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다시 읽는 이유
개발자 1~2년 차 때 책을 정말 많이 읽었다. 빨리 성장하고 싶은 마음, 멘토가 없으니 책에서 멘토를 찾고 싶은 마음들이 뒤섞여 공부와 일을 하면서도 대략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어 내려갔다. 덕분에 좋은 책들을 많이 알았고 인사이트를 많이 넓혔고 책은 정말 나에게 또 다른 멘토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해가 지나가면서 책으로 얻은 지식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 사용하기보다 머릿 속에 욱여넣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년부터 '좋은 책' 읽기를 일부러 자제하고 '비개발' 분야의 책을 읽거나 실무에 가까운 기술 공부를 하는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그리고 올해가 들어서 문득 '이미 읽은 책들을 다시끔 읽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2년간 좋은 책들을 많이 읽으면서 '나중에 연차가 더 돼서 읽어봐야겠다' 혹은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 다시 꺼내봐도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또한 많은 책들을 읽다 보니 이미 내 머릿 속에 사라진 지식과 인사이트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읽었던 많은 책들 중에 올해 다시 읽을 책들을 내 나름 선정해보았고, 최근 트위터에 관련 글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시작하는 올해의 다시 읽기 첫번째 책은 <잘 그리기 금지>이다.
<잘 그리기 금지>는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많은 지망생들을 위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림 그리기'를 '개발'로 치환하면 좋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는 이야기에 구입했던 책인데, 이 책은 내용이 심각하지 않고 '일러스트레이터'가 쓴 책답게 그림도 많아서(?) 읽기에 부담이 없어 마음이 혼란할 때 한 번씩 꺼내서 후루룩 읽는 책이라 다시 읽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요즘 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나 하고 있다. 평일 기준 거의 매일 사이드 프로젝트를 위한 코딩을 하고 이 과정을 내 블로그에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개발자 1년 차 때부터 '꼭! 해야지!' 하는 마음만 가지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가 3년 차가 다 돼가는 지금에서야 시작하게 됐는데 아무래도 내 요즘 최대의 관심사가 사이드 프로젝트이다 보니 <잘 그리기 금지>에 나온 고민과 해결방법들을 사이드 프로젝트에 치환하여 보니 또 새롭게 보이게 된다.
예를 들어, 책의 이런 내용이 있다.
Q. 그림을 완성할 수 없어요.
A. 포인트는 작업세분화! (한 걸음씩 계단을 올라가듯 그려보세요!)
이걸 사이드 프로젝트에 치환 한다면?
Q. 사이드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없어요.
A. 포인트는 작업세분화! (한 걸음씩 계단을 올라가듯 개발해 보세요!)
라는 답이 나온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어디가 끝인지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고 또 귀차니즘이나 단순 의욕 실종으로 인해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이 말하는 것처럼 세분화하면 '완성'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완성하겠다!' 라는 목표보다는 1,2,3단계로 나누어 단계별로 완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고 1단계 안에서도 작은 기능 단위로 쪼개서 작업하여 '완성'에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이렇게 '그림 그리기'를 '사이드 프로젝트'로 치환하면 얻을 조언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수많은 책들 중에 가장 많이 다시 읽은 이유 중에 하나는 멘탈 관리에 탁월한 조언을 해준다. 이상하게 이런 따뜻한 말들은 여러 번 읽고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개발을 하다 보면 더 더군다나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개발자라면 슬럼프에 빠지기 마련이고 나보다 뛰어난 사람에게 질투심을 느끼기 마련이며 그 때문에 멘탈이 무너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 책에 있는 내용들을 읽으면 불안감이 잦아들고 안정감이 찾아온다. 이 간증은 책의 내용을 봐야 알 수 있음으로 내가 이 책에서 좋아하는 몇 가지 구절들을 가져와봤다.
개발을 하다보면 개발은 '재능'분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1~2년 차에는 이런 생각들로 많이 괴로워했다. 나는 몇 날며칠을 고생해도 작은 기능도 쉽게 구현하기 어려운데 어떤 사람은 취미로 개발을 해서 대단한 것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뭐든지 '재능'으로 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 그 재능을 다른 것으로 채우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다만 나는 '재능'이 없을 뿐. 재능이 별거가. 포기 안 하면 그게 재능이지.
개발을 재능으로 하고 있지 않아서 인가 나에게는 슬럼프 같은 순간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은 나에게 그때가 바로 내가 성장하는 순간이라고 말해준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슬럼프가 와도 성장한다는 걸 알아서 내심 그 슬럼프를 기다리게 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내가 학창 시절 참 좋아했고 지향했던 문구였다. 그래서 누군가 칭찬해 주면 '아니에요'가 일상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런 칭찬에 쑥스러운 듯 부정하는 것도 칭찬해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부터는 누군가 칭찬하면 받아들이되 자만하지 않으려 한다.
부족하고 못하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숨겼던 나날들이 있다. 나도 분명 알고 있다 그런 것들이 내 성장을 막는다는 것을. 이 책은 그 부분을 다시 상기시켜 준다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무력함이 가능성으로 바뀐다'라고.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