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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Nov 19. 2020

기내식 때문에 해외여행이 가고 싶어

기내식부터 여행인 거야

여행 브이로그들로 아쉬움을 채우기 시작한 지 반년쯤 됐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해외여행에 목말라하는 내 모습을 보면 '여행자로서 갈 때까지 갔구나'싶다. 그럼에도 목적지에 내리지 않고 다시 회귀하는 항공사의 상품이 불티나게 솔드 아웃되는 현상을 보면 나만 그런 것은 또 아닌가 보다. 인간의 적응력은 무서울 정도라지만 여행은 예외인 모양이다. 나 또한 원점회귀 항공권에 큰 관심이 있었다. 이륙할 때의 설렘 같은 낭만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다. 기내식이 먹고 싶었다. 유럽까지 날아가 본 이후로 장시간 비행을 하고 싶어 졌는데 그 이유는 기내식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장시간 비행을 피곤해한다. 특히 이코노미를 이용하면 더욱더 그렇다. 이코노미로 유럽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10시간 넘는 비행시간을 표현할 때 이렇게 말한다. '오랜 시간 앉아있다 보니 속도 더부룩하고 자꾸 나오는 기내식은 당연히 가게에서 먹는 음식들보다 비주얼이 좋지 않아. 잘 때도 이코노미는 누워서 잘 수 없으니 잠자리를 가린다면 뒤척이기 딱 좋지.' 그럼 나는 '기내식 맛있던데....'라는 말을 꿀꺽 삼킨다. 



아무리 깊은 잠에 취해도 기내식은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기내에 불이 들어오고 기내식을 받기 위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원하는 메뉴를 선택한다. 저는 치킨이요! 저는 맥주 주세요!

네모난 플레이트에 옹기종기 담겨있는 음식들은 보기만 해도 흡족하다. 특히 나는 단품보다 한상차림을 좋아한다. 김밥만 먹는 것보다는 김밥에 쫄면을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하고 단품을 취급하는 식당보다 뷔페를 더 좋아한다. 대식가이기에 가능한 취향이랄까. 빵 케이크 누들 혹은 라이스 그리고 아침식사로 자주 등장하는 오믈렛, 대체로 빠지지 않고 나오는 과일까지 좌석 테이블이 작은 것 같아도 생각보다 많은 음식이 놓일 수 있음을 기내식 타임마다 체감한다. 자 이제 모든 음식들의 뚜껑과 비닐을 해체할 시간! 어느 것 하나 쏟지 않겠다는 정성 가득한 손길로 뚜껑을 열고 비닐을 벗긴다. 뚜껑은 그릇 아래에 냄비받침처럼 깔고 비닐은 한쪽에 두거나 잠시 좌석 앞 주머니에 두는 것이 깔끔하다. 모든 음식을 열고 난 뒤에 인증샷은 필수! 나중에 모아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에 꼭 먹기 전에 찍어둔다. 



기내식을 먹으면서 겪는 재미는 어떤 항공사의 기내식이 맛있는지 나만의 별점을 매기는 것이다. 가격보다 마일리지 적립에 기준을 두는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좋겠지만, 숙소도 호스텔로 잡는 뚜벅이 여행자는 언제나 최저가 기준으로 항공권을 예약한다. 환승 2회? 해외 갈 수 있다는 것이 어디야. 일단 끊어야지. 덕분에 여러 항공사의 기내식을 맛볼 수 있었고 이제 순위를 세울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물론 입맛이 둔하기 때문에 객관성은 마이너스.  

 또 하나의 이유는 특이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비빔밥 같은 전형적인 한식 메뉴가 아니라면 모두 낯선 메뉴다. 특히 외항사를 이용하면 그렇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과일부터, 해외 마트에서나 만날 수 있는 요거트, 사 먹는 일이 희귀한 오믈렛과 두꺼운 소시지까지 모두 기내식에서 처음 만난다. 그렇게 초면인 음식들을 하나하나 먹어보며 음식에 대한 경험을 늘려간다. 정통의 맛은 아니겠지만 '이건 이런 맛이구나!'를 알아두는 것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나만의 레시피로 2차 가공을 하기도 한다. 2차 가공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LOT항공의 기내식! 왕복 비행 모두 기내식에 동그란 모닝빵이 나온다. 일반적으로는 잼과 버터를 발라먹지만 번뜩 아이디어가 떠오른 이상 평범하게 먹지 않는다. 모닝빵을 플라스틱 나이프로 가르고 빵 안에 샐러드인지 그냥 모둠 야채인지 모를 채소들을 넣었다. 슬라이스 햄도 나왔길래 함께 빵 사이로 슉! 여기에 버터나 잼을 첨가하면 소스까지 넣은 그럴싸한 샌드위치가 된다. 체코 프라하행 기내식에서 이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는데 너무 맛있어서 기억해두었다가 한국행 기내식 때 또 한 번 같은 샌드위치를 만들어먹었다. 한국행 기내식에는 무려 미트볼이 나와 햄버거가 됐다. 맛이 진심으로 써브웨이 부럽지 않았다. 주 메뉴보다 더 맛있는 디저트가 탄생한 순간이다. 



물론 매 순간 기내식 그릇들을 싹싹 비우니 배가 꺼질 줄을 모르고 기내에서는 화장실도 잘 안 가는 편이라 속이 더부룩한 감도 있지만 그럼 어떠랴.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는 두고두고 그리워할 추억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코로나로 인해 기약 없이 해외여행이 연기되면 그리움의 깊이는 점점 더 우물을 팔 뿐이다. 나에게 장시간 비행은 더 바라면 바랐지 결코 불평할 시간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비행기가 이동 시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지만 나에게는 여행이 시작됐음을 혹은 여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언제나 이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여행 중이었던 모든 1분 1초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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