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바꿔준 세 번의 여행들
아무리 언급해도 수십 번 매일 말하고 싶고 보고 싶은 여행들이 있다. 여행 당시에 SNS에 올려둔 글과 사진을 다시 보고 여행을 다녀와서 쓴 여행기나 정보 콘텐츠들을 다시 보고 심지어 재보정까지 감행하게 만드는 여운의 꼬리가 긴 여행들. 그 여행들이 유독 재미있던 것은 아니다. 모든 여행은 재미있고 색다르다. 단지 플러스알파가 있을 뿐이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플러스알파의 여행들을 소개한다.
일본 오사카
십 년 뒤에도 그보다 배 이상의 시간이 지나도 나에게 특이점이었던 2014년 가을에 떠난 일본 오사카 여행은 계속 언급될 것 같다. 처음으로 혼자 떠난 해외여행이 아니더라도 '여행덕후'의 공식적인 첫 여행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여행이 두려워서 가지 않았더라도 이후에 몇 번이고 기회가 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 어떤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면 싫어하는 것으로 포장하기 쉬워져 두 번 세 번 기회가 와도 보내기 쉽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혼자 놀이기구를 탔던 순간, 라멘과 다코야끼를 먹으며 일본 음식의 맛을 경험한 순간, 우주 속 무수히 떠 있는 별 같았던 오사카의 야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가 생애 첫 심부름에 성공하고 엄마에게 칭찬을 받듯 처음 해외에서 혼자 주문을 하고 입장권을 사고 놀이기구를 타는 순간순간이 감격스럽고 뿌듯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 경험한 '처음'이 쌓이고 쌓여 성취감이 되어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나를 만든 것 같다. 과거에 사소한 성공에도 칭찬을 받고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이 자라서도 쉽게 도전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고 한다. 그때 스스로에게 '오구 잘했네 잘했어'했던 순간들이 또 항공권을 끊게 하고 혼자 여행을 떠나게 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때 긴 고민 없이 항공권부터 산 것은 신의 한 수이다.
대한민국 제주도
해외여행을 또래 치고 많이 다녀온 편이라고 생각한다. 비행기를 타고 열차를 타면서 놀라운 풍경들을 숱하게 봤지만 그럼에도 가장 좋았던 여행지를 묻는다면 언제나 빼놓지 않는 '제주도'. 제주도가 가지고 있는 대자연이나 키는 작아도 도심 속 빌딩보다 더 오래 시선을 끄는 알록달록 지붕들도 한몫 하지만 그것만으로 제주도를 꺼내 든 것은 아니다. 2017년 6월부터 7월까지 31일간 다녀온 제주 한 달 살기 자체가 이유다.
힘든 것을 부여잡고 버티다가 울면서 놓았던 회사를 뒤로 하고 과감하게 번 돈을 들고 내려간 제주도. 170만 원 안에서 먹고 싶은 것은 다 먹고 보고 싶은 것은 고민 없이 찾아가고 한라산 백록담을 향해 등산하는 도전까지 한 한 달이었다.
브런치나 디저트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이 여행부터다. 종달리의 어느 카페에서 먹은 까눌레 덕분에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는 까눌레가 되었다. 끼니 대신 브런치를 먹은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육지에서는 단 한 번도 먹지 않았던 브런치를 제주도에서 반해 다시 육지에 올라와서도 브런치를 먹기 시작했다. 제주도가 음식 취향에 변화를 준 것이다.
인생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강렬한 추억인 '한라산 등산'도 이 때다. 죽을 것 같아서 울먹거리면서 도착한 한라산 백록담. 백록담 정상을 밟은 그때의 성취감은 한라산의 높이만큼 거대했는지 지금까지도 쉬이 꺼지지 않아 의지의 원천이 되어주고 있다. 하기 싫거나 힘든 것들을 이겨내는 데에 어찌나 큰 도움을 주는지. 덕분에 디자인도 배우고 이렇게 가끔 글의 소재도 되어주고 있다. 그 뒤에 지리산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등산 소모임에 들어간 것도 다 한라산 덕분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대화를 듣거나 나누기도 했다. 버스를 탈 때는 분명 각자 다른 정류장에서 탔는데 서로 다 아는 듯이 인사를 나누는 할머님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오늘이 첫 운전이라는 버스 기사님 등 귀에 들어오는 모든 내용이 희귀한 소재일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덕분에 제주도에 사는 분들의 생각이나 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새로 알게 되었다. 직접 보고 듣는 것의 중요성이 그 어떤 것보다 크다는 것을 느낀 순간들이다.
이런 작고 큰 순간들이 모여 31일이 되었고 당연히 육지에 올라왔을 때는 가치관이나 취향이 더해지거나 달라졌다. 여행/문화생활/학습 등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는 무언가에는 더 과감하게 투자했으며 카페 투어를 다니거나 SNS에서 맛있을 것 같은 음식이 보이면 지도 앱에 저장해두는 습관이 생겼다. 페이스북에 매일 썼던 한 달 살기 일기를 묶어 책으로 만들거나 카드 뉴스를 제작하는 등 내가 가진 것들을 기초로 제2의 무언가로 만들어내는 도전들을 하기도 했다.
제주도는 매년 가고 있고 사계절을 모두 본 만큼 익숙함으로 치면 그리 특별하지는 않은 곳이다. 하지만 섬 속에서의 한 달 동안 내가 경험하고 깨달은 바는 처음 가본 어떤 여행지보다도 터닝포인트이기에 누군가 가장 좋았던 여행지를 물을 때 '제주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체코&헝가리
2019년 최대 하이라이트였던 '체코&헝가리 여행'. 무려 크리스마스 주간에 다녀온 여행이다. 유럽의 크리스마스를 경험하는 것이 버킷리스트여서 1년 전부터 항공권을 끊어 다녀온 유럽여행이다. 이렇게 어느 구석 하나 평범치 않은 여행을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 다녀왔으니 운이 그 누구보다 좋았다. 역시 여행도 타이밍이다.
사실 떠나기 몇 달 전부터 살짝 걱정됐다. 소매치기로 유명한 곳이고 영어 실력이 아는 문장이 열 개도 안 될 정도로 형편없기에 혼자 유럽을 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게다가 체코는 소매치기들의 성지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막상 한국으로 돌아오는 기내에서 되돌아보니 했던 걱정이 민망할 만큼 그저 완벽하고 찬란한 여행이었다. 내적 눈물을 흘리게 했던 체코의 크리스마스 마켓 풍경과 헝가리 국회의사당의 야경은 시작에 불과했다. 대성당의 크리스마스 미사를 직접 보거나 한인 민박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그들의 초대로 경험해 본 해외에서의 크리스마스 파티 등의 변수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 mbti에 J가 있을 정도로 계획 파인 나에게 변수는 언제나 싫은 존재였는데 여행에서의 변수는 더 감동적인 여행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무엇보다 버킷리스트라고 해서 이루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 여행이다. 마치 인생의 끄트머리에나 이룰 것 같은 어감의 '버킷리스트'. 적을 때는 원대한 꿈같지만 일단 지르면 당장 1~2년 뒤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다. 덕분에 포르투갈 항공권도 결제할 수 있었다. 비록 코로나 때문에 취소했지만 그렇게 아낀 돈으로 더 큰 꿈인 미국 뉴욕 여행에 도전장을 냈다.
내년에 뉴욕 땅을 밟게 된다면 아마 체코와 헝가리를 가본 것만큼이나 감동적일 것이다. 꼭 코로나가 걷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