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벅이는 윤슬 Dec 02. 2020

언제나 상상은 경험을 이기지 못한다

해외만큼 새로웠던 목포에서의 1박 2일

'지금까지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 목포를 생각한 걸까?' 목포 해상 케이블카를 타고 목포의 마을과 앞바다 위를 건너며 든 생각이다.



목포는 생애 처음이었다. 지도만 봐도 사는 곳에서 한참 시선을 내려야 도착하는 곳이었고 평소 여행 시 교통비에 크게 투자하지 않는 가치관 탓에 KTX는 잘 이용하지 않아 가고 싶어도 기회가 닿지 않는 곳이었다. 목포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지는 3~4년 정도 된 것 같다. 해외는 생각한지 1~2년 만에 가면서 목포는 이리 오래 걸렸으니 심리적으로는 해외 못지않은 곳이 나의 목포다.

목포를 가게 된 것은 갑작스러우면서도 운이 좋았다. 여행사 팸투어에 참석할 기회를 얻게 되면서 올해 갈 계획이 없던 목포를 여행하게 됐다.

관광버스를 타고 패키지처럼 여행할 수 있어 한 자릿 수 기온에도 따뜻하게 몸 녹일 시간이 있었고 평소 혼자 여행할 때면 절대 하지 않는 의상 체험과 호텔 숙박을 했다. 언제나 느끼지만 출장의 장점은 그 외의 여행에서는 행하지 않는 것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이드님을 비롯한 모든 관계자분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신 것도 큰 감사함이었다. 덕분에 목포가 어떤 곳인지를 충분히 오감으로 담을 수 있었다.

랫동안 가고 싶어 했던 만큼 목포에 대한 상상이 있었다.

'생각보다 으리으리할 것 같아. 큰 선박들도 많다고 하니 부산의 어느 바닷가 혹은 포항제철소 같은 느낌이 있겠지.'

'SNS를 보니 근대문화거리가 유행이네. SNS 핫플레이스들이 그렇듯 여기도 사진 속 그 공간만 그렇겠지?'

'전라도니까 음식이 맛있는 곳이겠구나!'

'00빵집이 유명하네.'

스마트폰 혹은 노트북 모니터에 보이는 사진과 글만으로 그린 목포는 여느 국내 여행지에서 느끼는 딱 그 정도의 재미가 있어 보일 뿐,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가고 싶은 것도 여러 국내 지역을 여행했는데 좀처럼 연이 닿지 않아 빨리 색칠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도시에 대한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크다고 느꼈던 목포역에 도착한 순간부터 이미 내가 몇 년 동안 그려왔던 목포에 대한 정의는 금이 가고 있었다. 나만 몰랐을 뿐.



육지에서 제주도를 찾는다면 목포구나!

방 문 뒤에 붙여둔 한국 지도를 반 이상 색칠해가며 느낀 점은 제주도가 참 독보적인 풍경을 갖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었다. 언제나 마음에 안정감을 주는 낮은 지붕들과 바다가 어우러진 최고의 힐링섬이라는 점 때문이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지붕과 건물의 높이에 주목하는 편이고 이에 따라 그 지역에 대한 전지적 여행 덕후 시점의 별점을 매기는데 제주도에 견주는 곳조차도 없었다. 제주도를 자주 찾는 이유이면서도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더 많이 두고 싶은데 2순위조차 없어 아쉬운 점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찾았다.

건물 일대에서 초고층건물에 속했던 금화멘션

이번에 투숙한 호텔과 아주 일부의 건물들 바닷가 근처에 위치한 선박을 제외하면 모든 것의 키가 아담했다. 특히 목포 근대역사박물관 일대는 지대의 높이가 높아지면 높아졌지 모든 건물의 꼭대기를 고개를 꺾지 크게 않고도 볼 수 있었다. 가장 높은 주택이 5층 정도의 멘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굳이 꼭대기를 보지도 않는 23층 이상의 아파트들과 '내가 더 커!'를 자랑하는 듯 하늘을 뚫을 것 같은 빌딩 숲 속에 살고 있어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여기에 화룡점정은 알록달록 지붕. 넓은 규모의 알록달록 지붕을 보려면 제주도에 가야 했는데 이제 목포를 와도 되겠구나 싶었다. 지붕 맛집 목포를 제대로 본 곳은 해상 케이블카 안이었는데 함께 탄 사람들이 모두 일심동체로 '우와!'를 외칠만한 가히 엄청난 풍경이었다.

알록달록 제주 더럭분교를 생각나게 하는 학교와 그만큼이나 다채로운 색감으로 물들여있는 지붕은 분명 차갑고 톤 다운된 색감만이 존재하는 겨울임에도 가을 산 혹은 봄의 꽃밭 같았다.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색감은 케이블카가 바다 위를 지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내가 그린 목포는 다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 시간이었다. 이래서 여행은 모니터로 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 전체가 드라마 촬영지인 타임루프 도시

뉴트로가 유행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레트로 콘셉트를 살린 가게들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옛 간판을 연상케 하는 글씨체나 할머니 입맛의 취향을 단번에 사로잡는 메뉴들, 낡은 공간을 리모델링하지 않고 유지하는 공간들이 이제는 특이하게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요즘이다.  

