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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Sep 09. 2020

여행은 별 것도 아닌 것에 의미부여를 하게 한다

생수병 하나 바게트 빵 하나도 무조건 찍고 본다

계속되는 집콕 생활로 집에서 여행하는 방법에 도가 텄다. 앞으로 가고 싶은 여행지에 대해 알아보면서 설렘을 가져보거나, 구글 지도에서 앞으로 가고 싶은 여행지를 찾아 핀을 콕콕 꽂아보는 등 미래의 여행을 꿈꾸는 시간을 보내면 된다. 미래의 여행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진다면 과정의 여행을 재구성하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2015년 크로아티아를 여행할 때 찍은 사진 원본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고 재보정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크로아티아 여행 폴더를 여니 가판대에 놓인 빵, 길에서 유유자적 쉬고 있는 대형견, 지나가면서 찍은 뭔지 모를 건물들. 목적지였던 여행지들을 제외하고서도 수백 장이었다.

가만히 오른쪽 화살표 버튼을 누르면서 보고 있으니 문득 신기했다. 평소에 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많은 것들을 눈에 담으려 했던가? 크로아티아 여행 같은 해외여행지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국내여행 폴더 속에서 이와 같은 사진들을 차고 넘쳤다. 

터키 버스를 타려면 꼭 필요한 토큰
크로아티아의 어느 빵집
크로아티아 여행 때 사고 또 샀던 생수
체코에서 자주 구입했던 생수

일상 속에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들을 여행이라는 주제가 얹어지면 가만히 눈에 담는 것으로도 부족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덕분에 여행이 시작되면 더 넓고 세심한 시각을 갖게 된다. 마트에서 물을 살 때에 페트병 겉을 두르고 있는 포장지를 더 유심히 보기도 하고 현지인들은 어떤 제품을 많이 담는지 힐끗힐끗 눈을 양 옆으로 굴린다. 길을 걸을 때도 눈은 앞만 보지 않는다. 옆의 풍경이 되어주는 가게를 보며 무엇을 파는지, 인테리어는 어떤지, 어떤 식으로 제품을 나열해두었는지 보고 또 본다. 그러다가 '엇!' 인상적이면 가게 안으로 들어가 여행 코스에 변화를 준다. 그렇게 여행 전 계획하고 예상했던 여행의 모습과는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평소에는 일부러 그러고 싶어도 잘 되지 않던 관찰하는 습관이 여행만 가면 바로 관찰광이 되니 참 신기한 일이다.  왜 그렇게 180도 변할까를 생각해보면 '소중해서'인 것 같다. 여행은 대체로 쉽게 간 것이 아니다. 가기 전까지 시간도 일부러 스케줄을 조율해서 잡고 필요한 경비를 최소 몇 주 전부터 모아 간다. 시간도 돈도 일상에서 아끼고 아껴 떠난다. 그만큼 1분 1초 한걸음 한걸음에 의미가 담긴다. 모든 것이 소중하다. 내가 손에 잡고 있는 것,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소리, 밟고 있는 땅, 그 날의 날씨도 내가 그동안 노력한 것에 대한 대가다. 그렇게 평소 별 것이 아니었던 것까지 의미부여를 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여행에 더욱더 진심이 된다. 

내가 여행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 중 한 조각쯤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무뚝뚝한 시선으로 스쳐 지나갔던 작은 것들에 크게 감동하고 절대 잊지 않으려 집중하는 여행들이 일상 속에서 손해를 보면서 얻은 것 같지만, 돈으로도 책정하지 못하는 단단하고 진심 어린 경험이 되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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