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사람을 너무 좋아해

이젠 단도리 정도는 하는 어른인 듯

by 수다쟁이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병설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에 가는 게 즐거워서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 30분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서 열리지 않은 교문을 지나 쪽문으로 들어갔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학교 교무실 들어가기 전에 열쇠함 같은 게 있어서 그 열쇠로 교무실을 열고 교무실 안에 열쇠함에서 교실 열쇠를 가져다가 문을 열고 다른 친구들이 오길 기다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미라클 모닝한 때가 아니었나 싶다.


서로 집에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 있는지 다 아는 작은 시골동네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외부 지역에서 전학생들이 많이 유입되었어도 기존 동네 아이들이 다수이고 터줏대감이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가 있는 덕에 동네에서 큰 트러블 없이 두루두루 다 잘 지내는 삶을 산거 같다.


그러다 연고도 없는 대학을 가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또 구제역이 유행이라 축산업에 종사하는 부모님을 가진 나는 OT를 가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참석한 대학 첫날은 나 빼고 이미 삼삼오오 친해진 느낌? 그게 얼마나 서럽던지. 어울리긴 하는데 겉도는 느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기들끼리는 뭐 A반 B반 소속감이 다 들어있는데 나는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론 수업을 들으며 팀플을 하는데 계속 나 빼고 자기들끼리 노는 학우들에게 서운함이 쌓여서 뜬금없이 교수님 면담시간에 엉엉 운 적도 있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거기서 운다고 그 친구가 친해지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ㅋㅋ 생각해 보니 그렇게 결이 맞는 애도 아니었는데 그 여자애가 이뻐서 내가 좋아했던 거 같기도 하다.


한 번은, 페이스북을 통해서 고향 친구라며 연락이 왔었다. 그런데 이름이 초면인 거다. 한번 만나서 놀자는 말에 나는 쪽지 너머의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약속을 잡았고 조우를 했었다. 같은 학교는 아니었고 인근 학교에 재학했던 그 친구는 가끔 연합 행사? 같은 게 있을 때 오가며 마주친 상대였는데 못본새에 개명을 해서 내가 못 알아봤던 것이었다. 그 일을 계기도 그와도 한 10년 정도의 우정을 유지했던 것 같다. 같다고 하는 건 지금은 거리두기 중이어서 그렇다.


사람이란 가까웠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그리고 다시 만나면 반가울 때도 있고 다시 봐도 불편한 사람도 있는 게 아니겠나. 그것이 3n살 살아온 내가 내린 결론이다. 내가 사랑받으려고 노력한다고 사랑받는 게 아니고 나와 유머코드가 맞고 나의 장점 또는 단점이 잘 융합되는 상대와 결국에는 오래가는 것 같다.


사기도 당해보고 착취도 당해보고 그러면서도 내가 잘못된 구석이 있었는지 반성도 해보고 철저하게 미워도 해봤다. 왜 사람 간에 범죄가 일어나는지 이해가 되는 것 같은 순간도 있었다. 지인 중에 제법 큰 규모 회사의 상무님이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은 면접보고 채용을 해봤지만 아직도 사람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더라. 결국은 부딪혀보고 생활해 봐야 안다고.


그래 고작 몇 년 살지도 않은 내가, 일도 혼자 하는 내가, 사람 만날 일이 얼마나 있고 얼마나 잘 알겠나 나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을 부딪히고 상처 입고 내가 상처 입히며 겪어나가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래도 나름의 기준이라는 게 생겼고, 뭐가 좋은 사람인지 좋은 어른인지는 몰라도 누가 나이 똥구멍으로 먹었는지 정도는 구별할 수 있게 되더라. 부디 스스로는 나이를 뒤로 먹는 어른이 되지 않길 바라며 살아갈 뿐이다.


그래도 최근에 친구가 그런 말을 하더라, "내가 아는 너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잘 믿어서 항상 자기를 다 써버려서 걱정되었는데, 최근에 본 너는 그래도 많이 단호 해 졌더라. 다행이야. "


나를 그런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었다는 사실에 감동+ 이제는 방어적으로 변한 나 자신에 대한 일종의 서글픔+그래도 처신을 좀 더 잘하게 된 자신에 대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있어서 참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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