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님'을 손님으로만 맞지 말자

-글감을 밖에서만 찾다가는 좌절하기 쉽다

by 이수정

혼자 글쓰기를 하려 하면 잘 안되는 사람도 글감이나 소재를 주면 그 자리에서 슥슥 잘 쓰는 경우가 꽤 있다. 예전의 백일장 같은 걸 봐도 그렇다. 평소에 글을 쓰지 않거나 글쓰기라면 몸부터 배배 꼬는 아이들도 백일장에서 주어진 글감이나 주제를 대하면 뭘 써도 써 낸다. 그것도 한 두 시간이란 제한된 시간 내에. 정말 잘도 써 낸다.


공모전을 준비하는 습작생도, 심지어는 기성 작가들도 '글감'을 놓고 고민한다. 글이 제일 안 써지는 게, 글을 못 쓰는 게, 글감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도대체 뭘 쓰지?


그리고 '그분'을 기다린다. 영감님, 뮤즈여사. 영감님과 뮤즈여사는 밖에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짧은 필력이지만 내가 글을 써본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물론, 영감님이 '외출'을 하기도 한다. 아니, 외출을 하고 오셔야 한다고 하는 맞을지도 모르겠다.


글의 영감님은 쓰는 사람 안에 있다.

쓰는 사람 안에 뭐가 없는데 생전 처음 본 낯선 영감님이 문을 두드리기는 힘들다. 쓰는 사람 안에 뭐가 먼저 있어야 한다. 그게 있다가, 바깥의 무언가와 만나 스파크가 튄다. 그때, 영감님이 일어나는 것이다. 쓰는 사람 안에서. 영감님이 바깥에서 오면 '손님'에 불과하다. 손님은 가게 마련이다. 또 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영감님을 '상주 거주민'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니, 그 상주 거주민은 쓰는 사람 안에 이미 존재한다. 늘 있다.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글은 얼마든지 쓴다. 안에 있는 것들끼리도 스파크를 튕긴다. 부딪히면 스파크기 일어난다. 쓰는 사람은 그 스파크를 동력으로 손을 움직여 쓰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쓰는 사람의 시선은 늘 밖을 향해 있다. 글감을 찾고 영감을 얻느라고 어딜 그렇게 다녀야 한다. 돈 들여 누굴 만나고, 짐 싸서 여행을 가고, 강연을 듣고, 책을 읽고...이 모든 노력은 물론, 필요하다. 하면 좋은 것이다. 외부와의 접촉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글감이 오는 것이 아니다. 가능성이나 기회가 무조건 늘어난다고도 볼 수 없다. 만남, 여행, 독서. 모두 좋고 필요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결정적인' 한 방의 글감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되는 거다. 그런 기대가 오히려 영감님을 부담스럽게 할 수도 있다.


쓰는 사람 안에 있는 영감님을 일어나게 하고 움직이게 하려면 생각해야 한다. 철학이든, 문학이든 그 터전은 '생각'이다. 철학과 문학은 굉장히 붙어 있다. '생각'이란 활동을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삼기 때문이다. '잡념'도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잡념에서도 단 하나의 그것이 포착될 수 있다. 불쑥, 솟은 잡생각. 그걸 쓸데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마음이 쓰는 사람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왜 불쑥, 그 생각이 떠올랐을까, 하고 먼저 물어야 한다.


아무튼, 생각을 하고 또 해야 한다. 한 단어나 어떤 개념, 어떤 것에 관해, 뭐가 되든 좋으니 깊게 생각해 본다. 그러면 곁가지들이 끌려들어온다. 떨쳐낼 필요없다. 그것도 다 중요하다. '우정'에 관해 생각하는데 갑자기 말 한마디 안 해 본 옆집 여자가 떠올랐다면, 그 여자와 우정을 만들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말 걸기 힘든데 바로 옆집에 사는 여자와 뭔가 일이 벌어지고 그게 갈등이 되다가 결국 우정이 되거나 아니면 반대로 옆집 여자와 잘 지내다가 틀어지는 이야기를 소설로 쓸 수 있다.


소설의 글감 하나 나오지 않았나. 옆집 여자. 주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고. 그걸 더 깊게 생각한다. 더더더 깊게 생각한다. 그러면 생각이 발효된다. 썩는 냄새도 나고, 괴롭기도 하다. 그러다 일정 시기가 되면 적절한 발효 끝에 향기로운 술이 빚어지고 건강에 좋은 요구르트가 만들어진다. 쓰는 사람은 기뻐하면 그걸 마시면 된다.


글쓰기도 생각 나름이다.


밖에서 뭘 자꾸 찾으려 신문도 보고 잡지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다 좋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럴 때 '내게 없는데 밖에 뭐가 없을까'해서는 잘 안 나온다는 뜻이다. 내 안에 뭐가 있는데 이게 스파크가 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런 정도로 마인드셋을 갖는 게 더 유리하다. 이미 내 안에 뭔가 있다는 자신감-. 쓰는 사람은 늘 겸손하다. 내 따위가 글을 써도 되나. 나 같은 게 무슨 작가를 한다고. 내가 쓰는 글을 누가 공감하겠어. 나는 큰 상을 안 받아봐서 모르겠지만, 아무리 큰 문학상을 받는다고 해서 이 마음이 완전히 가실까.


겸손함은 미덕이다. 그러나 쓰는 사람에겐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내 글이 훌륭하다는 자신감이 아니라 내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자신감. 쓰는 사람은 그것을 끄집어 내서 펼쳐보이는 사람이다. 밖에 있는 것만 찾아 유랑하다 보니, 요즘 보는 글이 많이들 비슷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안에 있는 건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밖에 있는 걸 찾아낸 게 아니라 쓰는 사람 안에 먼저 있던 것이 밖의 것을 만난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리 생각한다.


안의 것은 이미 쓰는 사람 안에 있다. 그게 없는데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 먹었을 리는 없다. '글자를 쓰겠다'고 결심한 게 아니지 않은가. '글'을 쓰는 거라면, 무언가를 글로 '옮기는' 것이다. 풀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 안에는 이미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겸손해서 스스로 눈치채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일 뿐.


당신 안에 글감이 천지에 널려 있다. 하지만 도저히 그 자신이 없다면, 안의 것을 먼저 가져야 한다. 늘려야 한다. 넓혀야 한다. 독서든 여행이든 만남이든 강연이든, 쓰는 사람은 그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


글감은 이미 당신 안에 있다. 글을 쓰기로 했다면, 적어도 그 자신감은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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