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맡길 곳은 없고 돈은 벌어야겠고... 집에서 벌자!
'나도 하루만, 아니 몇 시간만이라도 아이들을 맘 편히 맡길 곳이 있다면...'
5년 터울로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산후도우미 기간 외에는 다른 사람 손에 아이들을 맡겨본 적이 없다.
유난스러운 엄마라서가 아니라 부탁할 사람이 없었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고, 남편은 밤낮이 따로 없는 직업이라 그랬다.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어린이집에 보내던 날의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는 다시 눈에 담고 싶고 다시 만져 보고 싶은 아이들의 예쁜 얼굴을 그때는 왜 이리 한숨 쉬며 바라봤는지, 소중한 시간은 왜 늘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지 모르겠다.
결혼 후 나는 공공기관의 월간지 객원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매달 나에게 할당되는 몇 꼭지의 원고를 마감기한까지 완성해서 보내야 했다.
첫째를 낳기 전에는 외부 취재와 인터뷰 등을 진행하며 원고를 작성했는데 출산 후에는 전화 취재만으로 작성할 수 있는 정보성 기사들을 할당해 주었다. 외부 취재가 여의치 않은 나를 배려해 준 것이다.
아이가 낮잠 자길 기다렸다가 방문을 닫고 나와 취재 전화를 걸고 육아 중에 틈틈이 자료를 수집해 두었다가 아이가 밤잠이 들면 거실로 나와 노트북을 켜고 원고 작업을 했다.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때 때때로 연결이 안 되어서 아이가 울고 있을 때 회신이 오거나, 전화가 가능한 시간을 알려주고 그때 전화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무척 난감했다.
아이의 생체 리듬을 나에게 맞출 수가 없으니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기만 했다.
높은 연봉을 받는 직장인이었다면 고민 없이 아이를 일찌감치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돌봄관리사를 고용해서라도 직장에 다녔겠지만 난 그런 입장이 아니었다.
나중을 위해 가늘게나마 '기자' 경력을 이어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기자'라고 불리는 것이 좋았다.
이 경력마저 끊기면 아이를 키워둔 이후에 내가 다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함에 몸이 버티지 못하는 와중에도 계속 붙잡고 있었다.
그러다 둘째가 돌을 지났을 무렵 이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결국 받아들이게 됐다.
큰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었는데 아이들에게 “좀 자라”며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내 모습이 문득 괴물처럼 느껴졌다.
사회와 연결된 끈 하나라도 부여잡기 위해 10년여간 일해온 객원기자 일을 놓게 되었다.
그날 이후 처음으로 다른 선택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편하게 맡길 곳이 없다면, 집에서 아이들을 보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그렇게 나는 노트북 하나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