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커밍아웃

by 배붕

나는 늘 언제나 솔직하고 매사에 직진하는 스타일이다. 일할 때도 그렇고 사람관계에서도 불도저 같은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첫 번째 이혼을 고민했을 때는 아이들이 어리고 그래도 한 번은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줬지만, 그사이 나는 사람을 고쳐쓸 생각으로 상담도 여러 번 보내고 나도 이 사람을 감당하기 위해 상담도 다녔다. 그래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아이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부단히 도 노력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두 번째 사건이 터졌을 때는 그동안 머릿속으로 수없이 고민했던 것들을 불도저처럼 진행했다. 두 번째 이혼을 결심했을 때는 고민이 없었다.

회사업무는 프로젝트로 제일 바쁠 때였고 진급 전이라 이것저것 챙겨봐야 할 게 많았고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오히려 회사일이 바쁘지 않았다면 이런 속 시끄러운 일 때문에 힘들었을지 모르겠지만, 회사일도 너무 바쁘고 아이 둘 케어에 변호사 만나고 진행하는 일까지 이 모든 걸 정말 업무 하듯이 앞만 보고 달렸다. 변호사가 이렇게 법원에 제출해야할 신청서 및 의견서를 변호사인 자기보다 깔끔하게 정리하는사람을 처음 봤다고 했다. 그렇게 일하는것처럼 나의 이혼절차도 진행이 되었다.


이혼외에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때려부었다. 정신과상담과 약부터 시작해서 가정폭력상담센터 아이들 모래놀이 치료까지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그야말로 모든 아이템을 때려 붓는 격으로 몇 달을 보냈다.

이렇게 보내다 보니 오락가락하는 내 감정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하나씩 정리가 되니 그동안 결혼생활 동안 나를 괴롭혔던 불면증이 사라졌다. 아직 조정기일이 되지도 않았지만 요즘은 정말 두발 뻗고 푹 자고 꿈까지 꾸고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난다.


아주 친한 친구들에게는 나의 이런 상황들을 이야기했지만, 인간관계에서 약간의 거리가 있는 사람들에게 이혼에 대한 첫 커밍아웃은 아이친구 엄마였다. 시작은 제발에 저려 이야기를 했지만(밤에 경찰 부르고 그 소동을 부렸으니 우리 옆옆집에 사는 그 집에서도 알거라 생각했다.) 나와 동갑내기 그 엄마는 오히려 나에게 친한 친구였어도 그렇게 선택하라고 했을 거라면서, 앞으로 무슨 일 생기면 무조건 연락하라고 자기가 바로 출동한다면서 아이들은 정말 잘 키우자면서 이야기해주는 그엄마가 너무 고마웠다. 사실 그전까지는 원래 살던 이웃집이어서 이 모든 소동 때문에 오히려 거리를 더 뒀다. 하지만 아이들도 같은 초등학교 같은 반으로 배정이 되었고, 작은 시골마을 학교라 반이 3개밖에 안되니 앞으로도 계속 마주칠테고 입학식부터 공개수업 아이들 오고가면서 계속 마주치다 보니 내가 불편해서 결국 스스로 커밍아웃을 해버렸다.


두 번 때 커밍아웃은 회사사람들이었는데

내가 일하는 30명 남짓 되는 파트에는 4명의 워킹맘이 있다. 아무래도 애들도 초등학생이고 하니 모여서 티타임을 가지면서 회사일을 병행하면서 힘든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남편과 시댁 흉을 보기도 하며 힘든 내용을 토로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서류정리가 되고 방향이 결정되고 나자 남편이 있어도 없는 척 이야기를 하는 게 나는 너무 힘들었다.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런 껄끄러움을 가지고 있는 게 불편했다.

언젠가는 오픈해야지 싶으면서도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늘 가슴에 불편함을 안고 있다가 얼마 전 티타임에서 서로 남편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저는 사실 지금 서류정리 중이에요."로 시작해서 커밍아웃을 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중에 감정이입해서 눈물을 흘리는 후배님. 깜짝 놀라면서 눈치 없이 남편하고 아침아이들 등교를 나눠서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고 미안하다고 하는 후배님.

그동안 너무 바빴는데 어떻게 그렇게 지냈냐 그래도 잘 정리되어서 다행이라고 해주시는 후배님.



사실 위로를 받고자 이혼 커밍아웃을 한건 아닌데, 그냥 말을 해야 내가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이게 뭐라고 이혼을 숨기고 남편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게 나에게 너무 불편한 일이었다. 그동안 뭔가 이야기를 하면서도 거짓으로 포장하고 위선하는 느낌이었는데 이걸 이야기하고 나니 가슴에 꽉 막혀있던 것들이 확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깟 이혼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 위축되어야 하는 걸까. 세상에는 서로만의 다양한 이유로 여러 형태의 가족이 있는데 나도 그런 여러 종류의 가족형태 중 하나일 뿐인데 말이다.

인생은 길고 아직 나는 41밖에 안되었고 앞으로 걸어야 할 인생의 길이 구만리 남았는데 한번 넘어졌다고 해서 그게 무슨 큰 대수인가.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면 그만인 것을 말이다.

몇년사이 돌싱들을 다루는 프로그램도 많아지고 돌싱들의 연애를 담은 프로그램도 많아졌다. 그만큼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OECD국가중 우리나라 이혼율이 1위라는 기사를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것 같다. 누군가가 주변에 이혼했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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