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모두가 대나무 숲이 필요하다

by 수다쟁이

브런치를 처음 알게 되고 가입하게 된 계기는 친구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같은 고향 친구인 그녀는 1년에 한두 번 명절을 전후로 만나는 사이인데, 나와는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진 친구이다.

사실 나는 좀 더 자주 만나고 싶은데 그녀는 나를 만날 때마다 조금 기 빨려하는 모습이 보여서 너무 괴롭히지 않으려고 자중하고 있는 걸 그녀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사이이니 그동안 쌓인 에피소드가 얼마나 많겠나 떠벌떠벌 떠벌리는 내게 그녀가 브런치를 소개했다. 그런 에피소드를 한번 글로 적어보라고.


역시 인문학도. 자기 이야기를 하는 친구가 아니다 보니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녀도 자신만의 아카이브가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꽤나 오랫동안 내게 너의 글을 모아보라고 권장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녀는 혹시 브런치를 통해 유명해지거나 상을 받게 되는 일이 있다면 여는 글에 꼭 자신을 언급해 달라고 했다.


이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해서야 뭐 집필은 너무 과한 꿈인 거 같고 이 자리를 빌어서나마 친구의 추천에 감사의 글을 올린다.


어찌 되었던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는 이곳이 내 대나무숲이 되어 줄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이런 익명성이 필요했다. 주변에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지만 오히려 지인들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는 구린 구석을 여기저기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나뿐만의 욕구가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

업무상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가끔 그들은 점쟁이라도 찾아온 듯이 내게 말을 건넨다.


▷"남편이 돈으로 너무 스트레스를 주어서,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가게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우리 애가 착해 보이지만, 집에서는 얼마나 표독스러운지 모른다."


▷"차라리 외로운 게 (와이프와) 다투고 모멸감을 느끼는 것보다 훨씬 낫다."


▶"내가 사업을 이만큼 키워 두었는데 지금 들어와서 일하는 아들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참고로 내가 상담을 해준다거나 남의 어려움을 먼저 묻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위의 말들처럼 내가 들어도 되나? 싶은 주제나 숨기지 않는 날것의 감정을 털어놓을 때면 나도 모르게 당황을 하게 된다. 당연히 내게 답을 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감을 해주거나 공감이 안 가도 들어만 주다 보면 대화 시간이나 통화 시간이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에 임박하는 경우도 있다.


가끔은 처음 보는+다시 볼 일이 적은 사람에게 더 많이 마음이 열리기도 하는 법이다. 예민하고 치사하고 지저분한 마음일수록 더 그렇다.


자주 보는 옆집 이웃에게는 내 남편의 인색한 면모를 알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내 남편인데 욕하는 건 누워서 침 뱉기와 같다.


본인 자녀의 우수한 성적을 자랑하는 학부형에게 우리 집 사춘기 대왕의 히스테릭함을 알리고 싶지 않다. 다른 집들도 똑같겠지만 그래도 내 자식은 엄친아로 남아야 한다.


▷수십 년을 곁에서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와이프에게 잠깐 불만이 생겨 화풀이 혹은 하소연할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다. 나의 친구에게 가족에게 내 부인을 욕할 순 없다.


▶이러나저러나 내 밑에서 열심히 일하고 손주도 안겨주는 멋진 아들이다. 해당 필드에서 수십 년을 일한 아버지를 믿고 납득이 안 가도 "네-"라고 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아쉽다. 이 사업을 물려주고 나면 날 뒷방 늙은이 취급할까 봐 겁이 난다.


낯선 이에게 털어내는 그들의 마음은 이런 거 아니겠나. 내 감정을 알아주고 나의 이 작은 면모를 잊어주고 흘려버리라고.


그래 다들 응어리가 있고 불안함이 있다. 원활하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말 안 하자니 답답하고 하자니 치사한 일들이 생긴다. 중고등, 대학생들의 에타, 대나무 숲이라는 커뮤니티처럼 "경영학원론에 파란색 셔츠 입은 선배 여자친구 있나요?"라는 상큼한 사연만 올라오는 곳이 아니다. 직장인들의 블라인드처럼 "우리 부장 개개끼"를 외치고 더 나아가 내 남편, 내 자식, 내 부인, 더 나아가 스스로의 못남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크게 외칠 수 있는 공간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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