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중에 마음에 드는 멜로디가 나오면 곧장 휴대폰 속 음악 검색 기능을 활용해 곡의 정체를 알아본다. 밖의 소음 때문에 검색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어쩌다가 곡의 정체가 나오면 항공권을 구입할 때만큼 큰 설렘이 온다. 마치 엄청난 것을 갖게 된 것 같다. 이 습관은 여행 중에도 마찬가지다. 길을 걷다가 어느 가게 안에 들어갔다가 카페에 앉아있다가 처음 듣지만 일명 '덕통사고'를 당한다. 그렇게 만난 노래들은 그 여행 내내 무한반복을 부르거나 여행 후에 그 여행의 대표곡이 된다.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랑이야기만큼이나 운명적이고 낭만적인 주인공들을 소개한다.
들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노래의 리믹스 버전.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 중 어느 스포츠 의류 상점에 들어갔는데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여행길에 함께한 동생도 나도 동시에 "뭐야 이 노래?"하고 휴대폰을 높이 들었다. 곡의 정체를 알려면 최대한 스피커에 가까이 휴대폰을 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난 Don't Wanna Know의 최애 버전. 유명한 원곡과는 또 다른 방방 뛰고 싶은 멜로디가 딱 취향이다. 이 노래는 해외여행 중 건진 첫 노래이기도 해 유독 소중하다.
NCT127-Summer127
제주도 한 달 여행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노래. 한 달 동안 여러 이동 시간마다 들은 노래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몽돌해변을 가는 길이다. 버스에서 내려 바라본 하늘은 참 맑고 푸르러 꼭 제주도 바다 빛 같았다. 몽돌해변은 마을 안으로 십 분쯤 걸어들어가야 나온다. 횡단보도를 건너 마을 입구로 들어갔다. 제주도의 마을은 어느 마을이나 지붕이 낮고 알록달록해 뚜벅이 여행자에게 볼거리가 된다. 그 풍경을 보며 들은 노래가 "Summer127'이다. 여름에 듣기 좋은 청량하고 신나는 멜로디가 꼭 튜브를 몸에 끼우고 바닷물을 향해 점프하는 기분이다. 서로에게 물을 튀기면서 들어야 할 것 같달까. 혼자 걷는 길이었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던 것은 이 노래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 뒤로 제주도를 방문할 때마다 한 번 이상은 이 노래를 재생한다. 그 순간부터 제주도가 더 반가워진다.
JAY-Z-Empire State Of Mind(Feat. Alicia Keys)
이 노래는 아직 여행길에 오르지 않았음에도 벌써 여행 BGM이 된 곡이다. 바로 '미국 뉴욕'이다. 뉴욕은 내년에 가려고 했던 여행지다. 구독한 유튜버들의 뉴욕 여행 브이로그들을 보면서 반해 꼭 직접 미국을 보리라 다짐하게 되었다. 브이로그에서 등장한 이 노래에 빠져 벌써 뉴욕 한 달 여행치 재생을 했다. 멜로디는 익숙하지만 단 한 번도 뉴욕의 노래라고는 생각한 적없는 노래인데 뉴욕에 빠진 이후로 미래의 뉴욕 여행 BGM이 되었다.
그렇게 올해 12월에 항공권을 예약하리라 계획했는데 코로나로 항공사들의 사정이 불안정해지면서 좀 더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올해 추석에 가려고 작년에 끊어둔 항공권을 다섯 달 만에 환불받는 당황스러운 사태를 경험해서인지 또 한 번의 베팅이 망설여진다. 그럼에도 하늘길이 열려 누구든 격리 없이 갈 수 있게 된다면 제일 먼저 가고 싶은 목적지가 뉴욕이다. 꼭 이 노래를 들으며 힙한 뉴욕의 곳곳을 걸어보고 싶다(물론 일부러 재상 하지 않아도 뉴욕 어딘가에서는 꼭 이 노래를 듣게 된다고 한다).
diana krall-lets fall in love
앨범 자켓사진 구하기도 어렵다;;
작년 12월 유럽 크리스마스를 직접 보고 싶다는 인생 버킷리스트를 이루러 다녀온 체코에서 만난 다이애나크럴의 노래다. 다이애나크럴은 캐나다 가수로 이 노래를 들은 당시에는 몰랐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재즈 보컬을 수상했을 정도로 유명한 분이었다. 이 노래는 체코 프라하 크리스마스 마켓 중 가장 큰 마켓이 열리는 구시가지 광장에서 흘러나왔다. 대낮에도 충분히 낭만적이었던 크리스마스 마켓 풍경을 더 감동적으로 만든 주인공이다. 빠르지 않아 한 소절을 다 들으려면 걷던 길을 멈춰야 하는 잔잔한 재즈인데 본래 재즈는 듣지 않던 나에게 '첫 무한반복 재즈'가 되어주었다.
프라하를 뚜벅이로 여행하다 보면 구시가지 광장을 자주 지나가게 되는데 나 역시 매일 구시가지 광장을 통과했다 (크리스마스 마켓 기간이라 일부러 광장을 거치는 경로를 선택한 것도 있다). 눈 쌓인 오두막집 모양의 수많은 가게들이 광장을 빼곡하게 채우고 지금까지 본 트리 중 가장 오래 눈에 담은 거대한 트리가 있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여러 노래를 재생했다. 듣다 보면 아는 노래가 나오기도 모르는 노래가 나오기도 하는데 지나가면서 그 노래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프라하 여행의 특별한 재미였다. 특히 크리스마스 주간이었다 보니 누가 들어도 연말스럽거나 캐럴인 노래들이 매일 들려왔다. 유럽 사람들이 대하는 크리스마스는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그 농도가 진해 가능한 소리들이었다. 12월의 프라하 여행은 다른 여행지보다 유독 소리가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여행지에서 데려온 노래들은 웬만한 기념품보다도 힘이 강력하다. 재생만 하면 순식간에 그때의 기억을 소환한다. 노래가 흘러나왔던 공간과 소리의 음량 그때 내가 무엇을 했는지까지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 힘을 경험한 순간부터는 여행을 갈 때마다 들려오는 노래에 귀 기울이고 있다. 십 년 뒤에도 지금처럼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노래가 될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