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으로 시작해 제법 생산성 있어진 노후 계획
친구가 이사를 해서 집들이 겸 모였던 자리였다.
오랫동안 해온 생각이라면서 웃자면서 이야기를 꺼냈는데 겁나 혼났다.
우리들 사이에서 김삿갓 플랜이라 불리는 그 계획이 무엇이냐면,
만약에 내가 쫄딱 망해서 정말 빌어먹게 된 거다. 그런데 너무 일도 하기 싫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지?
일단 전화번호부를 연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용한 핸드폰이라 나름 이런저런 사회 활동도 많이 하고 뭐 모임에 총무 이런 거 한다고 여러 번호를 저장한 적이 있더랬다. 그래서 내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인원은 1362명.
그들은 연천에서 해남까지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나는 대구, 경상도 쪽이니까 위로 올라가던 내려가던 여러 시도가 가능할 것이다. 어찌 되었던 전화를 돌린다. 전화를 돌려서 오늘 하루 재워 줄 수 있냐고 묻는다. 이중에 허수도 있을 테니 4명 중 1명은 오케이를 할 것이다. (공감이 안될 수 있지만 아직 시골인심은 살아있고 예전에 동문 했던 인연을 핑계 삼아 전화하면 떨떠름해도 오케이 해줄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1362면 중 1/4면 340일 대략 1년의 시간이 해결이 된다. 남은 25일은 뭐 그 정도 해결할 능력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같은 방법으로 지역구를 바꿔가며 이동하면 최소 2바퀴는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3년 차에는 소문이 좀 날것이다. 000 이가 빌어먹고 다닌다 전화받지 마라 잠도 재워달라 하고 밥도 사달라고 한다 말이다.
그러면 그때는 1년은 돌리기 좀 힘들어 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1/8의 확률정도는 되지 않을까? 오히려 소문이 나서 측은지심을 느끼는 사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럼 추가적으로 대략 반년정도는 해결할 수 있으리라.
라는 내 말이 끝나자 친구가 극대노 했다. 결국은 놀고먹으면서 빌어먹겠다는 거 아니냐고 너를 재워 주는 그 후보 TOP 10위안에 내가 들어가는 거냐면서.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친구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TOP 10위라니, 넌 TOP3 야"
아무튼 이 대화 이후로 내가 망했을 경우 플랜 A는 김삿갓플랜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보장되지 않은 미래를 가진 자영업자와 사기업 회사의 일원인 나와 친구들은 이런 식으로 노후 계획? 을 논의 하는데 최근 화두가 된 아이템은 푸드 트럭이었다. 일명 순대차
김삿갓 플랜과 푸드 트럭 그리고 차별화 전략을 위해 내가 택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바로 5톤 트럭 순대차가 되겠다.
그 정도 사이즈면 테이블을 3개 정도는 놓을 수 있으리, 한쪽에서는 대기업 테이크아웃처럼 포장손님을 상대하고 반대쪽에서는 철판을 하나 설치해서 순대를 볶는 거다. 아시다시피 순대차는 현금장사인 경우가 많으니 얼마나 좋을까. 움직이는 식당이니 유지비도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
상상해 보길 바란다. 윙바디가 양쪽으로 멋있게 열리고 화려한 퍼포먼스로(순대 볶는 거) 순대향을 널리 널리 퍼트릴 수 있고, 조명을 예쁘게 달아 손님들의 시선을 잡을 수 있으며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트럭뷰에서 술취해갈 손님들.
흥 많은 친구 하나가 품바 공연까지 해준다고 하니 콘텐츠도 완벽하다. 무일푼으로 전국을 방랑할 계획을 했던 김삿갓 플랜이 알짜배기 현금 왕 김삿갓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