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의 보물들

by 배붕

폭력사건이 있은 후 나는 그 집에 아이들과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새벽에 경찰을 부르고 온갖 소동을 벌였던 것도 한몫했지만 무엇 보다가 집에 남아있는 그날 사건의 흔적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아이들의 책장에는 칼자국이

식탁과 싱크대 상판에는 남편이 화를 못 이기고 칼을 내리찍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유리창은 45만 원이나 주고 교체하였다.


그날 이후 나와 아이들은 친정집으로 캐리어하나 챙겨서 나왔는데 처음에는 여행 온 것처럼 좋아하는 아이들이었으나 눈치가 백 단인 첫째가 2주가 넘어가고 3주가 되어가니 뭔가가 이상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 집에 들어가는 건 꺼려지는데 계약기간은 내년 6월까지이며 엄마아빠집에서 지내고 있으나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있는 것 도 사실이었다. 내 공간 내장소가 있는 상태에서 부모님 집을 왕래하는 것과 나의 집에서 도망치듯이 나와있자니 나의 마음이 둘 곳이 없어서 불편했던 마음일 거다.

나는 어차피 일을 해야 하고 7살 5살 아직 어른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집이 재계약이 끝나면 부모님 댁 근처로 이사를 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친정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도와주셔서 오늘 집 계약을 하고 왔다.

집도 사람과의 궁합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계약한 집은 그림을 그리던 사람의 집이었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집에서 아이들과 새 출발을 하면 나도 심적으로 안정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며칠 전에는 아빠의 근황을 묻는 아이들에게 이 상황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하나 가 사실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였는데 만약 이런상황이 된다면 이렇게 이야기해 줘야지 준비는 하고 있었어서 인지 아이에게

" 아빠가 실은 좀 아파. 그래서 치료가 필요할 것 같아. 그전까지는 우리 셋이 지내야 해"

라고 준비했던 멘트로 이야기를 했다.

사실이지 않는가. 남편은 나에게 칼을 휘둘렀고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상태이며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시어머님에 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치료 잘 받아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면 아이들도 볼 수 있을 거다라고 전해 달라고 했다.

남편이 사실 제 발로 정신과를 갈 사람이 아닌데 이번일로 자신이 환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는지 스스로 병원에 갔으며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과 약처방을 받았다고 시어머님께 전달받았다.


나는 매일 자기 전 아이들과 자기 전에 스몰토크를 하고 잠이 드는데 나는 아이에게 며칠 전 아이들과 같이 본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그 집 어때? 다음 주에 우리 그 집으로 이사하려고 해"

라고 묻자 첫째가

"아빠는? "

"아빠는 이야기한 대로 치료가 필요해서 다시 만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그래서 그동안은 엄마랑 셋이 외할아버지할머니집 근처 집에서 지내야 해.

엄마는 너희를 너무 사랑하고 매일 사랑하고 늘 지켜줄 거야. 너네가 잘 때도 엄마는 항상 지켜주잖아. 자다가 깨서 엄마 부르면 엄마가 항상 달려온 것처럼 엄마가 늘 지켜줄 거야"

라고 이야기하자

이사가 설렌 첫째가 빨리 이사하자며 언제 갈 수 있냐며 재잘 댔다.

그러고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 근데 엄마.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결혼을 하고 아내가 생겨서 아내가 아이를 낳게 되면 나는 그 아이에게는 절대 화를 내지 않을 거야"

순간 혹시 얘가 뭘 본 건가? 아니면 그간 예민해서 화내는 아빠에게 무슨 감정이 있는 건가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말해 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화를 내기도 하고 기뻐할 때도 슬플 때도 있는 거야. 엄마는 너네가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할 때 화를 내잖아? 그렇다고 엄마가 너희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야. 사랑하기 때문에 너네가 어른이 될 때까지 잘못하는 행동을 하면 그걸 가르쳐 줘야 해.

엄마도 아빠도 화를 낸다고 해서 너를 사랑하지 않지 않아"

라고 이야기해주면서

눈물이 날뻔했다.

이 조그만 아이가 앞으로 겪어야 할 감정들이 너무 속상하면서도 미안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겁이 유독 많은 첫째는 잘 때도 불을 켜놓고 자는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집은 대박이가 항상 너네를 지켜준다고 하니 무섭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들을 억누르지 않고 스스로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생각에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내 감정도 뭉클해져 온다.


친정집으로 도망치듯 오고 나서 이따금 아무 이유 없이 울컥하며 우는 나를 발견하고는 했는데. 어느 날은 싱크대에서 사과를 깎으며 우는 나를 보고 엄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엄마가 너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너도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거야. 세상에 극복하지 못할 일은 없어 더더욱이 엄마면 그 어떤일도 극복할 수 있는 거야."

참 나는 부모님께 이렇게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구나. 언제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나의 편이 있다는 건 너무나도 힘이 되는 거구나. 내 보물들도 내가 이만큼 사랑을 주고 키우면 언젠가는 내가 의지할 수도 있는 존재로 성장할꺼고 아이들 또한 나를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자니 미안한 감정. 뭉클한 감정. 사랑하는 감정 무수한 종류의 감정이 들고 그만큼 또 많은 생각이 든다.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엄마가 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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