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직장인으로서 덜 영근 9년차입니다. 종종 직장생활은 총천연색 인간이 무색무취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도 그 과정 중에 있습니다. 회사에 출근해서 사무실을 주욱 둘러봅니다. 똑같이 생긴 책상에 똑같이 생긴 의자, 비슷비슷한 표정의 사무실 사람들, 옷차림 역시 누구 한 명 튀게 입은 사람이 없습니다. 헤어스타일도 마찬가지.
그렇게 무색무취의 회사 인간들이 모인 곳이 사무실입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회사인간이 되는 것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뾰족했던 모난 곳이 깎여 둥글둥글해지는 과정이니까요. 다만, 총천연색이었던 개인의 개성 역시 빛이 바래는 것이 다소 아쉬울 뿐입니다.
아직 만 10년을 채우지 못한 직장인입니다만, 지난날 깨달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튀어봤자 좋을 게 없다. 묻히자!"
회사인간으로서의 저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는 법을 익혔습니다.
화가 나도 화가 난 표정을 숨기는 법을 익혔습니다.
반대로 좋은 일이 있어도 입꼬리를 내리는 법도 익혔습니다.
회사인간으로 가장 편하게 사는 법은 회사인간들과 가장 비슷해지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남들과 다른 튀는 행동이나 발언을 한 것 같으면 그날 밤은 자책으로 얼룩졌습니다.
'혹시 내가 말 실수 한 것은 아닐까?'
좋은 감정이던, 싫은 감정이던 조금이라도 표정에 그걸 내비치고 나서는 후회만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아, 조금만 더 참을걸.'
그런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여 저는 신입사원 때보다 개성은 잃었을지언정, 조금 더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대학생 시절 저보다 세 살 많던 동기가 종종 제게 하던 말이 있습니다.
"넌 참 말괄량이 같단 말이야."
말괄량이라니, 그건 무슨 할아버지 같은 단어냐며 킬킬대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9년차, 무색무취, 회사인간이 되어버린 지금도 제 안에 존재하는 총천연색의 말괄량이가 존재합니다. 그 말괄량이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려 할 때가 있어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를 부정하거나, 내쫓으려 하지 않으려 합니다. 회사인간인 제가 그나마 저답게 살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주는 고마운 녀석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