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괜찮은 인생이라는 허상
25.04.03 일자로 글 발행 시 분류를 잘못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편은 25.04.10 일자로 '윤슬은 사라지지 않아' 연재북에 발행합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꽤나 괜찮은 인생을 살아왔다.
간호사라는 직업에, 24살의 나이로 졸업하자마자 웨이팅 없이 대학병원 입사.
남들이 보기엔 먹고살만한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나 스스로도 내가 잘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주 천재적인 머리는 아니지만, 노력하면 상위권에는 진입할 수 있는 수준이랄까. 중학교 때는 학년당 여덟 반 정도의 규모에서 1등을 했고,
대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전공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몇 번이고 엎어지다가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4.5점 만점에 4.33점의 점수를 받았다.
물론, 1.2학년때 말아먹은 성적이 있어 졸업은 3.79로 했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손 놓고 산 인생은 아니다.
그래, 쓸만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대학병원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입사 후부터는, 내가 아주 멍청이가 된 줄 알았다.
간호계의 태움과 나의 적성, 그 사이 어딘가에서 계속해서 충돌이 일었다.
잘해도 욕, 못해도 욕, 그런 상황이 반복되니 내 판단력은 점점 흐려졌다.
흐려지다 못해, 바보가 되었다.
이제는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매일이 지옥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상황들이 나를 그렇게까지 힘들게 했는지 모르겠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아 지웠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이제는 정말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살아야 했다.
그 자리에 계속 있다가는, 10년 뒤의 내 모습은
한심한 나의 프리셉터일 게 뻔했다.
(물론 퇴사한 지금에서야 '한심한'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어떠한 수식어도 붙이지 못할 만큼, 나의 모든 자아가 마비되어 있었다.)
어찌어찌 버텨가며 다니고 있었지만,
이러다가는 우울증에 걸려 죽겠구나, 싶었다.
결심했다.
당장 아빠한테 달려가서 말했더니,
웬걸. 아빠가 그렇게 소리치는 걸 처음 봤다.
한심하다며 나를 향해 소리치는 아빠의 모습이 참 낯설었다.
자는 아빠를 깨울 때를 빼고는, 화를 내지 않았던 딸바보가 분명한데 말이다.
아빠의 외침은 여전히 내 마음 한편에
상처가 되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내 무의식은 나를 살렸다.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 퇴사에 성공한 것이다.
우선은, 정말 숨은 쉬고 봐야 했다.
그릇도 안 된 것이 깨진 채로 둥둥 떠다니며 살아봐야 아무 소용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