하지만 목포의 뉴트로는 예외다. 의도한 레트로보다 의도치 않은 레트로가 더 많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픈 혹은 고단했던 역사가 이유 중 하나지만 그 시간을 거의 그대로 보존한 것이 놀라움 그 자체였다. 목포의 거리를 걸을 때마다 '어떻게 이 모습을 긴 시간 동안 유지했지?' 궁금증이 절로 나는 풍경들의 연속이었다. '멘션' '상회' '양장점' 등의 글씨가 쓰여있는 칠이 벗겨진 간판은 기본이고 플라스틱 바가지에 무심한 듯 심은 식물들 하며 불편한 듯 정겨운 울퉁불퉁 길까지 최신의 것을 찾는게 더 어려운 일이었다. 시간이 담긴 작고 큰 물건들이 만드는 목포의 풍경은 규모가 어마어마한 드라마 촬영장을 방불케한다. 물론 어느 곳에 있는 촬영장 테마파크보다 더 생생히 마음에 와 닿는 그런 곳이었다. 자연스러움보다도 더 자연에 가까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으니까.

SNS에 담긴 여러 목포 사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보다 더 솔직하고 어쩌면 더 중요한 풍경들이 목포에 있다.


시장이 작다고 해서 먹거리가 적어지는 것은 아니구나

어딜 가나 그 지역의 시장을 가본다. 현지인들의 생활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그 지역의 특산물은 무엇인지 다른 지역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배워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목포 여행에서도 다행스럽게도 동부시장이 일정에 들어있어 다녀올 수 있었다.

목포 동부시장은 전국 곳곳에 있는 여러 시장들과 비교했을 때 규모가 큰 시장은 아니다. 짧은 거리 세네 군데를 걸으면 시장을 모두 봤다고 할 수 있을 크기다. 그 안에 오밀조밀 시장 먹거리와 의류 수산물 청과물 등 시장이라면 어느 곳이나 갖추고 있을 것들이 모여있다.

어느 시장이나 그렇듯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먹거리'. 동부시장의 중심으로 보이는 먹자골목은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인만큼 생선살 100% 어묵과 크게 한 접시를 먹어도 단돈 만원인 모둠회, 게살 크로켓 등을 판매하고 있음과 동시에 보기만 해도 속이 넉넉해지는 것 같은 크기의 김밥이나 빨간 맛 떡볶이, 꽈배기, 팥 도넛 등 기본 시장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시장 규모가 작다고 해서 먹거리가 적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현금을 두둑이 준비해야 할 뿐.

음식들 앞에 서 있으면 여러 소리를 자동으로 듣게 된다. 얼마냐고 가격을 묻는 소리부터 여기는 뭐가 더 맛있다는 추천의 소리, 떡볶이를 뒤섞는 주걱이 내는 소리, 길 좀 비커달라 전라도 특유의 퉁명스럽지만 화난 것은 아닌 반전미 넘치는 소리, 핫바 반죽을 동그랗게 만드는 소리까지 많으면 열개도 넘는 소리가 뒤섞인다. 사람 사는 세상 같은 그런 소리다. 시끌벅적하지만 부정적이지 않은 소리. 시장이기에 들을 수 있는 백색소음이다.


스페인의 일몰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니

여행을 다니며 각국 각 지역의 여러 일몰을 봐왔다. 그중에서 색감을 기준으로 최고를 꼽자면 스페인 바르셀로나 성에서 본 일몰이었는데 해가 만들어내는 핑크빛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색, 바다의 푸른빛이 만들어내는 파스텔톤의 일몰이 가히 장관이었다. 몇 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순간이다. 놀라운 풍경은 언제나 흔치 않다. Ctrl+C Ctrl+V를 쉽게 누르지 않는다. 그래서 한동안 엇비슷한 풍경도 보지 못했는데 99.9999& 풍경을 목포에서 발견했다.

목포 해상 케이블카를 일몰 시간쯤에 탔는데 다의 푸른색과 태양이 선물한 연핑크 구름은 있지만 비슷한 그야말로 '하늘색'은 보자마자 스페인의 그 기억을 꺼내 주었다. 이 풍경을 다시 보다니 말도 안 돼. 케이블카 안에서 말이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케이블카가 최대한 느리게 가기를 도착지까지 아직 한참 멀었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다시 올라가는 KTX 안에서 짧은 일기를 쓰며 생각했다. '만약 올해 목포를 안 갔다면 목포에 대해 계속 이전처럼 생각했을 거 아니야. 끔찍하리만치 무지할뻔했네.'

여행은 반드시 내 발로 해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깨닫게 해 준 목포를 떠난 것이 아쉽다. 평소 제주도를 대했던 것처럼 마음이 낮은 지붕을 사람 냄새를 아름다운 풍경을 원할 때 목포를 꼭 다시 찾아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내식 때문에 해외여행이 가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