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사진을 다시 보다가...
여행 블로그를 운영한 지 약 6년째. 이전의 여행에 대해 궁금해지거나 다시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블로그에 들어가면 다 나온다. 오늘은 작년 크리스마스에 다녀온 체코 여행기들을 다시 봤다. 몇 년을 SNS를 통해 사진과 영상으로 보며 ‘나도 언젠가 간다’ 다짐했던 공간을 분명 직접 다녀왔는데 다시 사진과 영상으로 보고 있는 기분이 조금 서글프다. 때가 이러해 더 슬픈 것이겠지.
올해 초부터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와 기나긴 장마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인 요즘이다. 안 그래도 매일 재난문자로 코로나 관련 주의 문자를 받았는데 이제는 산사태 조심 혹은 호우특보에 대한 재난문자까지 메세지보다 재난문자를 더 많이 받고 있다. 여행이 0순위 취미였던지라 실망이 크다. 실망할 대상도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누굴 원망하겠냐만은 덕분에 매일 여행 갈 궁리만 하던 여행 덕후가 집에서 뭘 할지 고민하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음식도 만들어먹고 좋아하는 카페도 찾아가고 게임도 청소도 하지만 그럼에도 다채롭지는 않은 일상. 평소에 표정이 없는 편이라는 말을 듣는 편인데 일상도 제 주인을 닮아가고 있다.
남들이 뭐라 그래도 ‘그래도 나는 갈 거야’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포르투갈행 항공권도 버티다가 결국 지난달 취소하면서 일상뿐만 아니라 마음조차 단조로워졌다. 회사 일에 지치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 등 슬픈 일이 일어나도 ‘그래도 포르투갈 가니까-’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런 기대조차 없으니 말이다. 리스본에서 노란 트램도 보고 1일1젤라또를 먹으며 포르투갈의 레트로한 골목들을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을 생각이었는데 기약이 없어졌다. 포르투갈행 항공권을 취소한 뒤부터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다. 아마 포기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것 같다.
최근 시간적인 여유가 많아지면서 부산이나 제주도라도 다녀오려 했다. 약 1년 동안 지도에 열심히 표시해둔 부산의 카페들을다녀오거나 한 달 살기 시절 애정 했던 공간을 다시 찾아가는 제주도 여행을 해보려 했는데 생각하자마자 장마가 시작됐다. 그런데 웬걸? 장마가 보통 장마가 아니다. 뉴스에는 침수된 지역과 운행 중단된 기차 현황을 하루 종일 보도했다. 이 시점에 여행 가는 것이야말로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과 딱 어울릴 것 같다. 어쩌면 민폐 끼치는 일이 될지도. 그냥 집에 있기로 하면서 여행과의 거리두기를 더욱더 철저하게 실천하게 됐다.
그렇게 여행이 0에 수렴하자 그동안 여행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그 어느 때보다 진하게 느끼고 있다. 마음이 어딘가를 여행 중이라면 아마 목마른 상태에서 걷는 사막일 것이다. 걸어야 하니 걷고 있지만 갈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