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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Sep 21. 2020

제주도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붕'이었다

알록달록 지붕이 눈에 들어오니 비로소 행복해졌다


올해 초부터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결항이 되고 스케줄이 생기더니 코로나라는 초대형 변수까지 생겨 처음으로 한 번도 제주도를 가지 않은 해가 등장하나 했다. 그러던 와중에 출장으로 제주도를 다녀오는 기회가 갑작스레 생겨 마스크를 신체 부위로 여기며 다녀왔다.

아무리 출장이어도 현재까지 가본 어떤 국내외 도시보다 감동적인 제주도다. 누군가 '가장 좋았던 여행지가 어디였어요?'라고 물으면 항상 정답이었던 바로 그곳에 가는데 설레지 않을 수가 없다.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선 오전 5시부터 이미 기분이 두둥실 헬륨 풍선처럼 위로 떠올랐다.


그 가볍고 가볍던 설렘은 출장 2일 차부터 의문으로 변했다. 이전까지의 제주도 여행에서는 풍경 하나하나를 귀하게 여겼다. 머릿속에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 집중해서 보고 카메라에 자주 담았다. 매일 볼 수 없는 제주도이기에 최대한 오감으로 박제하려 노력했는데 이번 출장에서는 차 안에서 창 밖을 본다거나 풍경 하나라도 더 보려는 노력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하고싶지 않았다. 이동하는 때에는 잠을 잤고 차 밖에서는 업무에 충실했다. 이전과 다르게 제주도를 대하는 태도에 스스로 의구심이 들었고 생각한 결과, 도심 위주의 목적지와 해안도로로 달리지 않는 차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내가 생각한 제주도가 아니야 이건. 집 근처나 다를 바 없는 도시 풍경 위주의 제주도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의 모습이 아니구나.


그렇게 2박 3일간 출장을 마치고 개인적으로 하루라도 제주도를 여행하고 싶어 혼자 제주도에서 하루를 더 머물렀다. 공항에서 사람들과 안녕하고 이전의 제주도 여행과 같이 일주 버스에 올라탔다. 타야 할 버스가 정차하는 정류장을 찾고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시간을 조회하고 창 밖을 봤다. 바닷가를 따라 달리는 버스는 작은 마을들을 여러 개 지나쳤다. 그 풍경은 '예쁘다'는 어감과 참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1시간 40여분을 달려 도착한 한동리. 캐리어를 돌돌-끌며 한동리 마을 안으로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리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 내가 제주도를 사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구나



비가 가볍게 내리기는 했지만 하루 종일 내리는 비는 반드시 흔적을 남겨야 했는지 웅덩이가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지붕들이 점점 많아졌다. 핑크색, 하늘색, 주황색 마치 가게 간판들처럼 너도나도 존재감을 내세우는 집들은 비록 키는 작지만 매력만큼은 어느 건물보다 강렬했다. 그 색감은 결코 인위적이거나 주변의 풍경을 해치지 않았다. 자연스럽다는 말이 이 지붕들을 위한 표현 같았으니 말이다.

그 지붕들을 보니 비로소 완전한 행복을 얻은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끌고 있는 캐리어는 흠뻑 비를 맞고 또 맞았지만 그럼에도 좋았던 숙소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제주도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가 그 지붕이라는 것을 직감했던 순간이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면서도 빨리 마을을 구경하고 싶었다. 해가 빨리 지는 것이 아쉬웠던 저녁이었다.


다음날 첫 일정은 당연 마을 구경이었다. 평대리와 한동리의 마을 구석구석을 걸으며 다양한 색감의 지붕을 구경했다. 외관은 모두 비슷비슷한 회색빛 벽돌 혹은 돌집인데 지붕 색만 다른 것이 재미있었다. 여러 색의 지붕들이 한 풍경에 담기는데 그 조화로움이 동화 속에 들어온 느낌을 주었다. 덕분에 카메라 셔터를 실컷 누를 수 있었다. 디지털카메라로 찍고 필름 카메라로 동일한 풍경을 또 찰칵. 그렇게 같은 풍경을 세 번씩 보며 마을을 걸었다.

이 날 결국 마을을 구경하는 데에 가장 많은 시간을 썼다. 남들이 많이 가는 카페나 맛집, 여행지는 많이 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후회되거나 아쉽지 않았다. 제주도 하늘 위를 가르는 기내 안에서 '정말 시간 잘 썼다'라고 생각한 것을 보면 이 마음은 합리화가 아니다.

이번 제주도 출장으로 확실해졌다. 내가 제주도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붕'에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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