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끄적끄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뚜아니 Mar 31. 2021

(끄적끄적) 울지마 샤워기야.

샤워기와의 밀당.

  1초라도 허투루 보낼 수 없는 긴박한 아침 출근 시간. 후다닥 머리 말리고 선크림 바르고 옷입고 대충 허기를 채우고,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이제 신발을 신고 대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찰나, 적막한 집안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소리. '똑, 똑, 똑', 이 불편하지만 굉장히 리드미컬한 소리는 바로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방울 소리다. 분명히 샤워하고 꽉 잠갔는데도 불구하고 샤워기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가방을 내리고 신발을 벗으며 화장실로 뛰쳐 들어간다. '왜 울고 있는거니? 나 지금 너를 달래줄 시간이 없어, 한번만 봐줘' 하고 샤워기 핸들을 요래저래 돌려봐도 샤워기는 대꾸도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고만 있다.


 자연스레 내 입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 샤워할때 열창한 내 노래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내 민낯과 몸뚱아리가 별로였는지... 샤워기의 눈물은 그칠줄 모른다. 이렇게 시작된 샤워기와의 밀당에 내 마음은 초조해진다.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시간은 흐르고 있다. 다시 심기일전하고 왼쪽, 오른쪽으로 돌려보고 중간에 맞춰서 꾸욱 눌러본다. 너무 쎄게 눌렀는지 더 빠르게 흐른다. 말 안듣는 아기를 키우는 기분이 이런것일까? 최근 식당에서 말 안듣고 떼쓰고 울기만하는 아이에게 엄마가 한 말이 인상이 깊다. 엄마는 마지못해 '엄마 힘들어, 말 좀 들어'라고 아이에게 말을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비혼이고 자식이 없는 내가 듣기에도 엄마의 지친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 샤워기야 내 말도 좀 들어줘' 라고 혼잣말을 던진다. 


그래도 안되면 필살기를 시전한다. 샤워기를 툭툭 친다. 우는 아이 달래도 안되면 매가 약인 것처럼 말이다. 매가 약이긴 약인가 보다. 뚝뚝 흘리던 눈물을 거두고 찔끔찔끔하다가 멈췄다. 비폭력주의자로써 약간의 폭력을 일삼은것에 대한 죄책감에 미안하지만, 지각을 해서 부장님한테 아침부터 깨진다면 내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은 어디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더 나아가 하루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다가 불꺼진 집안을 밝히는 현관불빛을 받으며 무사히 귀가 했을때, 아침에 귓가에 울리던 그 소리 '똑,똑,똑'이 들린다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더 무서운건 하루종일 새나간 수도요금이다. 자취하는 나에게 지난달 보다 많이 나온 공과금은 적지 않은 스트레스이다. 


오늘 저녁에 샤워할때는 샤워기에게 감미로운 발라드를 불러줘야 하나 싶다. 샤워기가 울지 않게 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