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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Oct 24. 2022

사실은 아동학 전공한 엄마의 대충하는 육아

나는 대학교에서 아동학을 전공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동가족학을 전공했다. 직장에서 내 전공을 말하면 다들 "어우, 애들 아주 잘 키우겠네~"라고 말한다. 나는 그저 웃을 뿐이다. 아동학을 전공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지만 내 육아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이렇다. '대충하는 육아'



아이를 임신하고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도 대학생 때 보고 들은 게 있는데, 아이를 좀 수월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 아동학 실습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학교 내에 있는 어린이집에 가서 한 학기 동안 보조교사로 실습을 하는 것이다. 실습을 하고 아동학에 학을 떼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는 실습이 힘들기보다는 즐거웠다. 그렇게 나는 근거 있는(?) 자신감에 찬 임신 기간을 보내고, 2018년에 첫 아이를 출산했다. 아이를 출산하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내 근거 있는 자신감은 와장창 무너졌다.



'어? 생각보다 너무 작아...', '잘못 만지면 부서질 것 같아.'

갓난아기는 내 상상 속의 갓난아기와 달랐다. 너무나도 작고, 연약하고, 매사 어른의 손길을 필요로 했다.

'아이가 운다. 어딘가 불편한가보다. 달래야 한다.'

얼굴까지 새빨게지며 빽빽 우는 아이 앞에서 학교에서 배운 발달이론은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맘카페를 찾았다. '우는 아기'로 검색하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아기가 밤새 우는데...왜 우는지 모르겠어요. 응급실에 가봐야 할까요?'



첫 아이를 낳고 나의 근거있는 자신감이 와장창 깨진 지 5년차, 그 사이 둘째도 태어나고 나는 직장에서 일도 하고 있다. 아동학 전공자로서 바람직한 육아에 대해서는 잘 안다. 시간이 날 때마다 'EBS부모'라던지 '금쪽같은 내새끼' 프로그램도 시청한다. 만 3년 간은 주양육자의 밀착육아가 중요하다는 것, 아이와 대화할 때는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기, 가공식품은 최대한 늦게 주는 것 등. 문제는 이를 현실에서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마치 다이어트와 같다. 조금 먹고 많이 움직이면 살 빠진다. 다 안다. 근데 그게 쉽나?



30년 전의 육아와 지금의 육아가 다른 점은 '육아의 정답지'가 널리 통용된다는 것이다. 30년 전에는 애엄마들한테 육아를 조언해주는 사람은 친정엄마, 시어머니 혹은 동네 엄마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육아를 조언해주는 전문가를 TV에서 스마트폰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30년 전과 달리 양질의 육아정보가 넘쳐나는 것이다.



통용되는 '육아의 정답지'에 내 현실 육아를 대입해보면 총체적 난국이다. 복직을 위해 두돌도 안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것, 조산기 입원으로 첫째와 장기간 떨어져 생활한 것, 짜파게티를 즐겨 먹는 첫재, 돌무렵부터 아이스크림에 환장하는 둘째.



일하는 엄마는 사실 '육아의 정답지'에서 자의건 타의건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일단, 세 돌이 안 되어 복직을 해야 한다.(현행 법정 육아휴직은 1년이다.) 세 돌이 안 된 아이에게 단체생활을 좋지 않은 것은 엄마라면 모두들 안다. 그러나 코 앞에 닥친 복직은 어쩐담. 아이 둘을 등원시켜야 하는데, 한 명은 안간다고 울고불고, 한 명은 옷입기 싫다고 울고불고 하면 어쩐담. 젤리라도 물려서 달래며 등원을 시켜야 한다.



나는 빠르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하는 엄마로 살면서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올바른 육아'만 할 수는 현실을. 그리고 깨달았다. '육아의 정답지'대로 하는 육아가 아니더라도 아이들과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아이들을 요즘 통용되는 육아의 정석대로 키우지 않아도 잘 자란다. 30년 전 우리네 엄마들이 우리를 키웠던 것처럼.



아이들을 키우면서 지나가는 시간들을 붙잡아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의 이 시간들이 소중해서 시간의 유한함이 야속하다. 아이들이 지금처럼 우리 부부에게 앵기는 시간이 10년이나 남았으려나. 내 엄마로서의 목표는 그저 이 시간은 즐겁게 누리는 것이다. '발달 상 이 시기에는 무엇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해야 한다.'를 내려 놓고 말이다. 어린 시절 종종 동네 뒷산 언덕배기에서 아빠 손을 잡고 우다다다 뛰어내려갔다. 가속도가 붙는 것이 신기해서 깔깔대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저 그렇게,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생각했을 때 엄마 아빠와 즐거웠던 기억을 꺼내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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