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괜찮은 인생‘이라는 허상
생각해 보면, 나는 꽤나 괜찮은 인생을 살아왔다.
간호사라는 직업에, 24살의 나이로 졸업하자마자 웨이팅 없이 대학병원 입사.
남들이 보기엔 먹고살만한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나 스스로도 내가 잘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주 천재적인 머리는 아니지만, 노력하면 상위권에는 진입할 수 있는 수준이랄까. 중학교 때는 학년당 여덟 반 정도의 규모에서 1등을 했고,
대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전공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몇 번이고 엎어지다가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4.5점 만점에 4.33점의 점수를 받았다.
물론, 1.2학년때 말아먹은 성적이 있어 졸업은 3.79로 했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손 놓고 산 인생은 아니다.
그래, 쓸만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대학병원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입사 후부터는, 내가 아주 멍청이가 된 줄 알았다.
간호계의 태움과 나의 적성, 그 사이 어딘가에서 계속해서 충돌이 일었다.
잘해도 욕, 못해도 욕, 그런 상황이 반복되니 내 판단력은 점점 흐려졌다.
흐려지다 못해, 바보가 되었다.
이제는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매일이 지옥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상황들이 나를 그렇게까지 힘들게 했는지 모르겠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아 지웠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이제는 정말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살아야 했다.
그 자리에 계속 있다가는, 10년 뒤의 내 모습은
한심한 나의 프리셉터일 게 뻔했다.
(물론 퇴사한 지금에서야 '한심한'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어떠한 수식어도 붙이지 못할 만큼, 나의 모든 자아가 마비되어 있었다.)
어찌어찌 버텨가며 다니고 있었지만,
이러다가는 우울증에 걸려 죽겠구나, 싶었다.
결심했다.
당장 아빠한테 달려가서 말했더니,
웬걸. 아빠가 그렇게 소리치는 걸 처음 봤다.
한심하다며 나를 향해 소리치는 아빠의 모습이 참 낯설었다.
자는 아빠를 깨울 때를 빼고는, 화를 내지 않았던 딸바보가 분명한데 말이다.
아빠의 외침은 여전히 내 마음 한편에
상처가 되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내 무의식은 나를 살렸다.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 퇴사에 성공한 것이다.
우선은, 정말 숨은 쉬고 봐야 했다.
그릇도 안 된 것이 깨진 채로 둥둥 떠다니며 살아봐야 아무 소용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