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에 빠지면 깊이 팔 줄만 알지 헤어 나올 기미는 안 보였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나를 소개할 때 '덕후'라는 단어를 빼놓지 않는다.
내 인생에 가장 큰 획을 그은 덕질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아이돌 덕질'일 것이다. 중학생 때 처음으로 한 아이돌에 빠져 그들이 나에게 밥을 먹여준다 믿었던(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그때의 밥은 학교를 잊게 하는 '시간'이었나 보다) 또래 친구들처럼 정말 열심히 그들을 응원했던 것 같다. 앞에서 보겠다고 한 여름에 한강공원에서 떠 있는 해를 다 맞아가며 그들을 기다리느라 얼굴이 붉어져서 엄마한테 혼도 나고, 일명 공방이라고 했던 음악방송도 뛰어보고, 멤버가 아프다는 소식에 죽으면 어떡하냐고 거실에서 엉엉 내가 아픈 것처럼 울어도 보고. 그 처절하고 찬란한(?) 마음을 담은 덕질은 거진 9년 동안이나 이어갔다.
이렇게 지금은 다시 그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해 흉내도 못 낼 그 덕질이, 매일 타박을 듣게 했던 그 덕질이, 가끔은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네 청춘을 갈아 그들의 청춘을 빛내주는 것'이라는 말에 수긍하게 했던 그 덕질이 내 인생에 이렇게나 새로운 길을 만들어줄 줄은 몰랐다.
팬으로서의 경험이 있다면 일명 '홈마'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들은 대포 카메라를 들며 고군분투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담거나 디자인 작업으로 응원법이 담긴 전단지나 굿즈를 만드는 분들인데 어릴 적 그때의 나는 홈마가 되고 싶었다. 아니 홈마가 아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싶어 했다. 사진도 잘 찍고 디자인 툴도 사용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능력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
그 마음이 정말 하루 이틀 간절함이 아니었는지 용돈이 아닌 월급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고서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1년쯤 뒤 카메라를 구입했다. 그리고 나갈 수 있는 시간만 있으면 출사랍시고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때 국내여행의 진가를 많이 경험했던 것 같다.
포토샵 자격증도 따겠다며 독학까지 했으니 아이돌 덕질을 하다가 생긴 관심이 사진과 포토샵에 입문을 하게 한 것이다.
이는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평소에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딱 그만큼만 좋아했던 여행에도 영향을 주었다. 덕분에 연습한답시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여행들이 쌓여갔고 그 사진들은 포토샵으로 후보정을 꼭 해서 보관하는 습관이 생겼으니까.
그 영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여행하며 사진을 찍어 편집하다 보니 어설프게 운영했던 팬 블로그는 자연스럽게 여행 블로그가 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온 여행블로거로써의 삶이 거진 5년은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놀랍다. 그때는 블로그를 이렇게 오래 하고 있을 줄 몰랐는데. 이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을 줄도 몰랐고. (이 달의 블로그? 네이버 메인? 그때는 감히 생각도 안 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새로운 것들을 내 능력으로 흡수할 수 있었다. 라이트룸을 배우게 되고, 잊고 살던 글을 다시 쓰게 되고, 여행의 진가를 알게 해 더 많은 곳을 다니게 했으며 심지어 지금의 직장까지 합격하게 해 주었으니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전부 시작이 그 '덕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에게 날개가 되어주겠다며 온 마음 다 하더니 그 날개가 나한테 온 것인지 나는 그렇게 자연스러운 도전으로 점점 날고 날아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지금의 네가 나는 아주 마음에 든다. 앞으로도 이 길을 걷는 것이 맞겠다는 확신이 드니 말이다.
그때 당시에 부모님께 선생님께 타박을 많이 들었는데 역시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는 거라더니 그때 덕질하기를 참 잘했다. 혹시 지금 예전의 나처럼 어른들에게 혼나면서 덕질을 하고 있다면 꼭 그 마음 변치 말고 계속 이어가기를 바란다. 그 처절하고 찬란한 마음이 어떤 날개를 달아줄지 모르니.