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았다
연말 연초 바쁘다는 핑계로 오래간만에 내 대나무 숲으로 돌아왔다.
일적으로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글 쓸 시간이 부족해지는 아이러니함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아~ 그래도 지금이라도 써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떠 올랐으나 자연스럽게 몸도 마음도 키보드도 멀어지더니 다시 쓰려고 하니 이상하게 거부감 마저 들었다.
새로운 시작으로 의지를 다져야 하는 연초에 변한 거 없는데 왜 난 변화하는 걸까?
예를 들면, 다이어트.
평소랑 비슷하게 먹고 운동도 똑같이 일주일에 3회 무산소 50분 유산소 60분, 연말은 잘 버티었는데 연초에 여행을 한 번 다녀왔더니 그때 불어난 몸무게가 도무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 밥이랑 닭가슴살만 싸들고 다닐 때처럼 먹지는 않지만 평생 그렇게 먹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고 그 이전과 비교해서 좀 할랑해졌지 여전히 식단은 신경 쓰고 있고 저녁은 닭가슴살에 고구마 아니면 밥 먹고 있단 말이야. 이렇게 스트레스받을 정도로 반등이 일어나면 안 되지.
그리고 글쓰기
일주일에 2번 쓰는 게 목표였는데 꾸준하게 하려다 보니 이상한 죄책감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마음이 멀어진다. 안 쓰는 내 모습도 싫고 쓰려고 애쓰는 모습도 싫다.
또 본업
비용을 들이자니 효율이 안 나고 비용을 안 들이자니 도태되는 거 같고 투자의 개념으로 생각하라는데 그만큼 여유자금이 없는 게 문제 아니겠나.
반면에 부정적인 것들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유지되고 오히려 반동으로 엄청나게 성장한다.
예를 들면, 잠 자기 전에 잠깐 킨 인스타 릴스
정신 차려보면 배터리가 다 되었다고 경고음이 울릴 때까지 넘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눈도 뻑뻑하고 머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지만 덮어둔 핸드폰을 다시 손에 쥐고 충전기를 연결한 뒤 또 엄지를 움직이는 나
고생한 나를 위한 보상, 맥주 한 캔
냉장고 속에서 시원하게 식힌 맥주 한 캔의 쾌감은 부정적이라고 불리기에는 너무 큰 보상이다.
다만 그 보상을 시작으로 냉장고 선반의 묶음 맥주를 한 번에 해치우는 스스로가 그리고 다음날의 늙은 몸이 필벌처럼 따라온다. 늘어난 몸무게는 덤이다.
건조기에서 꺼내 놓고 개지 않은 채로 소파에 늘어져있는 저 옷들처럼 꾸준한 부정은 내 삶을 잠식하는 느낌이다. 발목을 잡는 그 손길의 무게는 너무나 쉽게 느껴지고 그것을 뿌리치려는 노력은 작년의 노력보다 더 많은 힘을 요구로 한다.
미신에 미친 자로서 정신 승리를 해보자면 아직 구정이 안 지났으니 엄밀히 말하면 새해는 아닌 셈이지 작년의 어떤 기운이 새로운 나를 방해하려는 속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와 이 글을 읽는 자들을 칭찬해 보자면
우리는 오늘도 스스로를 씻기었고
우리는 오늘도 스스로를 먹였고
우리는 오늘도 생산적으로 일했으며
우리는 오늘도 누군가와 교류하였다.
내 발자국 하나가 나의 삶을 움직였고, 내가 지나온, 내가 방문한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채워주었고
나의 삶과 그들의 삶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자긍심을 가지자 나는 당신은 오늘도 멋지게 지구를 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