늴리리맘보
내 인생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무엇인가?
바로 돈이다.
돈!!
솔직히 남들 나이키 신고 입을 때, 시장 옆에 인디언신발점에서 아널드파머 신발 사주는 엄마한테 찡찡 투정을 부린 적 있다. 남들 형형색색 노스페이스 패딩 입을 때, 할인 매장에서 업어온 르까프 검은 패딩 입으면서 왜 나는 노스페이스 안 사주냐고 울쌍 지은적이 있다.
"야 이것도 브랜드고 좋은 거야.."라고 했던 엄마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대세가 아니었으니까.
근데 다행인 건 좀 찡찡거려도 이런 거 입고 학교 못 가겠다고 버팅기는 애는 아니었다 내가. 또 잘 수용하고 그러려니 하고 잘 입고 다녔다. 생각해 보면 패딩이 있는 게 어디인가. 엄마 아빠 양말에서만 봤던 우산로고이지만 어쨌든 어디서 봤다는 건 유명한 거겠지라고 잘 입고 다녔다. 전부 고만고만한 시골이라 그런지 넌 왜 나이키 없냐고 놀리는 애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집은 없는 집은 아니다.
티브이에 나오는 그런 재벌집이나 아버지 회사 골프장 회원권 들고 주중에 두 번 세 번 나가는 그런 부잣집은 당연히 아니지만, 나 아는 다른 사람들에게 너네 집은 그래도 부자잖아.라는 소리를 듣는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해 부모님 두 분이 얼마나 고생하셨을지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냥 잘 몰라서 가난했다고 하는 거 아니냐고 오해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깡패 아저씨의 방문기, 하루아침 집이 없어져 이웃집 할머니 쪽방에 7일 정도 산 이야기와 같은 가난을 증빙하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냥 하는 소리 아니다.
그러다 우리 집이 남들에게는 그래도 좀 있는 집 소리를 듣는다는 것과, 실제로 먹고살만한 집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25, 26살쯤의 이야기. 그전까지 나는 내가 소위 대세 물품인 나이키, 엠피 3, 핸드폰도 못 가질 정도이고 욕심을 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생각해 보면 첫째였던 오빠는 위 물품들을 얻어내고 살았던걸 생각하면 끈기 있게 조르지 못한 성격 탓인 거 같기도 하다.)
아무튼 각설하고, 한 집안 한 명은 부잣집 도련님으로 크고 한 명은 가난한 집 딸램으로 큰 와중에 나는 항상 성공에 목말랐다. 성공해서 부모님에게 번듯한 무언가도 해주고 싶고, 집도 사고 싶고,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도 턱턱 가고 싶었다. 부모님이 뭔가 하고 싶을 때 한 밑천 해주고 싶은 딸이었다. 마음은 그렇다.
그런 나에게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것은 돈이다. 아 그런데 이게 녹록지가 않다. 내 나이 3n살 헐떡 헐떡 산다. 내 나이에 엄마 아빠는 애가 둘이고, 둘을 입히고 먹이고 사업도 일궈냈는데 나는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
내 몸뚱이 건사도 솔직히 만만하게 안된다. 대출금 갚아야지, 뭐 공과금 내야지 고정비에 생존을 위한 식사 아! 그리고 나도 취미는 좀 즐길 수도 있지! 월화수목금토일 4-5번 지나면 한 달 뚝딱이고, 이거 11번쯤 반복했더니 벌써 월 말이라 내년이 코 앞이다.
중간에 좀 잘 벌리나 싶더니 또 꼬로로록한다. 살만하다 싶으면 죽을 거 같다.
나는 언제 엄마 아빠 호강시켜 드리고 돈 걱정 안 하고 맘 편하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쌓이다 보니 최근에 생각이 많아지고 불만이 계속 생긴다. 귀에 압이 찬다던가 장염으로 한참고생한다던가 스트레스에 취약한 몸뚱이가 제일 먼저 잔고장이 난다.
나의 나쁜 버릇이다. 좋게 포장해 보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발전하려 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계속 불만을 가지고 스트레스받는다.
오늘도 고정비 내역을 적으면서 결론을 낸다.
"역시 더 버는 수밖에 없어."
당장 어디 나가서 도둑질해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안되면 버려지는 5천 원이 아까워 죽으면서도 유일한 지름길인 듯 로또를 구매해 본다.
돈! 돈! 돈!!
노력하고 있는데 안 되는 거 어쩌겠냐. 계속 이렇게 발버둥 치고 있을 수밖에
아, 어쩌란 말이냐! 늴리리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