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아버지는 7월 7일에 결혼을 하셨다.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딱 한 번 오작교에서 만나는 날. 그 숙명을 닮은 것인지 부모님은 견우와 직녀처럼 오랜 기간을 떨어져 사셨다. 아버지의 잦은 지방 발령 때문이었다. 할머니까지 3대가 모여도 4인 밖에 안 되는 작은 대가족은 내가 대학에 가고 나서야 모두 모일 수 있었다.
올봄, 아버지는 은퇴를 2년 앞두고 또다시 지방 발령을 받았다. 임금 피크제의 정점을 지난 시점에서 퇴직도 충분한 옵션이었지만 아버지는 지방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 무렵 나는 가족들과 사이가 소원해졌다. 아버지의 지방 발령 때문은 아니다. 입사 후 계속 자취를 했기 때문에 피부로 와 닿는 변화는 없었다. 그저 계절이 바람을 갈아 끼우듯. 그것은 우울이 원인이기도 했고 우울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다섯 달 무렵을 가족들과 연락 한 통 없이 지냈다. 가끔 이렇게 객기처럼 독한 마음을 품곤 한다. 그동안 가족들, 적어도 엄마는 많이 아팠을 거다.
친구들과 같이 가기로 했던 여행이 이틀 전에 급작스럽게 취소됐다. 혹시나 해서 펜션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요금은 한 푼도 환불이 안된단다. 아까워서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깝다는 건 허울 좋은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엄마, 피곤하시면 안 가셔도 되는데요. 펜션이 공짜로 생겨서요. 혹시 모레 같이 가족여행 갈래요?'
거절을 먼저 제안하는 물음에 엄마는 알겠다며 아빠는 어떻게 할지 물어보겠다고 했다. 그게 낯선 가족여행의 시작이었다. 몇 달 간의 부재에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아버지는 근무지에서 곧장 펜션으로 오기로 했다. 나는 5개월 만에 본가에 가 잠을 잤고, 당일 아침 어머니의 차를 타고 함께 떠났다. 그저 덤으로 얻게 된 여행이라 처음에는 큰 욕심이 없었지만, 2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하니 멀리 가는 만큼 더 알차게 놀아야 한다는 마음이 커졌다.
계획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중간에 맛집을 들리려고 했는데 깜빡 지나친 것이다. 부푼 마음만큼이나 짜증이 나서 툴툴거렸다. 옆에서 길 찾는 걸 잊고 있던 내가 싫었고, 그저 다 괜찮다며 점심은 펜션에 가서 먹자는 엄마도 미웠다. 짜증밖에 생산해 내지 못하는 한심한 존재. 이렇게 속절없이 짜증이 몰아칠 때면 정말 아지랑이처럼 증발해버리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펜션 주변에 편의점 하나 없어서 마트에 들려 장을 봤다. 쌈장, 상추 등 웬만한 재료는 이미 집에서 엄마가 단단히 챙긴 차라 소시지, 음료수, 콩나물 따위를 샀다. 고기는 아빠가 사 오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엄마와 나는 마트에서 산 콩나물을 넣어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빠도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콩나물 라면'과 '예상보다 빨리 도착한 아빠' 덕분에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작은 것들이 감정을 바꾼다.
피곤해서 입술이 부르튼 아버지는 방에서 쉬기로 하고, 엄마랑 나는 계곡에 갔다. 무릎까지 오는 시원한 물살에 괜히 첨벙첨벙 걷다가 큰 바위에 둘이 나란히 앉았다. 나는 엄마에게 자꾸 무섭고 허무한 생각이 든다고 고백했다. 가족들이 나이 드는 걸 보는 것도 무섭다고 했다. 자꾸만 울었다. 평소에는 한 방울도 안 나오는 눈물이 계속 터져 나왔다. 엄마는 웃지도 울지도 않는 표정으로 내 얘기를 듣다가 그림을 그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담담히 말했다. 곧 우리가 앉은자리에 그늘이 졌다. 그늘이 가실 생각을 않자 우리는 냇가를 나왔다. 이 우울감도 그렇게 걸어 나올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에는 숙소 앞 텐트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더위를 많이 타는 아빠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고기를 구웠다. 살치살인지 채끝살인지 고기의 부위 같은 건 도통 아는 바가 없지만 정말 맛있었다. 쉴 새 없이 먹던 우리는 고기를 세 팩이나 뜯었다. 입 짧은 식구들에게는 굉장히 드문 일이다. 아빠는 잘 먹는 엄마와 나를 보며 더 신이 나서 고기를 구웠다. 두 팩을 먹고 났을 쯤에는 사실 정말 배가 불렀다. 하지만 이 기분이 끊기기 싫어서 계속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며 먹었다.
저녁을 배불리 먹은 후 엄마는 먼저 잠이 들었다. 아빠는 히든싱어를 보며 정답을 맞히다가 곧 따라 잠들었다. 나는 뒤척거리다 뒤척거리다 한참을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아침, 우리는 체크아웃 시간보다 훨씬 이르게 펜션을 나섰다. 점심은 아빠가 찾은 막국수집에 갔는데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가게에는 손님이 우리 밖에 없었다. 고작 셋이면서 차가 두 대인 걸 보면 어떤 사연을 떠올릴까. 빨간색 엄마 차와 하늘색 아빠 차가 나란히 서 있는 주차장을 보니 색깔마저 얄궂은 장난처럼 느껴졌다.
식당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갈림길에서 아빠는 더 동쪽으로, 엄마와 나는 서쪽으로 향했다. 정말 꾸준한 견우와 직녀다. 둘 사이에 놓인 까마귀 같은 나는 다음 주 주말에도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취하는 집 말고 우리 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