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책임감

by 배붕

나는 흔히 이야기하는 K-장녀이다. 물론 옛날처럼 줄줄이 사탕 동생들을 돌보며 뒷바라지 하는건 아니지만

"책임감"라는 단어 앞에서는 K-장녀의 특징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3살 아래의 남동생을 어렸을때 돌봐줬던 기억이 늘 있다.

아침에 세수를 해주고, 소변을 가리기 시작했을때 페트병에 오줌을 뉘어준 기억이 있으며 똥을 싸고나면 휴지로 뒷처리 해줬던 기억도 있다.

그래서 였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남편과 왜 결혼을 했느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가 한 20프로 부족해 보여서 내가 아니면 거두어줄 사람이 없을것 같았다. 라고 대답을 하곤 했었다.

실제로 그게 사실이었고 남편은 어딘가 모르게 길잃은 강아지 느낌이 있었는데 이게 나의 책임감 때문이었는지 내가 그걸 채워줄수 있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처가살이 이후 남편이 집을 처음 나갔을때, 첫째가 2-3살이었고 둘째는 아직 첫돌이 되기 전이었다.

남편은 자기는 나갈수 밖에 없었다고 했지만 내가 느끼는 것과는 너무 달랐다. 나는 어떻게 나와 이렇게 어린아이를 두고 혼자 나갈수 있느냐 이사람이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있는 사람일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가족이라 함은 늘 책임져야할 대상이고, 어떤 힘듦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짊어지고 함께 걸어나가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던것 나와는 달리 그사람은 어떠한 책임감이 주어져 자기 어깨를 누르는 순간 집을 나가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집,혹은 가족이라는 존재가 너무 당연하게 책임을 져야하면서도 내가 있을곳이라고 생각하는 나와 달리 가족이라는 개념자체를 생각하는 구조가 너무 다른 사람이라 생각이 든다.

지금와서 그간 지나간 일에 대해 정리를 하다보니, 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너무나도 노력했던 반면 그사람은 가족이 아닌 자기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었던것 같다.


이번 사건 이후로 남편은 현재 나와 아이들에게 긴급임시조치 처분이 떨어져 연락을 할수 없는 상태이나, 남편이 쓴글을 시어머니 통해서 읽을 수 있었는데 그 글에서 조차 나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하나도 찾을수가 없었다. 그 글은 온통 자기합리화와 자기연민으로 덮어져 있었고 오로지 내가 왜 이런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 밖에 없다.


어쩌면 이혼이라는 것이 그사람에게서 "책임감"을 덜어낼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부양해야한다는 책임감은 내가 안고 너는 최소한의 책임 "양육비"라는 부분만 주어준다면 아마 세상을 살아 가는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수 있을꺼다 라고 말이다.

실제로 그러면 그사람은 아무 문제없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게 될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40년을 보낸 내가 인생의 경험이 많지도 적지도 않는 내가 감히 생각해보면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과 가족을 꾸려나가는 사람은 태생부터 다르다는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지금 만약 내 주변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너 혹은 그 사람은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인가 함께 살아갈수 있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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