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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Aug 18. 2020

지극히 리틀 포레스트였던 군위

영화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 군위 여행기

군위는 사실 갈 생각이 없었다. 경상북도 영천이 최종 목적지였고 영천을 찍고 다시 올라가는 것이 이번 1박 2일의 전부였다. 하지만 집 밖을 나가는 순간 변수는 생기기 마련이라고 여느 여행이 그렇듯 이번 여정에도 군위라는 변수를 만났다. 

'화본역이 그렇게 예쁘다던데.'

생각 하나에서 시작된 군위 여행은 둘이 되고 셋이 되어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촬영지를 둘러보는 시간이 되었다. 

극 중 류준열의 전 여자 친구를 목격했던 그 슈퍼

군위는 여러 이유로 사랑받고 있는 지역이지만, 가장 큰 이유를 찾자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일 것이다. 김태리 류준열 주연의 힐링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사계절의 군위를 충분히 감성적으로 담았다. 그 결과 보기 드물게 네티즌 평 별 다섯 개가 무더기로 나온 영화가 되었고 나 또한 극장에서 본 이후로 다운로드하여 수십 번이고 휴대폰에 담아 어디서든 보고 싶을 때면 봤을 정도로 인생 영화 리스트에 리틀 포레스트를 올렸다. 그 인생 영화 촬영지에 직접 들어온 것이다. 

눈에 담는 모든 것이 믿기지 않는 풍경이었다. 영화와 너무 똑같아서. 리틀 포레스트 속 여름의 군위와 내가 지금 서 있는 군위의 여름의 색감이 동일했다. 긴 장마 끝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파란 하늘, 다양한 초록색으로 하늘 아래를 모두 물들여버린 산과 논밭, 시골길의 정석 같은 베이지색의 길까지 내가 영화에서 본 바로 그 색들이었다. 영화이니까 예쁘게 보이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적어도 풍경 기준으로는 틀린 말이다.

논밭을 가로지르는 길, 슈퍼마켓 등 군위에는 영화 속에 등장한 여러 공간이 있지만 정점은 단연 '혜원의 집'일 것이다. 극 중 혜원이 텃밭의 재료로 요리를 하고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고 엄마를 떠올렸던 공간이다. 영화의 스토리상 비중이 컸던 공간이어서 그런 것일까? 많은 여행객들로 유독 붐비는 곳이었다.


여행 Tip) 내비게이션에는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라고 검색하면 갈 수 있는 혜원의 집

비록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위로가 되는 법이야'라며 재하가 건네준 강아지는 없었지만 충분히 아늑한 인테리어 그대로였던 집. 온기가 있는 생명들이 다녀가 이렇게 아늑한 것일까? 금방이라도 혜원이 집 안에서 나올 것만 같은 현실감 넘치는 시골집이었다. 집 굴뚝에서 연기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영화 속 주방을 가득 채운 소품들과 흡사하게 열을 맞추고 있는 유리병들과 하얀 프릴 커튼, 곳곳에 보이는 싱그러운 식물들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했다. 눈에 거슬리는 어느 것도 보이지 않는 오로지 쉼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 지극히 영화의 분위기를 닮은 집이다. 이런 집에서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다면 과감하게 한 달의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본격 퇴사 권장 영화라는 어느 관람객의 평처럼 군위 속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들은 모두 힐링을 이끌어내는 공간 그 자체였다. 달리고 있다면 쉬게 하고 쉬고 있다면 불안해하지 말라는 주문들이 담긴 공간들이 군위라는 작은 도시를 채우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겨워진다. 정겹다고 느끼는 그 따뜻한 마음을 우리는 '힐링'이라 칭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 '힐링하러 여행 가고 싶은데 어디 갈까?'라고 묻는다면 앞으로는 군위라고 말해주어야겠다고 다짐하며 군위를 나왔다. 그리고 그 질문을 내가 하게 된다면 그때가 내가 군위를 다시 찾는 날이 될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이 그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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