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리 Oct 24. 2022

우리, 비장해지지 맙시다.

출산율 꼴찌의 나라에서 일하는 엄마가 살아가는 방법

한 평생 물에 뜨지도 못했던 나는 대학생 때 수영의 매력에 빠졌다. 수영을 처음 배울 때에는 잘 하고 싶은 마음에 온 몸에 힘이 꽈악 들어간 채로 세게 발차기를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몸에 힘이 들어갈수록 힘은 힘대로 들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옆 레인의 고급반 수강생들을 보면서 부러워했다. '저 사람들은 숨도 안차나, 어떻게 저렇게 유려하게 수영을하지?' 수영을 하는 나날이 늘어나고, 나도 자연스레 몸에 힘을 빼고 물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고급반 수강생들의 유려한 자태에 어느 정도 가까워진 것이다. 유려한 수영의 가장 중요한 비밀은 발차기 스킬도, 물잡기도 아니었다. 몸에 힘을 빼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힘들게 느껴지던 수영이 재밌어졌다. 나는 졸업 전 초급반에서 고급반까지 진급(?)하였으며, 수영은 나의 인생취미가 되었다.



출산율 꼴찌의 나라에서 일하는 엄마로 살아가려면 힘을 빼야 한다. 잘하려고 힘을 주면 줄수록 가정도 일도 마음처럼 굴러가지 않았다. 나를 짓누르던 부담감을 내려 놓고 힘을 빼니, 아이들에게 한 번 더 웃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되었다.


먼저, 엄마 혼자 모든 것을 척척박사처럼 해낼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육아도 야무지게 하면서 직장에서도 인정 받는 슈퍼우먼은 그저 판타지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출산율 꼴찌 나라에서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다. 그건 엄마가 못나서도,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어서도 아니다. 예로부터 아이 한 명을 한 마을이 키우는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운이 좋게도 도움의 손길이 있다면 과감하게 그 손을 잡아야 한다. 그 손을 잡고 아이들 돌봄이 그나마 수월해질 때까지의 몇 년을 버텨야 한다.


다음으로, 우선순위를 정해 중요한 것에만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야 한다. 내려 놓을 것은 과감하게 내려 놓아야 한다. 일하는 엄마는 거지다. 시간 거지.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종종거리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다. 시간을 돈이나 금처럼 생각하며 가장 중요한 것에 할애해야 한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퇴근 후 아이들과 눈 마주치고 즐겁게 놀이하는 것이다. 퇴근 후부터 아이들이 잠들기까지는 온전히 아이들과의 상호작용하며 보내려 한다. 아이들의 표정과 아이들의 말, 아이들이 엄마인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중한다. 반면 아이 반찬을 만들거나 집을 청소하는 등 외주가 가능한 것은 과감하게 내려 놓았다. 외주가 가능한 영역은 최대한 외주를 맡겨 시간과 에너지를 아낀다.



<대화의 희열>이라는 예능에 오은영 박사님이 나온 것을 봤다. "우리, 비장해지지 맙시다."라는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왜 유독 육아에 있어서 만큼은 자꾸 비장해질까. 아이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나보다 더 사랑하기에, 최고로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이 비장함을 낳는 것 아닐까.


'비장해지지 말자'는 말을 새기며, 그저 힘을 빼고 살아가려 한다. 위대하지도, 비범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삶이다. 그럼에도 내 인생에 아이 둘이 와 주었다는 것에 감사하다. 직장이라는 울타리 안에 나의 자리가 있음에 감사하다. 일하는 엄마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이전 19화 사실은 아동학 전공한 엄마의 대충하는 육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