화가 핵심으로 삼고 있는 모티브다. 중반부 이후부터 등장하는 특정 캐릭터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감에서 도드라지는 비주얼을 가진 인물이다. 주인공의 설정에서도 이 ‘전체와 나머지’라는 테마를 읽을 수 있다. 사건의 힌트가 되는 짧은 머리의 캐릭터도 영화가 이야기의 구도를 짠 방식을 읽을 수 있는 연출이다. 


느릿느릿한 서스펜스


영화 롱 레그스는 시각적인 연출 못지않게 템포와 리듬의 중요성이 돋보인다. 이 영화의 초반부는 세상 느릿느릿한 템포로 진행되는데, 이는 멀리서 관조하는 인물의 시선을 구현함으로써 영화의 주제를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관객에게 사건을 서서히 보여주는 연출 방식 덕분에 빌런의 악행이 자극적으로 소비되는 것을 피한다. 오히려 이 모든 과정을 가감 없이 다루겠다는 감독의 주제의식을 표현하는데 효과적이다. 이런 자극적인 모습과 의도적으로 거리 두는 연출이 어느 시점을 넘어서 직접적으로 변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영화의 주제와 인물의 내면을 심도 있게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처럼 느린 템포에는 단점도 따른다. 특히 영화에서 사운드를 통한 연출이 때로는 다소 무리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속적으로 기이한 이미지로 긴장감을 형성하던 영화가 갑작스러운 큰 소리로 관객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점은 영화의 깊이가 옅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이 영화가 잘 짜인 이야기 같으면서도 갑자기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리니 관람을 그렇게 친절하게 만드는 요소는 아닌 듯하다. 또한, 초중반부의 느릿한 전개로 인해 이야기에 몰입하기 어려운 관객들도 많을 수 있으며 지루하다고 느낄 여지도 충분하다.



장르의 역사를 그대로


<롱 레그스>는 호러 장르의 역사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는 아리 애스터의 <유전>이었다. 특히 특히 1부와 2부의 연출 방식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부분이 그렇다. 이 미세한 변화는 영화 안에 있는 어떤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했는데, 이야기의 구성은 다르게 가져가되 본질적인 건 비슷하게 전개해 감독의 창의성이 돋보였다. 또한, 최근 할리우드 공포 영화들이 즐겨 사용하는 기괴한 이미지를 이 영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롱 레그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여러 작품의 흔적을 담아내어 관객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다가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물론 이 <롱 레그스>가 단순히 과거의 이미지들만 차용하지 않는다. 어떤 장면에서는 느린 템포에도 불구하고 정말 서슬 퍼런 장면을 보여준다. 글쓴이는 후반부의 모든 장면이 굉장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러한 레퍼런스를 과하게 담으려 한 탓인지, 후반부에 영화의 톤과 어긋나는 대사가 등장한다. 이 대사는 꼭 필요했던 것 같다. ‘혹시?’싶은 의구심이 드는 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 대사는 지나치게 길고 본래 흐름과도 어울리지 않아, ‘이 대사가 없었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가 주는 불안함과 긴장감의 리듬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장황해지면서 몰입을 방해하는 장면이었다.



압도적인 니콜라스 케이지


이 영화에 대한 글쓴이의 총평은 ‘좋은 영화지만 지루하다고 느낄 여지가 다분하다’라는 점이다. 모든 장면을 인위적으로 비틀어 기이한 플롯을 만들었지만 이 이유로 템포가 느려 지루하다고 느낄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관객들 입장에서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충분하다고 해도 글쓴이가 자신있게 추천할만한 요소가 있다. 바로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다. 케이지는 장르적인 연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캐릭터의 비주얼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스크린을 장악했다. 이 연기 하나만으로도 관객에게 압박감을 선사할 영화가 <롱 레그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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